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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뚜뚜

나, DAY6, 그리고 <You make Me> - 가사의 미학 외전 #2

| Scene #1


“여러분, 이 그룹 아세요?”


강의를 듣던 중 연사의 입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이름이 튀어나왔다. 시간은 오후 4시.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이를 수도, 늦을 수도 있는 시간이다. 겨울의 차가운 공기와는 다르게 공간을 따스하게 채우던 햇살 탓인지 잠시 몽롱해졌던 나는 이 말을 듣자마자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그러고선 눈 앞의 연사가 한 말을 곱씹어봤다. ‘정말?’, ‘아니 어떻게?’ 따위의 정제되지 않은 말들이 머릿속을 떠돌았다. 그런 와중에 이어지는 뮤직비디오 감상. 상황을 파악할 새도 없이 내 입은 파블로프의 개마냥 가사를 쉴 새없이 내뱉었다. 다 끝나고서야 깨달았다.


아, 여기는 100명이 넘는 실시간 온라인 강의실. 아뿔싸, 난 카메라를 켜고 있었네.


실제로 만난 적도 없는 학우들 앞에서 (당연히 음소거된 상태로) 정확히 3분 38초 동안 열창한 그 노래의 제목은 <뚫고 지나가요>였다.

Ⓒ JYP ENTERTAINMENT


| Scene #2


“노래 좋네. 누구 노래야?”


비대면 수업의 장점은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실시간 강의가 대부분이라 책상 앞에 꼼짝없이 앉아 있어야 하는 건 피차일반이지만, 장거리를 통학하던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다. 수업이 끝나면 스피커로 듣고 싶은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책을 읽거나, 주체할 수 없이 좋은 노래를 찾으면 거실로 나가 뮤직비디오를 틀어놨다. 비록 네 명밖에 없는 집이지만 한 명이라도 더 이 노래를 알 수 있도록, 더 널리 퍼져나갈 수 있도록, 하는 마음에서였다.


실패도 많았다. 케이팝 특유의 화려한 구성 탓인지 노래가 어렵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등 종종 핀잔을 듣곤 했다. 그때마다 조용히 리모콘을 들어 정지 버튼을 누르며 다짐했다. ‘다음에는 기필코 마음에 드는 노래를 가져오마!’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지만 케이팝에 진심이 된 지 벌써 1n년째. 곧 있으면 강산이 두 번 바뀔 시점까지 온 이상 ‘탈덕’은 없다. 오히려 앞으로 나갈 추진력이 더하면 더했지 나만의 ‘취향 나누기’ 행위를 멈출 수는 없었다.


그날도 그랬다. 이전의 실패를 겪고 (첨언하자면 그 곡은 연간 차트에 들 정도로 흥행했다.) 아무 생각 없이 좋아하는 그룹의 신곡을 틀었을 때 생각했다. ‘아, 이건 무조건 되는 노래다.’ 곧장 거실로 가서 뮤직비디오를 틀고 자리를 잡았다. 평소의 뮤비와는 다르게 배우들이 등장해 사랑하고, 다치고(아직도 이건 왜 나온 건지 모르겠다), 책망하고, 다시 웃는 내용이었다. 한 두 번쯤 들었을까. 멀리서 누군가 내게 말을 걸었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질문인 ‘누구 노래냐’고!


이날은 2021년 4월 19일. <You make Me>가 발매된 날이었다.


맞다. 이건 전부 DAY6 얘기다.

Ⓒ JYP ENTERTAINMENT


| Scene Commentary


위의 두 장면은 모두 필자가 직접 경험한 실화다. 첫 장면을 좀 더 풀어보자면 <배철수의 음악캠프>로 널리 알려진 배순탁 작가가 학교 강연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케이팝 그룹으로 DAY6(이하 데이식스)를 꼽은 것에서 비롯된 사건이었다. 팝 위주의 방송을 진행하시기에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름이 언급되어 매우 놀랐었다. 게다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 당시 신보였던 <뚫고 지나가요>라니! 너무 놀란 탓일까. 카메라를 켜둔 것도 잊고 ‘랜선’으로만 만난 학우들 앞에서 열창했다. 지금 생각하면 내 자신에게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지만, 그땐 반가움이 더 앞섰다.


‘그땐’이라고 쓴 데는 한동안 그들의 음악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의 사건이 벌어졌을 때는 케이팝 권태기가 잠시 누그러졌던 시기였는데, 얼마 못 가 다시 정처 없이 해외 팝 세계를 떠도는 망령이 되었다. 볼거리가 넘쳐나는데도, 날이 갈수록 수준이 높아지는 음악이 바로 케이팝 씬에 있는데도 손이 안 갔다. 귀가 열리지 않았다. ‘왜?’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끝없이 던져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너무 많이 봐서 질렸나.’ 그런 와중에도 여전히 새로운 보석들을 찾으면 오래 가진 않아도 심장이 뛰었기에 그런 이유는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의문 속에서 한 해의 마지막을 보냈다. 데이식스 역시 잠시간 잊혀졌다.


다시 그들의 음악을 꺼내든 건 뜬금없게도 지하철 안이었다. 모처럼 기분 좋게 영화를 보러 가던 길, 이 감정을 만끽하고 싶어 플레이리스트를 이리저리 뒤졌다. 장르나 가수별로 구분하지 않고 몽땅 하나의 리스트에 넣기에 900곡이 넘는 곡들이 저장되어 있었는데, 딱 맞는 음악을 찾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필자는 하나의 음악을 그 노래를 듣던 때의 분위기와 연결 짓는 습관이 있다. 가령 인피니트의 <추격자>는 5월이지만 왠지 꿉꿉하던 날씨에 들었기에 지금도 그때가 되어야 비로소 플레이리스트에서 꺼내든다. 얼마 전 새로운 버전으로 발매된 워너원의 <Beautiful> 역시 재생만 하면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포토카드를 교환하던 겨울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라 그 시기가 와야 듣는 편이다.


이렇게 다소 까다로운(?) 선곡 기준을 가졌기에 그 순간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곡을 찾기가 어려웠다. 결국 포기하고 한강을 건널 때마다 듣던 Official髭男dism의 <イエスタデイ>이나 재생하려던 그때, 목록의 끄트머리에서 <You make Me>를 찾았다.

Ⓒ JYP ENTERTAINMENT


| 이별에서 사랑까지, 거슬러 오르는 데이식스의 사랑


이별이 테마인 데뷔곡을 떠올려보자. 바로 떠오르는 곡이 없는 게 당연하다. 그렇다면 애초에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일까. 데뷔는 곧 시작이기에 조금이라도 더 반짝이게 하는 것이 케이팝 씬의 이치다. 수많은 별들 중에서 우리가 가장 빛난다는 걸 증명하려는 듯 눈과 귀를 사로잡을 음악과 콘셉트를 내놓는다. 대개 이런 음악들은 가볍고 청량하거나, 화려하고 어둡다. 이들의 가사는 공통적으로 ‘더 멋진 나’, ‘모두가 부러워하는 나’, 그리고 ‘네가 사랑하는 나’를 전제로 둔다. 즉, 곡의 분위기에 상관없이 기본적으로 긍정적 정서에 바탕을 두고 있기에 이별의 테마는 드물다. 하지만 ‘드물다’는 말에는 ‘아주 적어도 있긴 있다’는 의미가 숨어 있다. 데이식스에 대해 끄적거리고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하나 아닐까. 데이식스는 데뷔부터 이별을 노래한, 조금은 ‘특이한’ 아티스트다.


그들의 데뷔곡인 <Congratulations>는 제목만 보면 다른 아이돌의 데뷔와 뭐가 다르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무겁게 깔리는 드럼 비트로 시작하는 도입부부터 뭔가 이상함을 감지하다 ‘이제는 연락조차 받질 않’는다는 첫 소절에서 이전과는 뭔가 다른 시작이라는 걸 직감한다. 이어지는 가사 속 화자는 다른 사람에게로 떠난 연인을 향해 하고 싶었던 말들을 가감없이 꺼내든다. ‘그 남잔 나보다 더 나?’라고 물으며 연인의 새로운 연인을 향한 일말의 질투심을 드러내고, ‘잘 나셨’다며 속에만 묻어뒀던 감정을 터뜨린다. 필자가 놀랐던 부분이 바로 이런 직설적인 가사들이었는데, 이별을 소재로 한 기존의 케이팝 곡들은 지나간 사랑을 예쁘게 포장하거나 ‘네가 망했으면 좋겠다’는 말도 은유적으로 돌려 말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데이식스의 음악은 뭔가 달랐다. 가장 빛나야 하는 시작부터 이미 끝난 사랑을 노래하고 있었다. 그것도 헤어진 연인에게 ‘찌질하다’고 손가락질 받을 수 있는 화자와 함께 말이다. 이런 역설적인 상황 속에 놓인 청자였던 필자는 조용히 반복 재생 버튼을 눌렀다. 취향에 맞는 멜로디는 차치하고도 또렷하게 들리는 가사 속에서 진심이 묻어났다. 마치 자신들이 정말로 이별한 것처럼, 떠나간 사람이 마치 나라도 되는 양 체념과 분노 그 어딘가에서 외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시작과 끝은 서로 맞물려있다. 원에 비유하자면 시작점과 끝점은 같은 셈이니 그건 그것대로 완결성을 가진다. 데이식스의 시작이 끝을 읊조리는 노래였다는 건 결코 특이한 것이 아닌, 그 자체로 온전한 완결성을 가진 아티스트의 출현을 알리는 신호였을지도 모른다.


조금은 충격으로 다가왔던 데뷔 이후 그들의 행보가 궁금해 신보를 차근차근 따라갔다. 그렇게 5년에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들의 음악은 이별에서 사랑의 시작으로 흘러갔다. 마치 연어가 고향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인간이라는 존재가 유에서 무로 돌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그들 역시 순리대로 흘러간 게 아닌가, 싶다. 세상에서 가장 처참한 상태에서 시작해 가장 아름다운 나날을 노래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결코 추억을 회상하는 것이 아닌 현재의 사랑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매 순간 간절하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그녀에게 장난스럽게 다가가면서도 사랑이 이뤄지길 간절히 원하고(<장난 아닌데>), 이젠 뜨뜻미지근한 사랑을 놓지 못해 상대의 대답을 기다리면서도 내심 자신을 선택하길 바란다. (<Love me or Leave me>) 하다못해 ‘너’와의 지나간 사랑도 예뻤다며 마음 한 구석에 가지런히 담아둔다(<예뻤어>).


사랑은 용기 있는 자의 특권이라는 간디의 말처럼, 데이식스는 거절과 이별의 서사에서도 과감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길 선택한다. 너에게, 나에게 모두 솔직해야 이 사랑이 완성된다는 듯 용기 있게 말한다. ‘견딜 수 있어. 오로지 너의 그 사랑이 있다면.’

Ⓒ JYP ENTERTAINMENT


| 네가 있기에 완성되는 이 삶, <You make Me>


<You make Me>는 데이식스의 노래 중에서도 사랑의 총체처럼 느껴진다. 관점에 따라 사랑이 시작되기 전일 수도, 한창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도, 이별 직전의 ‘매달리는’ 상황으로 해석할 수 있는 곡이다. 네가 나를 붙잡았기에 내가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내용이지만, 청자가 어느 시점에 서 있는지에 따라 달리 들린다. 필자 역시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와 최근 다시 들었을 때의 생각이 확연히 달랐던 경험을 했다. 뭐든 할 수 있다는 희망이 넘쳐나던 봄에는 이 곡을 사랑의 최전선에서 외치는 찬가로 해석했지만, 생의 향방이 어디로 갈지 불투명한 지금은 산란한 마음의 중심을 잡아주는 지지대처럼 느껴진다. 살면서 겪는 일 중 사랑이 가장 어렵다고 하는데 가사 속 ‘나’도 온 마음을 바쳐 사랑하고 있다. 그러니 나라고 다른 일들을 못할 이유가 있겠는가.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가 찬란한 청춘이 곁에 선 상대에게 함께 나아가자는 응원을 노래한다면, <You make Me>는 어떤 순간에도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나무를 향한 찬사와 같다. 물론 청자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고 했으니 앞으로의 생에서 이 곡이 다르게 다가올 순간도 분명 닥칠 것이다. 그때의 감정에 의문을 가질 필요는 없다. <You make Me>는 비단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오히려 ‘나’라는 존재와 ‘나’를 살아가게 하는 그 무언가로 대치하는 쪽이 더 맞지 않을까.


Man to man이든, 제3의 무언가이든 간에 사랑이 언제나 잘 되지는 않는다. 나와는 다른 존재와 갈등하며 서로 맞춰 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삶 역시 그렇다. 우리는 삶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이미 수도 없이 경험했다. 가고 싶은 곳은 저만치 떨어져 있는데, 나만 여기에 고여 있다고 자책하곤 한다. 그럴 때 필요한 건 바로 나 자신을 향한 믿음이다. 이 세상 모두가 내게서 고개를 돌리더라도 나만큼은 나를 믿을 수 있기를, 조금 느린 나를 기다려줄 수 있기를,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필요하다. 내가 ‘나’를 지지대로 삼을 때야만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데이식스가 <You make Me>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도 이게 아닐까. 아무리 어려운 시련이 닥치더라도 무엇이든 대치할 수 있는 ‘너’로 인해 희망을 안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사랑을 향한 진정한 찬가가 아닐까.

Ⓒ JYP ENTERTAINMENT


| 사랑하기에 그릴 수 있는 영케이의 그림


공교롭게도 여러 방식으로 인용한 가사들은 모두 Young K(이하 영케이)의 작품이다. 그는 매번 신보가 발매될 때마다 ‘대체 어떤 사랑을 하고 있길래 이런 가사를 내놓는 걸까’라는 감탄을 자아내는 아티스트 중 한 명이다. 시작부터 끝에 다다르기까지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힘은 무언가를 진심으로 사랑한 경험, 모든 순간을 소중히 담아두는 세심함에서 출발한다. 이런 역량은 한 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결코 자만하지 않고 겸손한 자세로 다가가는 것. 내가 이 세상을 믿는 만큼, 이렇게 사랑하는 만큼 그려낼 수 있는 삶의 색채를 소중히 여기는 것. 영케이가 데이식스를 통해 그려낸 사랑 역시 여기서 출발하지 않았을까. 삶이라는 캔버스 위에 그려내는 그의 그림에는 이제껏 만나지 못한 사랑이 있을 것만 같다.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You make Me> 속 한 구절로 마무리한다.


붙잡아 줘

살아 있다는 게

두렵고 버겁긴 하지만

견딜 수 있어

오로지 너의

그 사랑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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