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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두잉

아이돌 유닛에 관한 A to Z: 당신의 아이돌은 왜 유닛으로 나오는가?

최종 수정일: 2020년 10월 23일

집합의 부분집합과 같이, 아이돌 그룹에는 유닛이라는 부분집합이 존재한다. 이미 익숙한 기존 그룹의 멤버일지라도, 유닛이라는 이름 아래 뭉친 새로운 조합은 또 다른 시너지를 만들어 내며 보는 우리를 즐겁게 만든다. 아이돌 유닛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슈퍼주니어 유닛의 등장 이후, 오렌지 캬라멜, GD&TOP, 태티서 등 2세대 아이돌의 연이은 유닛 활동 성공으로 아이돌 유닛은 케이팝 씬에서 익숙한 트렌드로 자리 잡았고, 이를 증명하듯 지금까지 수많은 아이돌 유닛이 쏟아져 나왔다.

 이제 유닛 활동은 연차가 쌓인 아이돌이라면 한 번쯤 거쳐 갈 법한 수순으로 여겨지지만, 나오는 팀 수에 비해 유닛 자체로 성공을 거뒀다고 말할 수 있는 팀은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앨범을 내기보다는 프로젝트성에 그치는 경우가 많으며, 기존 그룹의 팬덤을 흡수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유닛만의 팬층을 구축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실의 벽에도 불구하고, 기획사들이 꾸준히 유닛 그룹을 런칭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케이팝 아이돌 유닛의 흐름을 유형별로 살펴보면서, 기존 그룹과 다른 유닛만의 차별화된 지점이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하자.

 
1.  제가 알던 최애가 맞나요?: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여돌의 병맛 콘셉트

ⓒ 스타쉽 엔터테인먼트


‘흥칫뿡이야 흥칫뿡이야 나 완전 삐졌는데...’ 올 하반기에 나온 케이팝 중 유독 필자의 귀에 훅 들어와 꽂힌 곡이 있었으니, 바로 10월에 발매된 유닛 우주소녀 쪼꼬미의 타이틀곡 <흥칫뿡(Hmph!)>이었다. 기존 그룹인 우주소녀의 신비롭고 몽환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톡톡 튀는 귀여운 콘셉트를 전면에 내세웠다. 머리 위에 단 색색깔의 왕 리본, 일본 색이 짙은 코스프레 의상, 병맛을 가장한 중독성 있는 멜로디까지… 이쯤 되니 머릿속에 자연스레 연상되는 그룹이 있었는데, 바로 오렌지캬라멜이었다.


본 그룹인 애프터스쿨보다 유닛의 인지도가 더 높아 전설의 유닛으로도 불리는 오렌지캬라멜은 설득력 있는 B급 감성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오렌지캬라멜 또한 기존 그룹의 도시적이고 섹시한 이미지를 탈피하고 키치함에 캐릭터 강한 개그 코드를 더해 고퀄리티 병맛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오렌지 캬라멜이 성공한 이후 레인보우 픽시, AOA cream, 오마이걸 반하나, 우주소녀 쪼꼬미와 같은 많은 여자 아이돌 유닛들이 그 영향을 받아 선병맛 후중독을 노린 엉뚱한 큐트 콘셉트를 들고 왔다. 공통적으로 마법이나 동물을 활용한 캐릭터 강한 개그 코드, 율동 같은 안무, 유아스러운 의상 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모리타카 치사토 © 업프론트 크리에이트

최근 오렌지캬라멜의 멤버 리지가 우주소녀 쪼꼬미의 뮤비 캡쳐 화면과 함께 콘셉트의 유사성에 대해 지적하는 글을 인스타그램에 올려 화제가 됐다. 사실 오렌지캬라멜도 처음 유닛이 런칭됐을 당시, AKB나 모리타카 치사토와 같은 일본 여자 아이돌을 따라 한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는 했었다. 하지만 일본 여자 아이돌의 콘셉트를 차용하여 케이팝에 맞게 적용시킨 것 역시 오렌지캬라멜이었다. 오렌지 캬라멜이 성공한 이후, 벤치마킹이 반복되면서 케이팝 여자 아이돌 유닛에 병맛 콘셉트라는 일정한 흐름이 생긴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원래 기존 그룹에 기대되는 이미지와 콘셉트는 어느 정도 고정적이며, 그 안에서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기 어렵다. 만약 위에서 살펴본 병맛 콘셉트가 유닛이 아닌 그룹이었다면, 이처럼 많은 팀이 도전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닛의 경우 부담을 살짝 내려놓고 기존 그룹의 정체성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롭게 새로운 콘셉트를 시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매력이 있다.


2. 한 글자씩 우릴 주목해: 새로운 조화로움

2012년 태티서가 데뷔할 당시에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1차원적인 유닛명에 놀랐다고 한다. 하지만 태티서는 <Twinkle>, <Holler>, <Dear Santa> 등 트윙클이라는 제목만큼 눈부신 활동을 펼치며 주목받았고, 현재까지도 아이돌 유닛의 모범사례로 꼽히고 있다. 태티서 이후 멤버들의 이름 앞글자를 따서 지은 유닛명이 많아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태티서와 비슷한 흐름에서 나온 유닛으로 EXO의 첸백시, 구구단의 세미나를 들 수 있다. 태티서의 태연, 티파니, 서현이 이미 소녀시대의 그룹 활동을 통해 보컬 역량이 증명된 멤버들이었던 것처럼, 첸백시와 세미나도 그룹 활동과 프로듀스 101 방송을 통해 각자의 역량이 증명된 멤버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졌다. 세 유닛 모두 멤버들의 이름 앞글자를 땄다는 점과, 구성원이 3명이라는 점, 보컬 실력이 비교적 뛰어난 멤버로 구성되었다는 점도 우연인 듯 우연 아닌 흥미로운 지점이다.


© SM 엔터테인먼트

© 젤리피쉬 엔터테인먼트


태티서, 첸백시, 세미나 세 유닛은 기존 그룹의 핵심멤버(순서대로 태연, 백현, 세정)를 주축으로 멤버들의 특색을 잘 살릴 수 있는 컨셉을 시도했다. 태티서는 안정적인 가창력을 바탕으로 시원시원한 고음이 돋보이는 곡과 마치 뮤지컬을 연상시키는 화려함이 특징이다. 첸백시는 유쾌하고 펑키한 곡에 이어 세련된 댄스 팝 장르의 곡을 발매하며 인상적인 보컬과 절제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세미나는 블루스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댄스곡으로 프로듀스 101 첫 회 젤리피쉬 연습생이었던 그들을 보고 느꼈던 전율을 다시금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이러한 유형은 그룹 내에서 주목받는 멤버들을 특색에 따라 조화롭게 조합함으로써, 다인원 그룹이던 기존 그룹(소녀시대, EXO, 구구단)에 비해 각자의 장점이 눈에 더욱 잘 들어오도록 유닛을 적절히 활용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3. 각자의 자리에서 가장 빛나는: 음악적 포지션 강화

아이돌 그룹에는 크게 보컬, 댄서, 래퍼 세 가지 포지션이 존재한다. 그룹 활동을 할 때 그룹의 색깔이나 다른 멤버들에 묻혀 각자의 포지션이 빛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유닛은 이런 음악적 아쉬움을 해소하고 멤버들의 포지션을 강화한다.



초기 빅뱅은 힙합을 기본으로 하여 음악적 기반을 다지고자 했지만, 2000년대 후반을 강타했던 후크송 열풍의 영향을 받아 <거짓말>, <마지막 인사>, <하루하루> 등 반복되는 후렴구와 멜로디라인이 강조된 중독성 있는 곡들을 발표했다. 본래의 음악적 정체성이 희미해진 상황에서, 빅뱅의 래퍼 라인이 뭉친 유닛 GD&TOP은 그야말로 성공적이었다. 기존 빅뱅의 히트곡보다 힙합 성향이 강한 곡들을 발표하며 초기의 음악적 정체성을 회복하는 동시에 음악적 스펙트럼까지 확장한 것이다.



BTOB-BLUE는 비투비의 보컬 라인 4명으로 이루어진 유닛이다. 비투비의 보컬 라인인 은광, 창섭, 현식, 성재는 서정적인 발라드 감성을 가지고 있으며, 복면가왕에 아이돌로 추측되는 인물이 나왔다 하면 언급될 정도로 보컬 실력이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기존 그룹의 괜찮아요-집으로 가는 길 -봄날의 기억으로 이어지는 발라드 3부작 이후, 그 여파를 몰아 런칭한 유닛 비투비 블루는 비투비의 강점인 보컬 포지션을 대중에게 한 번 더 각인시켰다.



래퍼 X 보컬의 조합인 빅스 LR도 음악적 포지션이 강화된 유닛의 예이다. 강렬하고 독보적인 색깔로 ‘컨셉돌’이라는 수식어를 가지고 있던 빅스가 유닛에서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보컬과 랩이 강조된 곡을 선보였다. 강렬한 컬러렌즈를 끼고 나타났던 뱀파이어가 아니라, 건반을 치며 노래를 부르고 랩을 하는 빅스 LR의 모습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퍼포먼스 중심의 아이돌로 자리 잡았지만, 유닛 활동에서 직접 프로듀싱을 맡으며 그룹 활동으로는 보여주기 어려웠던 멤버 개인의 음악적 역량을 잘 보여준 유닛이다.


4. 2020 아이돌 유닛을 돌아보며: 완전체의 대안

멤버의 개인 활동이 활발해지거나 부상 등으로 어쩔 수 없이 활동이 불가능해진 경우, 완전체 컴백까지의 긴 공백기를 감수하기 어려워 그 대안으로 유닛 활동을 선택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비교적 부담이 적은 유닛 활동을 통해 공백기에도 활동을 이어나가면서 얼굴을 비추고, 그룹을 잊지 않도록 대중들에게 어필하는 것이다.


© JYP 엔터테인먼트

© 판타지오 엔터테인먼트

 

2020년에 나온 아이돌 유닛 중에서도 완전체의 대안으로 유닛을 선택한 듯한 팀을 찾아볼 수 있었는데, 바로 레드벨벳의 아이린&슬기, 데이식스의 이븐 오브 데이, 아스트로의 문빈&산하가 그렇다. 레드벨벳은 지난해 12월 가요대전 무대에서 멤버 웬디가 부상을 입어 <Psycho> 완전체 활동을 할 수 없었고, 데이식스 또한 멤버 Jae와 성진이 심리적 불안 증세를 호소하여 건강 회복에 전념할 수 있도록 <Zombie> 활동을 중단한 바 있다. 아스트로의 경우에도 멤버 차은우가 올해 12월 방송 예정인 드라마 <여신강림>의 주연으로 캐스팅되어 완전체 활동이 어려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처럼 현실적으로 완전체 활동이 어려운 상황에서, 새로운 음악을 들고 우리를 찾아온 유닛은 가뭄 속 단비 같은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정리해보면, 아이돌 유닛은 기존 그룹의 활동과 비교했을 때 새로운 콘셉트를 보다 더 자유롭게 시도할 수 있고, 특색에 따른 조화로운 유닛으로 개개인의 매력에 더욱 집중하도록 만든다. 또한 멤버들의 음악적 포지션을 강화할 수 있으며, 완전체의 대안으로서 그룹 활동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케이팝 소비러의 입장에서 유닛 활동을 보는 것은 또 하나의 쏠쏠한 재미이다. 유닛이 단순히 본 그룹의 부차적인 의미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기존과는 다른 신선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유닛 그 이상의 유닛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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