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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과 온앤오프의 고집


© WM Entertainment



지난 11월 2일, 온앤오프의 공식 팬카페에는 무거운 분위기를 암시하는 제목의 두 게시글이 올라왔다. 각각 온팀 리더 효진과 오프팀 리더 제이어스가 입대 소식을 전하는 자필 편지였다. 2017년 데뷔한 온앤오프가 데뷔 4년 차를 맞은 지금, 그들은 케이팝 아이돌 최초 전원 동반 입대(외국인 멤버 제외)라는 초강수를 두어 다음 여름을 기약하고 있다.


오랫동안 준비해 온 입대임을 증명하듯, 팬들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온앤오프는 올해에만 쉼 없이 네 장의 앨범을 발매했으며 앨범마다 탄탄해지는 작품성으로 한결같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언제나처럼 그들의 성장 동력이 되어 준 프로듀싱 팀 모노트리와 온앤오프의 ‘황버지’ 작곡가 황현이었다.


막내이자 유일한 외국인 멤버인 ‘유’만을 남겨두고 무거운 발걸음을 떼야 하는 다섯 형을 배웅하며, 데뷔부터 짧고 굵은 ‘군백기’ 바로 직전까지 한 걸음씩 걸어온 온앤오프와 황현의 ‘고집스러운’ 성장 서사를 되짚어보려고 한다. 천천히 꾸준하게 걸었던 그들의 모습을 기억하는 많은 케이팝 팬들은 변치 않고 온앤오프만 할 수 있는 그들의 음악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돌아오라고 얘기해주듯 말이다.





실험적인 선택을 하자

© WM Entertainment



온앤오프와 황현의 인연은 2016년 여름 시작되었다. (이 끝없는 온앤오프의 여름 세계관…) 온앤오프의 소속사 WM엔터테인먼트로부터 새로 데뷔할 보이 그룹의 프로듀싱을 맡아 달라는 제안을 받은 황현은 그렇게 처음 멤버들을 만났고, 월말평가까지 참여하며 찾아낸 멤버들만의 색깔을 녹인 <ON/OFF>(2017.08.02.)를 발매했다. 황현의 인터뷰에 따르면 한 팀을 전담해서 프로듀싱하는 건 온앤오프가 처음이었으며, 여러 곡을 써서 들려주면 실험적이고 특이한 곡을 골라 좋다고 하는 WM엔터테인먼트의 반응에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실한 멤버들의 모습과 그 안으로 비치는 간절함에 이끌려 온앤오프와의 인연을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출발한 황현과 온앤오프의 첫 작품 <ON/OFF>는 온앤오프만의 안드로이드 세계관을 여는 가사로 듣는 이들로 하여금 다음 이야기를 궁금하게 했으며, 이와 동시에 각 멤버들 목소리의 장점을 최상으로 끌어냈다는 점에서 아직도 ‘퓨즈(온앤오프 팬클럽 명)’ 사이에서 자랑스러운 데뷔곡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것에 충실하자

© WM Entertainment



온앤오프와 황현의 조합이 조금씩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건 2019년 2월 발매한 온앤오프의 미니 3집 <WE MUST LOVE>부터였다. 중독성 강한 멜로디와 드라마틱하고 의미심장한(덕후를 자극하는) 가사, 완성도 높은 퍼포먼스에 힘입은 ‘사랑하게 될 거야’는 앞서 발표했던 두 장의 앨범과 비교했을 때도 분명 온앤오프의 이름을 알릴 기회였다. 하지만 당시 활동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한다. 기대가 컸던 만큼, 멤버들이 아직도 종종 인터뷰에서 언급할 정도로 아쉬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온앤오프와 황현은 다시 보이지 않는 것에 희망을 걸었다. 아이돌의 성공에 있어 가장 가시적인 지표인 음원 성적으로는 도통 확신을 가질 수 없는 앞날이었지만, 이들은 다시 가장 기본적인 것에 충실한 작품을 준비했다.


그리고 탄생한 곡이 바로 미니 4집 <GO LIVE>의 수록곡 ‘Moscow Moscow’이다. 소위 ‘아는 사람만 아는’ 그룹이었던 온앤오프가 본격적으로 과거의 곡들까지 소환당하며 ‘명곡 맛집’으로 점차 소문나기 시작했다. 일명 ‘공짜로 러시아 여행이 가능한 곡’, ‘기억 조작당하는 곡’ 등으로 불리며 입소문을 타던 ‘Moscow Moscow’는 발매 시점으로부터 3개월이나 지난 시점에도 불구하고 MBC ‘쇼! 음악중심’의 2020년 신년 특집 무대에 오르게 된다. 타이틀 곡도 아닌, 수록곡이 역주행해 공중파 무대에 오른 것이다. 기본적인 것에 충실하자는 고집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Moscow Moscow’의 뜻밖의 성공을 두고 황현은 이렇게 회자했다.


'모스코 모스코'가 터지고 많이 배웠다. 가수에게는 음악이 첫 번째고, 대중도 음악을 가장 중요하게 보는구나 싶었다. 곡이 좋다고 입소문 나면 그 영향을 받는다는 것도 알았다.

2020.07.05. [N딮:풀이] 황현 인터뷰 中


온앤오프만의 이야기를 쓰되, 탄탄한 음악이 이를 뒷받침하는 것. 기본에 가장 충실할 때 대중은 뒤를 돌아본다는 것. 온앤오프와 황현의 고집은 그렇게 ‘Moscow Moscow’와 ‘사랑하게 될 거야’를 통해 조금씩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P.S. ‘사랑하게 될 거야’의 Mnet 서바이벌 <로드 투 킹덤> 편곡 버전인 ‘The 사랑하게 될 거야’와 ‘Moscow Moscow’를 한층 더 깊게 음미하고 싶은 분들에게 아래의 아이돌레 기사를 추천한다. 황현은 베토벤이 틀림없다.





우리만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 Mnet



앞선 노래들을 통해 온앤오프는 점차 이름을 알려 가고 있었으나, 다음 단계로 뛰어오를 ‘한 방’이 필요했다. 그렇게 온앤오프는 Mnet의 보이 그룹 서바이벌 프로그램 <로드 투 킹덤>의 문 앞에 섰다. 다수의 그룹이 출사표를 던진 만큼 이들에게는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기회였고, 사실상 마지막 기회였다. 지난 12월 12일에 진행된 온앤오프의 첫 단독 콘서트 마지막 공연 날 오프팀 리더 제이어스는 공연 말미의 소감에서 이에 대해 잠시 언급한다.


사실 저희가 서바이벌 프로그램 나가기 전까지는 마지막이라는 생각까지 했어요. 근데 그때는 마음이 굉장히 편했어요. 그냥 창피하지만 말자. 온앤오프라는 가수가 있었다 라는 것을 그냥 알려주고 싶었거든요. 그냥 그 정도로만 준비했어요. 하다 보니까 좋은 무대들도 그렇고 멤버들의 개인 매력도 많이 나오고. 점점 더 사람들이 우릴 좋아하게 되고, 온앤오프의 노래를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니까. 물론 그것도 몸적으로는 힘들었는데 되게 기뻤어요. 그리고 우리의 결과로서도 굉장히 좋았으니까. 한 줄기 빛처럼 퓨즈의 응원이 저희를 이렇게 계속 노래하게 해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2021.12.12. 제이어스 공연 소감 中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기회, 그 첫 무대에서 5등 성적표를 받아 든 온앤오프와 황현 그리고 온앤오프의 안무가 김영오는 칼을 빼 들었다. 그 결과 샤이니의 ‘Everybody’를 커버하며 3위, 자신들의 노래로 구성한 ‘The 사랑하게 될 거야’로 2위, 비의 ‘It’s Raining’을 커버하며 마침내 1위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데뷔 이후 온앤오프 앞에 붙은 첫 ‘1위’ 였다. 가히 완벽한 팀플레이였다. 퍼포먼스와 편곡을 아울러, 온앤오프는 마치 꼭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매 경연 무대 위를 날아다녔다. <로드 투 킹덤>을 통해 많은 이들은 화려한 편곡에 집중하며 온앤오프의 성장을 가능케 한 든든한 동반자 황현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췄는데, 황현은 이에 대해 ‘곡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보컬에 관한 언급이 많이 나오는 게 좋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우리’가 아니었다면 할 수 없었을 온앤오프의 도약이었다.





우리가 가장 잘하는 것을 하자

© WM Entertainment



<로드 투 킹덤>으로 탄탄한 팬덤을 구축한 온앤오프는 곧바로 ‘스쿰빗 스위밍’ 활동을 통해 팬들을 만났고, 약 6개월간의 준비 끝에 데뷔 이후 첫 정규앨범을 발표했다. 팬들의 쏟아지는 기대와 궁금증 속에서 그들이 들고나온 것은 다름 아닌 ‘예술’이었다. ‘Beautiful Beautiful’의 후렴구에 등장하는 ‘내 삶의 모든 외침이 곧 예술’이라는 가사를 두고 무슨 생각으로 이런 가사를 썼냐고 묻자 황현은 “케이팝으로 예술 한번 해보고 싶었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장난스러운 말로 받아들여질 수 있으나, 모노트리 유튜브를 통해 밝힌 황현의 ‘Beautiful Beautiful’ 작곡 비하인드에서 그는 진지하게 예술을 의도했음을 알 수 있다.


‘Beautiful Beautiful’의 도입부에서 멤버들이 힘차게 부르는 ‘Brrram 빠밤 빠밤 빰빰 빰빠밤빠밤 빰’ 부분은 금관악기 특유의 첫소리를 흉내 낸 의성어로, 온앤오프의 목소리를 가장 잘 아는 작곡가 황현이 그들의 목소리를 자랑스럽게 악기 대신 쓴 것이다. 클래식 작곡과를 졸업한 황현의 치밀한 의도가 돋보이는 가사와 보컬 디렉팅이었다. 마찬가지로 후반부에 모든 악기 소리가 줄어들 때, 온앤오프는 아카펠라로 메인 멜로디를 숨죽여 부른다. 화려한 아이돌의 댄스곡 중간에 아무런 반주 없이 아카펠라를 삽입한다는 것은 그들의 목소리에 가진 자부심과 믿음이 없다면 불가능한 프로듀싱이다. 멤버들이 가장 잘하는 것을 정확히 표현해냄과 동시에 ‘이건 몰랐지?’ 싶은 부분을 발굴해내는 것. ‘최고의 악기는 목소리다’라는 황현의 신념과 그간 그들이 함께 쌓아온 서사는 온앤오프에게 데뷔 후 첫 ‘음악방송 1위’의 기쁨을 맛보게 해 주었다.


여담으로, 음원의 ‘Brrram 빠밤 빠밤 빰빰 빰빠밤빠밤 빰’에는 황현의 목소리도 들어가 있다. 온앤오프와 황현의 하모니로 시작한 노래 ‘Beautiful Beautiful’은 긴 장막을 함께 걸어온 온앤오프와 황현이 세상에 던질 수 있는 가장 찐하고 뜨거운 응원이자 자신들에게 보내는 파이팅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 GEARLOUNGE



언제부턴가 단일 제작자 프로듀싱 그룹을 찾아보기 힘들어진 요즘, 한결같은 황현과 온앤오프의 고집은 가끔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기도 한다. 변화가 잦은 케이팝의 특성상 언제나 다양한 것을 시도해야 아이돌이 살아남을 확률이 더욱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온앤오프와 황현은 4년째 함께하며 본인들이 가장 잘하는 것을 알고, 꾸준히 한결같은 모습으로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최대를 끌어내 매번 예상치 못한 결과물을 우리에게 펼쳐 보여준다. 그 와중에도 서로에게 ‘(황현은) 온앤오프에게 기둥 같은 존재’, ‘(온앤오프는) 곡을 쓰는 입장에서, 음악적으로 조금 더 욕심을 낼 수 있게 만들어준 팀이자 내가 가지고 있는 가수의 이상향을 채워주는 그룹’이라며 변치 않는 파트너십을 보여준다. 소신 있는 그들의 예술은 주류에 묻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 사이에서 제빛을 잃지 않고 반짝인다. 자신들만의 것을 찾아 한발 한발 나아가는 온앤오프와 황현의 행보는 작금의 케이팝 시장에서 눈에 띄고 오히려 똑똑해 보인다.


다섯 멤버의 빈자리는 클 것이다. 물론 허전하기도 할 것이다. 이제 온앤오프와 황현이 펼쳐 보이는 온앤오프만의 음악은 1년 6개월 후를 기약해야 하지만, 이 기다림은 우리에게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온앤오프, 그리고 황현이 앞으로도 우리에게 보여줄 것을 기대하는 시간으로 쓰기에도 부족할 것이니까.




+ 온앤오프의 첫 단독 콘서트 마지막 공연이 끝나고 올라온 황현의 인스타 스토리를 첨부한다. 황버지, 오래오래 온앤오프와 음악 해주실 거죠?



퓨즈보다 더 온앤오프에 진심인 황버지





 

참고


[1] 스타뉴스, 2020.04.08.


[2] news1, 2020.07.05.


[3] 뉴스엔미디어, 2021.11.03.

온앤오프 아이돌 최초 동반입대, K팝 팬들 응원 쏟아진 이유[이슈와치]


[4] 모노트리 유튜브, 2021.03.05.

[뒤풀이] ??? : 최고의 악기는 목소리거든요 / 온앤오프(ONF) - Beautiful Beautiful 2부


[5] 스포츠동아, 2021.09.17.

온앤오프 “리더 두 명이라 든든” [화보]


[6] 채널예스, 2021.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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