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뉴트로(Newtro)’가 우리 문화 전반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뉴트로는 ‘New’와 ‘Retro’를 합친 신조어로 복고를 새롭게 즐기는 경향을 말한다. 뉴트로로 인해 패션의 유행은 이미 1990년대를 지나 50년대까지 거슬러 가고 있다 거기에 필름카메라, CD 플레이어 등 레트로틱 아이템들까지 인스타그램의 영향으로 유행의 급물살을 타고 있다. K-pop 역시 뉴트로를 전면적으로 받아들여 많은 디스코 트랙들이 발매되어 인기를 얻고 있다.
디스코는 1970년대 중반 태동하였으며, 그 모태인 펑크의 16비트를 8비트로 만든 것이다. 펑키한 기타 선율 혹은 건반 소리를 들으면 누구나 몸을 들썩이며 춤을 출 수밖에 없을 정도로 흥겨움이 넘친다. 디스코의 시초는 미국의 퀴어 클럽으로 알려져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롤러장, 콜라텍 등에서 많은 사람이 즐기며 인기를 얻었다. 디스코가 K-pop을 즐기는 MA 세대보다는 그 부모님 세대에게 더 친숙한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티아라의 ‘롤리폴리’, 원더걸스의 ‘Tell Me’ 등의 영향으로 필자의 또래에게도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
빌보드에 등장한 디스코와 방탄소년단의 ‘Dynamite’
BTS (방탄소년단) 'Dynamite' Official MV
사실 디스코의 유행은 올 상반기 빌보드에서 먼저 두드러지기 시작한 경향이다. Doja Cat의 ‘Say So’, Dua Lipa의 ‘Don’t Start Now’, The Weekend의 ‘In Your Eyes’ 등이 이미 큰 인기를 끌었다. 이들은 디스코의 장르적인 특성뿐만 아니라 비비드한 컬러, 클럽의 분위기, 도시 야경의 모습을 활용하여 시각적으로도 레트로 이미지를 완벽히 재현했다. 지금도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계속 디스코 음악들이 발매되고 있다.
이러한 빌보드의 기조를 방탄소년단이 ‘Dynamite’로 이으며 우리나라에서 디스코 트랙이 본격적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Dynamite’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대중들을 사로잡아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차지하는 영광을 얻었다. 이토록 큰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라디오를 활용한 전략적인 프로모션 등 외부적인 요인도 있겠지만, 음악 그 자체와 뮤직비디오가 무엇보다 큰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Dynamite’의 뮤직비디오는 1970년대 큰 인기를 얻은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1977)의 이미지를 차용하고 있다.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는 낮에는 청소부 일을 하는 주인공이 춤을 아주 잘 춰, 토요일 밤의 클럽을 가면 인기스타가 된다는 내용이다. 방탄소년단은 뮤직비디오(혹은 VMA)에서 영화 주인공과 같이 원색의 패턴 셔츠와 조끼, 부츠컷 슬랙스를 활용한 레트로 무드의 슈트를 입고 등장한다. 또한 그동안 보여주었던 각 잡힌 칼군무와 고난도 퍼포먼스가 아닌, 간결하고 쉬운 동작으로 누구나 그들의 춤을 따라 출 수 있게끔 했다. 이런 유형의 안무는 1970~80년대 디스코가 유행하던 당시 클럽에서 사람들이 즐기던 춤이다. 사실, ‘Dynamite’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나열한 사실을 알든 모르든 간에 편히 즐길 수 있는 음악이라는 점이다,
‘K- 패치’된 디스코
그렇다면 타 K-pop 아이돌은 어떻게 디스코를 받아들이고 있을까? 가장 대표적인 예시는 (안타깝게도 아이돌은 아니지만,) 박진영의 ‘When we Disco’이다. 제목부터 직관적으로 디스코 트랙임을 알리고 있기도 하지만 레트로라고 하면 JYP가 안 떠오를 수 없다. 피처링으로는 원더걸스로 활동하던 당시 ‘Tell Me’로 복고 열풍을 일으켰던 선미가 참여함으로써 다소 심심할 수 있었던 곡의 매력을 배가시켰다.
에버글로우 'LA DI DA' 유아 'Diver'
최근 여자 아이돌들 사이에서는 레트로틱한 질감의 트랙에 사이버 펑크 이미지를 활발하게 차용하고 있다. 에버글로우는 마라맛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던 ‘Adios’에 이어 이번에는 ‘LA DI DA’에서 걸크러쉬 매력을 이어간다. 뮤직비디오에서 회색빛의 도시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이들의 의상 역시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등 비비드한 톤을 위주로 사용하여 시각적으로도 ‘뉴트로’를 표현한다. 최근 솔로로 데뷔한 오마이걸의 유아는 타이틀 ‘숲의 아이’에서 자연적인 이미지, 숲의 요정으로 이목을 모았다. 이 곡을 담고 있는 앨범 [Von Voyage]에서는 숲과 도시를 대비시킴으로써 양면성을 표현하고 있다, 그중 디스코 트랙인 ‘Diver’는 레트로틱한 사운드에 유아의 무감한 듯한 보컬로 도시를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디스코 안에서도 우리만의 특색 즉, ‘한국형 뉴트로’의 색이 유난히 짙은 K-POP도 있다. 최근 싱글 ‘딩가딩가’를 발매한 마마무는 그룹 특유의 흥겨움에 디스코의 펑키함을 더 했다. 특히 뮤직비디오는 롤러장에서 즐겁게 노는 마마무의 모습과 비비드 컬러를 활용 장면들로 한국형 뉴트로의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다. 처음으로 유닛 활동에 나선 우주소녀 쪼꼬미 역시 ‘흥칫뿡’으로 빈티지 디스코 팝에 도전했다. 엉뚱하고 발랄한 매력이 가득한 타이틀곡도 좋지만, 수록곡 ‘야야야(YAYAYA)’는 베이비복스의 곡을 리메이크한 것으로 진정한 한국형 뉴트로를 지향하고 있다.
아무래도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청량+디스코의 매력에 빠진 것 같다. 방탄소년단의 직속 후배인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 역시 19일 발매한 ‘5시 53분의 하늘에서 만난 너와 나’에서 청량한 디스코 소년들로 분했다. 최근 발매했던 ‘세계가 불타버린 밤 우린….’의 다크청량보다는 데뷔곡 ‘어느 날 머리에서 뿔이 자랐다’의 청량과 비슷한 톤앤매너를 가지고 있다. 뮤직비디오에서도 자연적인 이미지로 청량함을 보여주는 한편, 환상의 공간을 교차한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디스코의 인기는 코로나 19로 인한 세계 불황이 1970년대 미국의 불황을 연상케 하는 점에 기대고 있다. 당시 미국은 호황의 끝과 함께 불황의 시작으로 가난에 허덕이고 있던 시기였고, 그에 지친 사람들은 이지리스닝이 가능한 디스코를 즐겼다. 방탄소년단은 ‘Dynamite’로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세계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로 볼 때 방탄소년단 역시 1970년대 미국의 불황을 떠올리고 디스코를 통해 사람들을 위로하고자 하는 생각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들의 의도처럼 훗날 2020년을 떠올렸을 때, 코로나19로 마냥 힘들었던 때가 아닌 흥겨운 디스코로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았던 시기로 기억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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