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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이제 한국인 작곡가는 안 쓰나요?


언제인가부터 K-POP은 '한국 음악'으로 정의되기 어려워졌다. SM엔터테인먼트를 필두로 한 수많은 K-POP 아티스트들은 본격적으로 해외 프로듀서들과 협업하기 시작했고, 트랙 크레딧이 북유럽과 영미권 작곡가들의 이름으로 가득 채워지는 일은 너무나도 흔해졌다. 어느새 빌보드 차트까지 점령해 버린 K-POP이지만 역설적으로 K-작곡가의 비중은 줄어들어만 가고 있는 것이다.


(제공: 벅스) 2020년 최고의 K-POP 히트곡, 방탄소년단의 'Dynamite' 역시 해외 작곡가를 기용했다.


이제 K-POP 산업에서 ‘한국적인 것’은 가창자밖에 남지 않은 것일까? 외국인이 만든 외국어 트랙을 한국인이 번안해 부를 뿐인 것을 더 이상 K-POP이라 칭할 수 있을까? 그 많던 국내 작곡가들은 다 어디로 사라져 외면받고 있단 말인가? 물론 세계 음악 트렌드에 뒤쳐진 고리타분한 작곡가들이 도태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그러나 이 엄격한 시장 논리를 이겨내고 여전히 K-POP 씬에서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는 국내 작곡가들 역시 존재한다. 본 글에서는 당신이 반드시 알아야 할 한국인 K-POP 작곡가 5팀을 소개한다.


 

블랙아이드필승 - ⓒ하이업엔터테인먼트


블랙아이드필승

최규성과 라도로 이루어진 작곡 팀 블랙아이드필승이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데뷔작인 2014년 씨스타의 'Touch My Body'가 흥행을 기록했을 때부터였다. 이후 그들은 그야말로 '국민 히트곡'이 된 트와이스의  'CHEER UP'과 'TT'를 프로듀싱하며 연타석 홈런을 치고, 단번에 K-POP 씬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곡가로 올라섰다. 그야말로 걸그룹 계의 ‘마이다스의 손’이다. 보이그룹에 비해 팬덤 규모가 작아 상대적으로 곡의 우수한 대중성이 크게 요구되는 불안정한 걸그룹 시장에서 이 정도로 안정적인 흥행을 보장하는 작곡가는 흔치 않다.


2020년 지금까지도 흥행 보증수표로 통하고 있는 블랙아이드필승의 강점은 천부적인 멜로디 메이킹 감각이다. 직관적이고 캐치한 탑라인을 짜내는 능력만큼은 그야말로 탁월하다. 산뜻한 전자음 기반 사운드에 매력적인 멜로디를 얹는 블랙아이드필승의 흥행 공식은 언제나 유효했다. 비록 타 작곡가에 비해 뚜렷한 장르적 색채는 부족하더라도 그만큼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대중적인 사운드를 만들어 낸다는 뜻 아니겠는가. 


K-POP이라는 장르를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대중가요'로 해석한다면, 현재 가장 앞서 있는 국내 작곡가는 단연 블랙아이드필승이다. 이들이 직접 프로듀싱하는 신인 걸그룹 'STAYC(스테이시)'가 올해 후반기 데뷔한다 하니, 과연 이번에도 블랙아이드필승의 흥행 전략이 먹혀 들어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대표작

트와이스, 'CHEER UP', 'TT', 'LIKEY', 'FANCY', 'OOH-AAH하게'

미쓰에이, '다른 남자 말고 너'

씨스타, 'Touch My Body', 'I Like That'




이기 - ⓒMnet '프로듀스 48' 中

용배(가면라이더) - ⓒMnet '프로듀스 48' 中


이기용배

프로듀싱팀 오레오의 이기와 프로듀싱팀 가면라이더의 용배로 이루어진 이기용배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여자친구 작곡가' 하나면 충분하다. 대북 선전에까지 사용된 범국민적 히트곡인 '오늘부터 우리는'으로 대표되는 여자친구의 히트곡 라인들은 모두 이기용배의 작품이다. 특유의 역동적이고 서정적인 스트링 사운드는 이미 트레이드마크. 곡만 들어도 작곡가가 누군지 예상할 수 있는 명확한 개성을 가진 몇 안 되는 국내 작곡가 중 하나다. 


페르소나와 같은 여자친구의 학교 3부작 외에도 다이아의 '그 길에서'와 프로미스나인의 'To Heart' 등 타 걸그룹에도 비슷한 스타일의 곡을 준 바 있는데, 이 역시 상당한 완성도를 자랑한다. 다만 일본 서브컬쳐 감성을 성공적으로 K-POP에 이식해 온 스트링 사운드 곡들에 비해 전자음을 기반으로 한 곡(여자친구의 'FINGERTIP', 로켓펀치의 'JUICY')들은 상대적으로 그 완성도와 매력이 덜해 아쉽다. 

그럼에도 이기용배가 타 작곡가들과는 뚜렷하게 차별화되는 독창적인 아이덴티티를 지닌 팀임은 분명하다. 예술에서 ‘자기 것’을 갖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자명하다. K-POP 씬에서 드물게도 ‘자기 것’을 지닌 작곡가인 만큼, 당신이 K-POP 마니아라면 이기용배의 이름을 반드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


대표작

오렌지캬라멜, '까탈레나', '립스틱', '나처럼 해봐요'


프로미스나인, 'To Heart'

로켓펀치, '빔밤붐', 'JUICY'




Flow Blow - ⓒNimdle


Flow Blow

자이로(정국영)와 벤타(양하이)로 구성된 프로듀싱 팀 플로우 블로우(Flow Blow)는 앞서 언급한 두 팀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팀이다. 그러나 워너원의 '에너제틱'과 'NEVER'를 작곡한 팀이라고 하면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플로우 블로우는 가장 트렌디하고 대중적인 EDM 장르 중 하나인 퓨처 베이스를 기반으로 감각적이고 세련된 K-POP 작품을 만들어낸다. 거의 양산되다시피 하고 있는 K-POP 퓨처 베이스 뮤직 중에서 가장 뛰어난 만듦새다. 국민의 아들의 'NEVER'로 대표되는 Mnet '프로듀스 101 시즌 2'에서의 성공으로 끝나지 않고 네 번째 시즌인 프로듀스 X 101의 '소년미', 구구단 김세정의 'SKYLINE' 등 준수한 트랙을 연이어 내놓고 있어 더욱 기대된다. 


퓨처 베이스뿐만 아니라 후이와 협업한 펜타곤의 곡들('빛나리', '청개구리' 등)에서는 힙합과 팝 등 다양한 타 장르 역시 매끄럽게 만들어 내며 폭넓은 장르 소화력까지 증명한 플로우 블로우의 행보를 주목해 본다.


대표작

워너원, '에너제틱', '봄바람'


국민의 아들, 'NEVER'

PRODUCE 48, '내꺼야'

PRODUCE X 101, '소년미'


펜타곤, '빛나리', '청개구리', 'RUNAWAY', 'Like This'

세정, 'SKYLINE', 'Whale'



히치하이커 - ⓒSM엔터테인먼트


히치하이커(Hitchhiker)

괴상한 우주복 슈트를 입고 괴상한 음악을 하는 프로듀서 히치하이커(Hitchhiker). 국내 최고 아이돌 기획사 SM엔터테인먼트 소속 프로듀서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은 사실 대중에게 익숙한 느낌은 아니다. 2000년대 초반 평단의 찬사를 받은 밴드 롤러코스터의 멤버 지누의 또다른 이름 히치하이커는 '국내에서 가장 매니악하고 실험적인 K-POP 프로듀서'로 간단히 설명될 수 있다. 

솔로곡 '11(Eleven)', '$10', 'NADA'를 10초만 들어도 알 수 있듯, 주로 트랩 EDM을 기반으로 하여 독특한 사운드 소스를 투입하는 식으로 실험적인 전자음악을 만들어내는 프로듀서 히치하이커. 다행히(?)도 타 가수에게 곡을 써 줄 때는 특유의 '똘끼'를 조금 자제하는데, 그 대표적인 결과물이 2000년대 최고의 K-POP 트랙 중 하나인 브라운아이드걸스의 'Abracadabra'이다. 이 즈음 히치하이커는 f(x)의 '아이스크림', 보아의 'Game' 등 뭉툭하고 거친 전자음을 활용해 몽환적인 감성을 빚어내는 독보적인 감각을 마음껏 선보인다. 


비록 너무 강한 개성 때문에 타이틀곡으로 선정되는 일은 적지만, 레드벨벳의 'Just'처럼 '타이틀곡보다 좋은 수록곡'으로 리스너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는 뱅어 트랙을 만들어내는 괴짜 프로듀서 히치하이커. 그의 과감하고 유쾌한 음악적 도전을 지켜보는 일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대표작

브라운아이드걸스, 'Abracadabra'



레드벨벳, 'Just'


엑소, 'My Lady'

보아, 'Game'




모노트리 - ⓒ텐아시아


모노트리(MonoTree)

황현, G-high, 이주형을 중심으로 2014년 말 결성된 대한민국의 프로듀싱 팀 모노트리(MonoTree)는 아마 가장 두터운 팬층을 가지고 있는 국내 프로듀서 중 하나일 것이다. 가창자에 비해 프로듀서가 좀처럼 조명되지 못하는 한국 가요계에서 놀라운 일이다. 이는 모노트리가 세련되고 개성적인 사운드 디자인과 독창적인 콘셉트로 소위 말하는 '트렌드'를 무작정 좇는 관성적인 타 작곡가들과 확실히 차별화되는 곡을 선보이기 때문이리라.


모노트리가 거의 전담해서 커리어를 만들어 주고 있는 수준의 프로듀싱 비중을 보이는 두 개의 그룹 이달의 소녀온앤오프는 커리어 하이 곡 'Butterfly'와 '사랑하게 될 거야'로 '노래 퀄리티는 확실한' 그룹으로 제대로 눈도장을 찍었다. 레이디스코드는 2014년 멤버 리세은비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비극 이후 발매된 'Galaxy'와 'The Rain' 연작으로 한층 성숙해진 그룹의 예술성을 보여주었다. 샤이니'방백'이나 태연'먼저 말해줘'처럼 '알 사람은 아는’ K-POP 대표 수록곡 명작들 역시 모노트리의 작품이다. 

장인정신이 느껴지는 매끈한 사운드와 아련하고 몽환적인 판타지 풍의 프로듀싱은 모노트리를 K-POP 씬에서 가장 특별한 작곡팀 중 하나로 만든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모노트리 앓이’에 빠져 있는 모노트리 마니아들이 존재하는 이유다.


대표작

온앤오프, '사랑하게 될 거야'


이달의 소녀, 'Butterfly', 'Hi High'


여자친구, 'Apple'


레이디스코드, 'The Rain', 'Galaxy'

태연, '먼저 말해줘'

샤이니, '방백'

레드벨벳 'Day 1', 'Blue Lemonade', '달빛 소리'



 

K-POP 음악은 세계를 향해 뻗어 나가며 전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장르 중 하나가 되었지만 그 성공에는 해외 작곡가들의 빼어난 송라이팅이 일조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K-POP을 ‘외국인이 쓴 곡을 한국인이 부를 뿐인’ 장르로 폄하하기에는 여전히 눈부신 재능을 가진 한국인 작곡가들이 K-POP 씬을 굳건히 떠받치고 있다. 본 글에서 언급된 작곡팀뿐만 아니라 블랙핑크의 곡을 쓰는 TEDDY와 같은 다른 한국인 작곡가들 역시 K-POP의 최전선을 진두지휘하며 해외 작곡가들에 뒤쳐지지 않는 스타일리시한 감각을 선보이고 있다. 

‘K-POP 씬에서 이제 한국인 작곡가는 경쟁력이 없나요?’라는 질문, 간단한 부정으로 답하겠다. 

‘아니요, 한국에는 뛰어난 작곡가들이 이렇게나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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