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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0세대의 허상의 힙: 뉴트로

'레트로'란 레트로스펙트(Retrospect)의 줄임말로 복고주의를 지향하며 과거의 향수를 그리워하는 유행 스타일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도 tvN의 응답하라 시리즈의 성공과 더불어 다양한 시장에서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무한도전의 ‘토토가’와 JTBC의 ‘슈가맨’과 같은 음악 관련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끈 바 있다. 이와 같은 레트로를 활용한 마케팅은 주로 실제 과거를 체험한 이들을 타깃으로 하여 이뤄져 왔고, 콘텐츠뿐만 아니라 패션, 인테리어 소품, 전자 기기, 식품 등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 2019년에는 ‘뉴트로’라는 새로운 트렌드가 등장했다. '뉴트로'란 '새롭다'를 의미하는 'new'와 복고를 의미하는 'retro'의 합성어로 과거를 단순하게 재현한 것이 레트로라면 뉴트로는 한 단계 진화해 과거의 향수를 현재의 감성에 맞게 재해석하는 것을 의미한다. 레트로와 비교했을 때 뉴트로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타겟층이다. 레트로는 실제 그 시절을 경험한 3040세대를 타겟으로 했다면, 뉴트로는 그 시절을 경험해본 적이 없는 1020세대를 타겟으로 레트로를 새롭게 재해석한 것이다.


뉴트로라는 키워드는 1020세대에게 소위 ‘힙함’으로 자리 잡았다. 주로 여기서 파생되는 아이템들로는 육공 다이어리, 홀로그램, 8비트 일러스트, 노이즈 보정, 세일러문, 콘사토시 감독의 애니메이션 등이 있다. 나를 포함한 많은 1020세대는 실제 경험해보지 못한 콘텐츠들에서 향수를 느끼고, 촌스럽다는 느낌 속에서 멋 내지는 '간지'를 찾곤 한다. 나는 이러한 점에서 뉴트로라는 트렌드를 1020세대들의 허상의 힙함으로 정의해보려 한다. 뉴트로라는 트렌드는 음악 시장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재밌는 점은 실제 1020세대에 해당하는 아이돌 그룹이 1020세대의 리스너들을 대상으로 레트로를 재해석한 뉴트로 컨셉의 앨범을 낸다는 것이다. 실제 아이돌들이 경험해보지 않았던 그 시절의 힙함, 그들은 어떻게 음악적으로 해석을 했을까?


2019년 4월 22일에 발매한 트와이스의 <Fancy>는 음악적으로도 시각적으로도 뉴트로적인 느낌이 가득한 앨범이다. <Fancy>를 처음 들었을 때 이전에 트와이스가 계속 해오던 트렌디하고 발랄한 느낌과는 달리, 80년대 디스코를 연상시키는 드럼 비트와 신스음들이 모여 ‘뽕끼’를 자아내고, 처음에는 낯선 느낌과 함께 불호를 표현했더라도 이내 중독되어 무한 반복을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한다. 시각적인 부분 또한 뉴트로한 감성이 잘 드러난다. 정식 발매 이전 공개된 티저 사진의 경우, 비비드한 컬러와 노이즈 보정을 한 이미지들의 콜라주로 보이는 '베이퍼 웨이브'가 돋보인다. 베이퍼 웨이브란 친숙한 8~90년대 향수를 기반으로 재현한 SNS 텀블러에서 시작된 장르로, 돌고래, 피라미드, 해변, 야자수, 3D 이펙트와 같은 아이템들의 콜라주와 글리치가 가득한 노이즈 보정이 큰 특징이다. 이러한 베이퍼 웨이브가 돋보이는 트와이스의 티저 사진은 이전 트와이스가 꾸준히 해오던 느낌의 파스텔톤 이미지와는 상반되는 분위기를 전달한다. <Fancy>의 곡 자체는 다소 올드할 수 있지만, 기존 트와이스의 발랄한 이미지가 키치한 베이퍼 웨이브 감성과 만나 ‘뽕끼’를 넘어 오히려 ‘힙한’ 컨셉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2019년 6월 26일에 발매한 (여자)아이들의 <Uh-Oh>는 걸그룹 아이돌에게서는 쉽게 듣기 어려운 붐뱁 장르의 타이틀 곡으로 컴백했다는 것으로 큰 이슈가 되었다. 붐뱁이란 1980~90년대에 미국 동부에서 성행한 힙합 스타일로, 장르 자체는 같은 힙합의 하위 장르인 ‘트랩’과 비교할 때 트렌디하다기보다는 정통 힙합에 가깝다. <Uh-oh>의 인트로에서 들리는 디제잉 스크래치 사운드와 둔탁한 드럼 룹은 말 그대로 올드 힙합 스타일을 그대로 따랐다. 재밌는 점은 이 곡을 프로듀싱한 (여자)아이들의 리더 소연은 1998년생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붐뱁이 성행하던 시대는 경험해본 적 없지만 자칫하면 옛날 느낌에서 멈출 수 있는 붐뱁이라는 장르를 세련되게 재해석하고 (여자)아이들의 매력으로 힙합과 뉴트로가 줄 수 있는 힙함 모두 장악할 수 있었다. 시각적으로는 어떻게 재해석했을까. 뮤비 속 (여자)아이들 멤버들은 주로 골드 체인이나 큰 링 귀걸이 등을 통해 힙합에서 주로 보이는 악세사리들을 착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뮤직비디오 중간중간에 글리치가 가득한 VHS 효과가 나타나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여자)아이들의 앨범의 경우 늘 그때의 트렌드에 잘 맞는 곡을 냈었다. 데스파시토의 큰 인기와 함께 케이팝 씬에서도 라틴풍의 노래가 쏟아져 나왔다. 당시 이들도 뭄바톤 계열의 <LATATA>, <한>, 그리고 제목부터 스페인어인 <Senorita>까지 그 흐름을 연이어서 타고 왔다. 이번 <Uh-oh>는 기존 (여자)아이들의 앨범 방향성을 넘어 걸그룹에게 있어서 다소 모험적인 시도였을 수 있었는데, 이를 찰떡으로 소화한 아이들과 그 곡을 만든 소연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트와이스와 (여자)아이들 모두 90년대 내지 2000년생 출신이며, 플레이어인 아티스트 본인도 소비자인 팬덤 대부분이 1020세대에 해당한다. 비록 우리가, 그리고 그들이 실제로 그 시절을 경험해 본 것은 아니지만 음악을 통해 그 시절의 향수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보고, 더 나아가 실제 그 시절 음악들을 들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는 것은 굉장히 소중하다. 게다가 이 두 아티스트 모두 기존에 해오던 노선과는 차별화된 앨범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매스컴을 통해 트와이스는 <Fancy>를 전환점이라고 이야기했고, (여자)아이들은 <Uh-Oh>를 통해 아이들만의 뻔하지 않은 힙합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성공하면 ‘힙’함이지만 자칫하면 촌스러움으로 전락해버릴 수 있는 위험요소를 안은 뉴트로 컨셉을 200% 힙하게 살린 트와이스와 (여자)아이들의 이후 노선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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