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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아이돌과 20세기의 만남: 아이돌을 통해 바라보는 90년대의 사회

최종 수정일: 2022년 8월 22일


출처: 엔하이픈 <Blessed - Cursed> MV


아티스트들은 음악을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그 메시지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자아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도 될 수 있으며 타인을 위한 위로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 대중에게 그 당시를 떠올리게 하고,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는 경우는 어떨까? 최근 아이돌 시장에는 ‘레트로’와 ‘세기말 감성’이 유행하면서 해당 컨셉을 주제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이 늘어났다. 대표적인 사례가 엔하이픈은 <Blessed-Cursed>이다.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가는 말 그대로의 ‘세기말’을 표현한 해당 앨범은, 의상 컨셉뿐만 아니라 타이틀 및 수록곡, 무대까지 전형적인 세기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이렇듯 지금까지도 20세기 사회의 초상을 그리는 21세기 아이돌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그중 90년대의 스타일이 아닌, 90년대 사회를 표현하려고 하는 아이돌들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현대의 아이돌들은 20세기 사회를 음악으로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까? 90년대의 사회상을 표현한 아이돌들의 음악을 살펴보고, 이들이 중점적으로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하자.



1. ‘동물원을 빠져나온 퓨마’와 ‘빠삐용 – 영화사회학’의 상관관계



동물원을 벗어나고 나서

마주친 세상은 너무 낯선

누구 하나도 나를 안 반겨

매일 같은 "걸음아 날 살려 race"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첫 정규 앨범 [꿈의 장: ETERNITY]의 수록곡 중 하나인 <동물원을 빠져나온 퓨마>는 제목 그대로 동물원을 빠져나온 퓨마의 모습을 표현한 곡이다. 자신을 가둬 놓았던 동물원을 탈출했지만 끝없는 불안과 공포, 죽음에 대한 위협에 시달려야 하는 퓨마의 모습은 이 곡을 듣는 사람들이 긴장감을 가지게 만든다. 해당 곡에 대해 공식에서 정확히 이야기가 나온 것은 없으나, 팬들 사이에서는 어떠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존재했고, 현대 사회의 우울함을 ‘퓨마’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과연 ‘동물원을 빠져나온 퓨마’는 또 어떤 방면에서 해석될 수 있을까?

만약 수능을 준비했던 수험생이라면, ‘동물원을 빠져나온 퓨마’와 오버랩되는 시 한 편이 있을 것이다.

아침 티브이에 난데없는 표범 한 마리

물난리의 북새통을 틈타 서울 대공원을 탈출했단다

수재에 수재(獸災)가 겹쳤다고 했지만, 일순 마주친

우리 속 세 마리 표범의 우울한 눈빛이 서늘하게

내 가슴 깊이 박혀 버렸다 한순간 바람 같은 자유가

무엇이길래, 잡히고 또 잡혀도

파도의 아가리에 몸을 던진 빠삐용처럼

총알 빗발칠 폐허의 산속을 택했을까

평온한 동물원 우리 속 그냥 남은 세 명의 드가

그러나 난 그들을 욕하지 못한다

빠삐용, 난 여기서 감자나 심으며 살래

드가 같은 마음이 있는 곳은 어디든

동물원 같은 공간이 아닐까

친근감 넘치는 검은 뿔테 안경의 드가를 생각하는데

저녁 티브이 뉴스 화면에

사살당한 표범의 시체가 보였다

거봐, 결국 죽잖아!

티브이 우리 안에 갇혀 있는,

내가 드가?

본 시는 유하가 쓴 <빠삐용 – 영화 사회학>이다. 해당 시에서는 동물원을 탈출한 세 마리의 표범과 영화 <빠삐용>이 주된 소재인데, 해당 시는 퓨마의 시선이 아닌 퓨마가 탈출한 사건을 지켜보는 방관자의 시선에서 내용이 전개되고 있다. ‘티브이 우리 안’에 갇혀 있다는 결론으로 여운을 남겨주면서 현대 사회가 자유롭지 못하고 티브이와 같은 문물 안에 갇혀서만 살고 있다는 비판적인 관점으로 쓰여진 시이기도 하다. 특히 시가 쓰인 당시는 독재 정권의 실태를 감추기 위해 문화 정책이 많이 시행되던 시기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인간 본연의 자유를 추구하지 못하고 현대 문물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참담한 실태를 표현하는 듯, 본 시는 저녁 티브이 뉴스에 사살당한 표범의 사체를 보여주면서 끝을 맻는다.


출처: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동물원을 빠져나온 퓨마> MV


이러한 점을 토대로 위 시와 <동물원을 빠져나온 퓨마>를 비교해본다면, 해당 노래는 아침 티브이 속 동물원을 빠져나온 ‘퓨마’의 관점에서 노래가 전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They came catch my back 절대 잡히면 안 돼”, “동물원을 벗어나고 나서 마주친 세상은 너무 낯선”과 같은 가사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이 노래에서 퓨마는 동물원을 탈출한 뒤 처음 느껴보는 자유에 기뻐하기도 하지만, 언제 잡혀 죽임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여 있기도 하다. 그러나 더 이상 동물원에 갇히지 않고 자유를 찾은 퓨마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 방황하면서도 자유를 되찾은 지금을 기뻐하고 있다. 실제로 <동물원을 빠져나온 퓨마> 뮤직비디오를 살펴보면, 멤버들이 자유롭지 못하고 어딘가에 갇혀 주위를 경계하는 모습이 초반에 등장한다. 그러나 뮤직비디오의 마지막에 가면 자유를 느끼고 산 정상에 위치해 있는 멤버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는 시 속에 등장하는 ‘빠삐용’의 모습과 오버랩 되어 빠삐용이 죽음의 섬을 탈출했다고 상상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스토리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연준의 랩 가사를 살펴보면, 퓨마를 이야기하고 있음과 동시에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수천 개의 눈이 인터넷에 접속 조심해 네 적이 삽시간에 퍼져”와 같은 가사를 살펴본다면, 이는 특히 인터넷이 발전한 현대 사회에서 진정한 자유를 찾지 못하는 모습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오락 프로그램, 영화 산업이 만연하던 1980년대 사회와 겹치면서 우리에게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다. 1980년이 아닌 2022년에 살아가는 우리는 어쩌면 아직도 ‘퓨마’와 ‘빠삐용’의 모습이 아닌 ‘드가’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2. 독재 정권 시대의 암울한 ‘소격동’을 담은 서태지와 아이유



너의 모든걸 두 눈에 담고 있었죠

소소한 하루가 넉넉했던 날

그러던 어느 날 세상이 뒤집혔죠

다들 꼭 잡아요

잠깐 사이에 사라지죠

우리나라 최고의 가수로 꼽히는 서태지와 아이유의 콜라보레이션 디지털 싱글의 타이틀곡, <소격동>은 그 어떤 곡보다도 독재 정치 시대의 암울한 사회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먼저 곡의 제목인 ‘소격동’은 서울 중구에 위치한 동네의 이름이다. 서태지는 “‘소격동’은 여자의 입장과 남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80년대 소격동에서 일어난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테마로 했다”라고 언급했는데, 이에 사람들은 그 당시 일어난 ‘소격동 사건’이 노래의 배경이 된 것 아니냐는 의견을 내놓았다. 소격동 사건은 1980년대 당시 전두환 정권이 시행한 ‘녹화 사업’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이 과정에서 대학생 6명이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이 소격동 사건은 전두환 정권의 독재 정치를 가장 잘 나타내는 사건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이러한 점을 빗대어 <소격동>을 들을 때, 청자들은 이 노래가 그 당시의 독재 정권을 비판하고 정권에 희생당한 이들을 기리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출처: 아이유 <소격동> MV


특히 아이유의 <소격동> 뮤직비디오에서는 이러한 80년대의 잔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소년과 소녀는 각각 80년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춘의 모습으로, 둘은 한순간 사랑에 빠지는 듯 하나 말 없는 이별을 맞게 된다. 특히 나이가 들어 군사 훈련을 받는 소년의 모습과 매일 밤 야간 등화관제 훈련 시간에 몰래 만나던 소녀의 모습은 그 당시 독재 정권에 탄압받고, 영문도 모른 채로 정부에 끌려가야만 했던 20대 청춘들의 슬픈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노래에서는 그 많던 냇물이 말라가고, 세상이 뒤집혔다는 등의 전의 소격동과 현재의 소격동을 대조하는 듯한 가사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가사들은 은유적으로 당시의 독재 정권을 비판하고, 그 독재 정권에 희생당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3. 20세기 ‘전사의 후예’와 21세기 ‘전사의 후예’가 보여주는 학교폭력의 참담한 실태



Say ya 아침까지 고개들지 못했지

맞은 흔적들 들켜버릴까봐

어제 학교에는 갔다왔냐? 어?

아무일도 없이 왔냐?

원어스의 전사의 후예는 그 당시에도,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는 사회 문제를 다루고 있다. 바로 ‘학교폭력’이다. 1996년 발매된 H.O.T.의 <전사의 후예 (폭력시대)>는 곡의 가사와 무대에서부터 이 곡이 학교 폭력을 다루고 있고, 학교 폭력의 심각성을 대중들에게 단단히 각인시켰다. 그리고 약 20년이 조금 더 지난 2019년, 원어스는 <전사의 후예>를 한 경연 프로그램 안에서 리메이크해 대중들에게 선보였다.


출처: Mnet <로드 투 킹덤>


원어스의 무대는 원곡에서 담고 있는 주제를 잘 표현하고 있다. 무대 인트로를 살펴보게 되면, 피해자의 역할을 맡은 멤버 환웅이 다른 친구들을 두려워하면서 학교 폭력을 당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무대에서는 확성기, 그라피티 등의 요소가 등장했는데 이는 학교 폭력이 절대 올바른 일이 아니며, 정의를 위해 싸워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1996년 발매된 ‘전사의 후예’가 가진 메시지가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을 본다면, 학교 폭력은 약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 내에서 심각한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원어스는 이러한 학교 폭력을 해결하는 데도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폭력은 폭력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무대에 대한 인터뷰에서, 멤버 건희는 ‘어떤 방법으로든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폭력의 악순환에 대한 메시지를 잘 전달할 수 있도록 열심히 준비를 해봤다’고 말했다. 실제로 무대의 엔딩에서는 환웅이 자신을 괴롭히던 무리를 친구들과 함께 싸워 이겼지만, 그것이 올바른 일이 아님을 깨달은 듯 무릎을 꿇은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무대는 우리에게 폭력은 어떤 방면에서든 올바른 선택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과거의 일을 통해 지금의 모습을 성찰하고 반성하기 위함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속해서 과거를 되짚어보고, 현재를 성찰해야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케이팝이 90년대 사회의 모습을 계속 그려내는 것은, 과거를 회고함과 동시에 현대 사회의 모순을 계속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큰 효과를 가져다준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고쳐 나가야 할 모순들이 많고, 그런 것들을 케이팝은 케이팝 고유의 문화를 통해 계속 사람들에게 일깨우려 하고 있다. 앞으로 케이팝에는 어떠한 시대상이 그려지게 될까? 케이팝이 그려내는 시대상을 읽어내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가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도 한층 더 높아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계속해서 케이팝이 그려 나갈 시대상과 그 안에 담길 사회를 향한 비판과 목소리를 기대해본다.


 

참고자료


실검보고서, 서태지X아이유 ‘소격동’ 모티브가 된 ‘소격동 사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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