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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아처

마이데이의 ‘아픈 길’ : 항상 ‘을’ 일 수밖에 없는 팬들의 서러움


아이돌을 향한 팬들의 사랑을 소위 ‘아가페’(무조건·일방적인 절대적인 사랑)에 비유하고는 한다. ‘내 가수’를 보기 위해서라면 추위에서 세 시간 넘게 기다리는 일도 감내하는 팬들. 그렇게 단 10분이라도 ‘내 가수’의 얼굴을 볼 수 있다면 그저 좋은 팬들. 오빠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라고 말하며 그의 웃는 모습 하나면 행복해지는 팬들. 피곤한 기색이 보이면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까 마치 자신의 일처럼, 아니 자신의 일보다 더 걱정하는 팬들. 이러한 마음을 소속사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일까, 사실 팬들은 소비자임에도 불구하고 ‘을’이 되는 경우가 많다. 덕질을 하다 보면 회사 직원 및 관계자들이 팬심을 이용해 팬들을 상대로 ‘갑질’을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이돌에게는 수많은 팬이 있고, 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회사의 입장에서는 굳이 팬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당장 팬 한 명이 오프라인 이벤트에 오지 않으면, 그 자리를 채우는 또 다른 팬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팬들이 부당한 대우에 대해 목소리를 내더라도 결국 그들이 또 올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당장 자신들에게 오는 직접적인 타격은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팬들은 이렇게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보기 위해서라면 부당한 일을 겪더라도 참는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라 이벤트 현장에서 직접 불만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엄청난 리스크를 감당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혹시나 이의를 제기했다가 ‘진행요원의 지시 불응’이라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오르게 될 경우, 다시는 내 가수를 보러 가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사진 출처: 트위터 데이식스 총공 계정 @day6total


그러던 어느 날, 한 팬덤이 드디어 폭발했다. 데이식스의 팬덤 마이데이가 JYP와 스튜디오제이(JYP 산하 레이블)를 상대로 보이콧을 선언한 것이다. 13일에 있었던 스페셜 이벤트에서 팬매니저들의 불공정한 대우가 발단이었다.

13일은 데이식스 미니 4집의 마지막 오프라인 팬 이벤트가 있었던 날이었다. 기존에 진행하던 사인회가 아니라, 미니 라이브와 스탬프회라는 새로운 형식의 팬 이벤트였다. 응모는 사인회와 동일하게 앨범 구입으로 이루어졌다. 여기서 문제가 된 것은 당일 이벤트 현장에 온 팬들에 대한 팬매니저들의 불공정한 대우였다. 팬이 멤버와 인사를 하자마자 바로 다음 멤버로 넘어가게 하거나 손을 잡지 못하게 하는 등 ‘팬 이벤트’란 것이 무색하게 팬들과 아티스트의 소통을 팬매니저들이 앞장서서 막았다. 분명 사인회와 동일하게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고 참여한 유료 이벤트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제제를 받아야 했던 팬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팬매니저들의 일관적이지 못한 제재는 팬들의 박탈감마저 조성했다. 이벤트 후반부로 갈수록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남았다는 이유로 매니저들은 관대해졌고, 뒷 번호 팬들에게는 앞 번호 팬들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던 멤버들과의 긴 대화 시간이 허용되었다.


스탬프회에서의 서러움을 토로하던 팬들은 커뮤니티에서 각자의 경험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토론하기 시작하였다. 13일 스탬프회에서 뿐만 아니라, 여태 있었던 모든 오프라인 이벤트에서의 대우에 대해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공통된 의견으로는 제재가 너무 과하다는 것이었다. 타 그룹의 팬사인회에서는 보통 한두 명의 팬매니저가 단상에 올라와 이벤트 진행을 돕는 반면, 데이식스의 경우 평균 5명의 팬매니저가 행사를 진행한다. 그들은 초시계로 30초가 지나면 멤버 얼굴이 보이지 않게 팔을 뻗거나 앨범을 미리 다음 순서의 멤버 앞에 가져다 놓고 ‘이동하실게요’를 반복한다. 사인을 아직 다 마치지도 않았는데 넘어가라고 얘기하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팬이 언제 대화를 시작했는지 고려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넘어가세요’, ‘이동하세요’를 연호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화가 중간에 끊기거나 멤버가 한 말을 듣지 못해 다시 물어봐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팬매니저들의 무례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1분이 지난 후 옆 멤버에게 넘어가지 않으면 팬의 손목을 잡거나 4명의 매니저가 붙어 강제로 이동시키는 등 무례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과도한 줄 세우기도 큰 문제라고 지적되는 것 중 하나이다. 한 멤버 앞에 많게는 5명의 팬이 줄을 서서 자신의 순서를 기다린다. 팬들은 이미 옆 멤버에게 많은 대기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앞의 멤버와 더 대화를 할 수 없고 자신 역시 대기줄로 넘어가야 하는 상황이 불합리하다고 느낀다. 줄을 길게 세우는 것은 안전 문제와도 직결되는데, 좁은 공간에서 줄을 서다 보니 무대 뒤로 떨어질 뻔하기도 한다.


앞서 보이콧의 발단이 되었던 일관성 없는 제재 역시 팬매니저의 행태를 논의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다. 초반에는 엄격하게 제재를 가하는 반면 중반부로 갈수록 해이해진다. 특히 팬매니저가 (업무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카톡을 하는 상황이라면 운이 좋게도 더 긴 시간 동안 멤버들과 얘기할 수 있다. 이밖에도 아티스트와 팬의 대화를 엿듣고 비웃기, 아티스트에게 건네는 편지를 가로채거나 읽기, 과도한 몸수색, 화장실을 자유롭게 다니지 못하게 하기 등 데이식스 팬매니저의 만행을 하나하나 얘기하자면 끝이 없다. 그동안 어쩔 수 없이 참아왔던 마이데이는 더 이상 이러한 회사 직원들의 부당한 대우를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며 보이콧을 선언하게 된 것이다. ‘빠순이 무시 풍토’는 비단 데이식스의 팬덤만이 겪는 문제가 아니다. 케이팝 아이돌 팬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봤을 ‘을’의 서러움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하는 핵심은 팬매니저의 존재 이유, 팬매니저의 본질적 역할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팬매니저의 역할은 아티스트와 팬들의 소통을 돕는 것이지 팬과 가수의 소통을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막는 것이 아니다. 물론 무례한 팬이 있다면 그 팬으로부터 아티스트를 보호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그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얼굴을 마주하고 ‘좋아한다’, ‘응원한다’고 말하러 간 팬을 극성 취급하고 무시하며 30초 이후에 넘어가게 만드는 것은 너무하지 않은가.


필자는 팬들이 ‘소비 중단’이라는 어쩌면 극단적인 방식으로 단합을 한 것이 얼마나 큰 결정인지 회사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평소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보기 위해 많은 불이익을 감수하던 팬들이, 이제 그 소비를 중단하면서까지 피드백을 받아내고자 한다는 것은 큰 결심이 필요한 결정이다. 내가 소비를 하지 않아도 그 자리를 채우는 팬이 있다면 보이콧은 의미가 없어지지만, 함께 단합하여 소비를 중단했다는 것은 모두가 그만큼 피드백이 절실하다는 뜻이다. 현재 마이데이는 데이식스 리얼리티 불매, 메일 총공, 엽서 총공, 네이버 댓글 총공, 유튜브 구독 취소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하며 피드백을 촉구하고 있으나 JYP는 늘 그래 왔듯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최근 ‘슈퍼인턴’이라는 프로그램에서 JYP의 수장 박진영은 회사가 현재 너무 잘 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글쎄다. ‘소통’이 결여된 회사가 앞으로도 그 명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덕질이라는 쉽지만은 않은 ‘아픈 길’을 걷는 함께 걷는 ‘빠순이’로서 서러움을 담아 감히 외쳐본다. ‘소비자를 무시하는 회사에게 미래는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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