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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딩가

우주소녀의 코스모는 무엇인가요?


ⓒ 스타쉽엔터테인먼트

SM의 AI라는 새롭고 파격적인 시도에 따라 아이돌 세계관이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아이돌마다 세계관, 스토리텔링이 중요해진 이 시국에, 당신에겐 에스파 외에 어떤 걸그룹의 세계관이 인상 깊게 남았는가? 필자의 경우 보물 찾기, 평행세계, 무한 확장 등 다양하고 체계적으로 발전된 세계관들을 여자 아이돌에게서는 보기 힘들었다는 아쉬움이 있다. 그렇기에 나름대로의 탄탄한 세계관을 유지해 온 우주소녀를 주목하고 싶다.


우주소녀는 이름처럼 ‘우주’라는 큰 콘셉트를 기반으로 그들만의 서정적, 몽환적인 색깔을 만들어 왔다. ‘우주-코스모(cosmo)’라는 테마 위에서 어떤 세계관과 스토리를 펼쳐왔는지, 그리고 현재 우주소녀의 방향성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6년 동안의 변화를 정리해 보려 한다. (<Boogie Up>과 <흥칫뿡(Hmph!)>은 유기적 스토리텔링에 포함되지 않는 스페셜 앨범이기에 글에서 제외했다.)


평범한 ‘소녀’를 돋보이게 만들어 준 ‘별자리’ 세계관

2016년부터 2017년, 우주소녀는 데뷔 초의 여느 걸그룹들과 마찬가지로 사랑에 빠진 소녀를 노래했다. 타이틀 곡인 <Mo Mo Mo>, <비밀이야(Secret)>, <너에게 닿기를(I wish)>, <HAPPY>는 각각 첫사랑, 짝사랑, 운명적 사랑의 출발, 사랑의 결실을 노래하며 사랑을 통한 소녀의 성장기를 유기적으로 보여주었다.


타 걸그룹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사랑에 빠진 소녀’ 서사에서 우주소녀를 돋보이게 한 차별점은 ‘별자리 세계관’이었다. 황도 12궁을 차용한 이 세계관에서 열두 명의 멤버들은 자신의 생일에 따라 서로 다른 별자리를 상징한다. 이 세계관이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비밀이야(Secret)> 활동 때부터이다. <비밀이야>의 몽환적인 음악과 콘셉트는 이후 우주소녀의 방향성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이를 통해 본격적인 우주 세계관의 포문을 열었다. 별자리 세계관의 배경을 황도 12궁에서 새로운 별자리인 뱀주인자리가 추가된 황도 13궁으로 변경함으로써 당시 프로젝트 걸그룹 I.O.I의 멤버였던 연정의 우주소녀 합류를 자연스럽게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세계관 변화는 뮤직비디오에서 직관적으로 나타난다.


우주에서 지구로 떨어진 연정이 본인이 상징하게 된 뱀주인자리 위치의 마법진 위에서 눈을 뜨고, 그런 연정에게 손을 내미는 보나. 별자리 세계관의 확장과 새 멤버 연정의 합류를 동일시한다.


‘꿈’의 시작: ‘마법 학교 세계관’

2018년 미니앨범 [Dream your dream]을 시작으로 단순한 사랑을 벗어나 ‘꿈’을 매개로 한 우주소녀의 또 다른 세계관이 시작된다. <꿈꾸는 마음으로(Dreams come True)>, <부탁해>, <La La Love>, <이루리(As you wish)> 네 활동에서 연속되는 ‘마법 학교 세계관’에서 우주소녀는 꿈을 이루어 주는 마법 학교 학생이다. 이들은 현실과 꿈 사이에서 꿈을 배달하는 1학년 포레우스 유닛(φορευς, 다영, 여름, 연정, 은서), 꿈을 수집하는 2학년 아귀르떼스 유닛(αγυρτης, 성소, 선의, 수빈, 엑시), 꿈을 완성하는 3학년 에뉩니온 유닛(ενυπνιον, 설아, 보나, 다원, 미기, 루다)으로 구분된다. 꿈을 이루어 주기 위해 마법 학교에서 공부하던 우주소녀는 갈등과 불화로 인해 흩어졌다가 서로의 염원이 닿아 다시 모이게 된다. (발매 시점과는 반대로 <부탁해>, <꿈꾸는 마음으로(Dreams come True)> 순으로 뮤직비디오를 보면 이해하기가 수월하다) 그렇게 다시 만난 우주소녀는 그들만의 카니발을 즐기며 마법 학교를 졸업한다. (<La La Love>)


마법 학교의 설정은 졸업 후의 <이루리>에서 종결되었다. 졸업 후 달 소원 기지국에서 다른 사람들의 꿈을 이루어 주는 일을 하는 우주소녀는 그들이 있던 달을 떠나 지구로 가는 자신들의 꿈을 이루며 스토리를 완성한다. <꿈꾸는 마음으로>에서 꿈을 꿈꿔왔던 소녀들은 이제 자신, 그리고 타인의 꿈을 이루어 주는 성장한 모습으로 마법 학교 세계관을 마무리 지었다.


우주에서 지구로, 소녀에서 숙녀로

‘마법 학교 세계관’의 종결 이후 <BUTTERFLY>, <UNNATURAL>, 그리고 유닛곡 <Easy>까지, 이전의 색은 유지하되 우주소녀의 방향성은 확연히 달라졌다. 별자리, 마법 학교처럼 특정한 소재를 매개로 한 세계관이 아닌, 이전의 ‘소녀’를 벗어나 ‘사랑에 불완전한 숙녀’, 그리고 ‘욕망에 솔직하고 당당한 숙녀’로 성장하는 우주소녀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서로와의 관계성과 타인의 꿈이 중심이었던 이전과는 달리 개인의 심리와 성장에 초점을 맞춘다.


<BUTTERFLY>는 이러한 변화를 매끄럽게 이어준 터닝 포인트이다. 처음으로 우주소녀는 사랑이나 타인이 아닌 나 자신에 집중하며, 아프더라도 나비처럼 진정한 자유를 꿈꾸며 소녀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통과의례를 보여준다.

이후 <UNNATURAL>은 불완전한 숙녀의 사랑을 표현한다. 겉으로는 무심한 척 냉정함을 유지하나 속으로는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들의 이중성이 토픽이다. 이전 사랑 노래들과 비슷한 결이라고 느낄 수 있으나, <UNNATURAL>부터는 그들의 ‘우주’ 콘셉트에서 벗어나 도회적 이미지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우주소녀 뮤직비디오의 배경에는 ‘우주’ 콘셉트를 살리기 위해 광활한 우주, 하늘, 평원 등의 자연적인 배경이 빠지지 않았고, 별똥별, 풍등, 나비 등 그간의 세계관들을 연결해 주는 소재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UNNATURAL>의 뮤직비디오는 차갑고 모던한 공간을 배경으로 거울 등의 오브제를 사용했다. 우주를 배경으로 관계성, 스토리 등에 집중했던 이전과는 달리 현실적 상황 속 인물에 초점을 맞춘 변화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변화의 최고점은 WJSN THE BLACK 유닛의 <Easy>에서 볼 수 있다. [My attitude]라는 앨범명 자체에서도 나타나듯이, ‘My attitude=easy’라는 확고한 태도를 통해 ‘원하면 가진다’는 당당하고 적극적인 여성상을 제시한다.

 

본인의 욕망에 솔직해지는 이러한 ‘주체적 자아 형성’의 스토리텔링은 우주소녀와 같은 3세대 여자 아이돌이 연차가 늘어남에 따라 변화의 필요성을 느낄 때 흔히 볼 수 있는 패턴이다. 대표적으론 트와이스와 여자친구가 있다. 두 그룹 모두 데뷔 초 발랄하고 사랑스러운 정석적 ‘소녀’ 콘셉트로 정상의 반열에 올랐다가 연차의 흐름에 따라 성숙한 콘셉트로 변화했다. 순수함을 추구하던 트와이스의 수동적인 사랑은 상대를 갈망하고 집착하기까지 하는 적극적인 사랑으로 변화했고, 여자친구는 ‘청량 마녀’라는 콘셉트로 흑화하며 그들의 세계관을 완성했다. 다만 이들의 변화가 매우 급격했기에 약간의 아쉬움을 가지고 그전 콘셉트를 그리워하는 대중들도 존재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주소녀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편이다. 기존의 우주소녀만의 몽환적인 음악적 색은 거의 그대로 가져오되 이를 설명하는 스토리만 변화해가기 때문이다. 이 변화 또한 순차적으로 연결되어 우주소녀의 성장을 더 자연스럽게 만들어 준다.

그러나 필자에게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면, 우주소녀만의 ‘몽환적’인 색을 만드는 데 바탕이 되었던 ‘우주’ 세계관이 점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UNNATURAL>과 <Easy>에서는 이전 서사들이 거의 드러나지 않고 도회적인 모습이 위주가 된다. 우주소녀와 같이 데뷔 때부터 그들만의 연결된 세계관이 존재하는 걸그룹 자체가 희귀하므로, 걸그룹 세계관이 희미해져 가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이 있다. ‘자아 찾기’라는 아이돌 세계관 트렌드에 따른 변화도 긍정적이지만, 과거의 우주 콘셉트를 더욱 직관적으로 현재 서사와 연결해 우주소녀만의 주체적 여성상을 만들어 나가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앞으로 우주소녀가 펼쳐갈 새로운 코스모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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