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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뚜뚜

K-POP, 이제는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할 때


- 현재의 K-POP,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몇몇 대형 기획사의 행보를 후발주자들이 따르던 과거와는 달리, 현재의 K-POP은 몇 가지 단어로 정리할 수 있다. 전자음, 세련미, 그리고 군무. 여기에 더해 걸그룹은 걸크러쉬. 


 공식처럼 여겨지는 저 요소들 역시 처음 등장했을 당시에는 굉장한 센세이션을 일으킨 바 있다. 이전에도 후크송과 같은 트렌드가 존재했지만, 여러 가지 컨셉을 모두 하나로 어우러지게 하는 것은 기획사의 역량에 달려 있기에 소수의 팀에서만 조화로운 결과물을 선보이곤 했다. 그리고 중소 기획사들이 ‘패스트 무버(fast mover)’를 빠르게 따라가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역할을 수행하면서 K-POP의 트렌드가 만들어지곤 했던 것이 종전의 K-POP 산업이었다. 

ⓒ 위에화엔터테인먼트


그러나 기획사들의 자본력이 상승하고, 엔터테인먼트 산업 자체가 성장하는 모양새를 보이자 이들은 더 이상 ‘후발주자’에 머물려 하지 않았다. 유려하고 매끈한 전자음이 흐르는 음악과 각에 잰 듯한 군무, 그리고 화려한 영상미를 자랑하는 뮤직비디오까지. 이처럼 너도 나도 앞다퉈 트렌드를 발 빠르게 따라가고자 하는 모습은 K-POP 업계에도 활력을 불어넣을 만한 긍정적 현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가려는 ‘태도’가 부재한다는 점이다. 여전히 새로운 것은 대형 기획사의 기획팀이 제시하고 있고, 단지 따라가는 속도가 빨라졌을 뿐 여전히 후발주자는 후발주자에 머물러 있다. 결국 근본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고 ‘높은 수준(high quality)’에서의 도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어떻게 보면 같은 도태라도 상향 평준화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긍정적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큰 기업이더라도 혁신적인 기술을 내놓지 못한다면 그 산업에서 지는 별이 되듯이, 음악 산업 역시 모두가 제자리를 맴도는 모습만 보인다면 서서히 그 인기가 식을 수밖에 없다. 이제는 K-POP이 하나의 장르로 인정받은 이상, 이제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이 산업을 바라보아야 한다. 단순히 눈앞의 성공을 보고 속된 말로 ‘단타로 치고 빠지는’ 것이 아니라, 산업의 유지를 위해서 어떤 전략을 구사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할 차례라는 것이다.


- 과거로, 혹은 다른 세계로 가는 이탈자들. 그리고 숨듣명의 등장


 안타깝게도 ‘K-POP’으로부터의 이탈은 현재진행형이다. 여기서의 ‘K-POP’은 2010년대 후반부터 구사된 K-POP의 전형을 의미한다. 이는 수치로도 나타나는데,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 멜론(Melon)의 2013년도 연간 차트와 2019년 연간 차트를 비교해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멜론의 경우 음원 사이트 중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며, 특히 아이돌 팬덤의 결집률이 가장 높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대중적 취향과 팬덤의 취향이 혼재된 멜론 차트에서 얼마나 살아남느냐에 따라 아이돌의 인기가 측정되곤 한다. 물론 아이돌 가수의 앨범의 경우 ‘역주행’이 아닌 이상 팬덤의 스트리밍이 차트 성적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상위에 노출되기 위해서는 팬덤뿐만 아니라 대중의 관심이 기본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결국 ‘멜론 차트에서 높은 순위를 기록할수록 팬덤과 대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다만 2019년 음원 사재기 파동을 기점으로 멜론의 실시간 이용자 수가 현저히 줄어들었기에 위상이 빛이 바랜 면이 없지 않다.)

ⓒ Melon


 이런 점을 상기하고 2019년 연간 차트를 보면, 음원 사재기 파동의 영향이 적지 않음을 고려하더라도 전체적으로 봤을 때 아이돌 가수들의 음악이 차트 내에 위치한 사례가 현저히 줄어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전체적인 음악의 수준이 올라갔음에도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에는 여러 원인이 존재하겠으나, 오랜 기간 ‘덕후’로 활동한 필자 시선에서 보았을 때는 천편일률적인 음악 스타일에 대한 대중의 피로도 증가와 같은 이유로 인한 팬덤의 일부 이탈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후자, 즉 이탈한 팬덤은 어디로 갈까. 다양한 음악을 접할 기회가 많아진 만큼 다른 장르로 옮겨 가는 이들도 있지만, 아이돌 덕질은 돌고 돈다는 말이 있듯 K-POP이라는 장르 내에서 움직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때 우리는 이런 현상을 ‘숨듣명(=숨어 듣는 명곡)’의 부흥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분석으로 연결할 수 있다. ‘숨어 듣는 명곡’은 최초 등장 시기와 최근의 의미가 미묘하게 다르다는 특징이 있는데, 전자의 경우 말 그대로 ‘차마 친구와는 들을 수 없었지만 내 취향이었던 노래’를 뜻한다. 반면 최근에는 그 범위를 넓혀 ‘우리가 그 시절에 좋아했던 노래’로 통용되고 있다. 이렇게 ‘숨어 듣는 명곡’이 알음알음 퍼지면서 2019년부터 2~2.5세대 아이돌들의 음악을 재조명하는 시도가 유튜브를 거점으로 폭발적으로 등장했는데, 이때 참여자들은 단순히 그 시대의 아이돌과 음악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팬덤 활동의 전반적인 요소까지 ‘소환’하는 모습을 보였다.

ⓒ 스브스뉴스 문명특급


 이를 콘텐츠로 승화한 것이 바로 스브스뉴스의 ‘문명특급’으로, 메인 MC인 재재(이은재 PD)와 제작진의 기획 하에 ‘숨어 듣는 명곡’으로 만들 수 있는 콘텐츠들을 선보여 호응을 얻고 있다. 이들의 시도가 결코 허황된 것이 아님을 방증하듯, 지난 10월 2일 SBS에서 방영된 ‘추석특집 문명특급 – 숨듣명 콘서트’의 경우 흔히 ‘황금 시간대’라고 불리는, 지상파 방송사의 주력 예능이 방송되는 금요일 11시에 편성되었음에도 2.3%라는 유의미한 시청률을 기록했다. 특집 방송임을 감안하더라도 같은 장르를 다루는 동 방송사의 음악 순위 프로그램인 ‘SBS 인기가요’의 최근 시청률(9월 27일 기준 0.8%)과 비교했을 때 ‘숨듣명’이 K-POP 내에서도 상당한 호응을 얻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트위터와 유튜브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등지에서 지금까지 화제가 되고 있는데, 2000년대 후반에서 2010년대 중반에 덕질을 했던 이들뿐만 아니라 동 시기를 기억하는 이들의 향수를 자극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는 ‘숨어 듣는 명곡’이라는 트렌드가 더 이상 팬덤 내 마니아층의 전유물이 아니며, 유행 자체가 팬덤 전체, 더 나아가 대중에게로 퍼져 나가는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완성도는 높아졌지만, ‘골라 보고 듣는 재미’가 줄어든 K-POP

ⓒ 울림엔터테인먼트


 이들의 관심을 모은 ‘숨어 듣는 명곡’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다양성’이다. 실제로 우리가 2세대 아이돌들의 음악적 인상을 떠올려볼 때, 각각의 그룹마다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확고한 분위기가 있었다. 일례로 오렌지캬라멜은 음악적 ‘B급’을 지향하는 실력파 그룹으로, 인피니트는 90년대풍 음악에 집착과 칼군무를 장착한 그룹으로 기억한다. 또한 에프엑스는 실험적 음악과 컨셉이 돋보이는 그룹으로, 틴탑은 10대를 겨냥해 신나는 댄스곡을 주로 하는 그룹으로 떠올릴 것이다. 이처럼 2~2.5세대 그룹들의 경우 일반적으로 이미지를 말할 때 단순히 컨셉만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음악적 특징이 함께 등장하곤 한다. 이는 각 그룹이 가진 음악적 색깔이 모두 달랐으며, 팬덤과 대중의 입장에서 취향에 맞게 ‘취사선택’을 할 수 있었다는 뜻으로 이어진다.

 K-POP의 주 소비층을 10~20대로 가정했을 때, 2~2.5세대 아이돌의 황금기였던 2010년대 초중반을 겪은 이들은 현재 10대 중반 ~ 20대 중반의 나이가 되었다. 콘텐츠의 최신 트렌드를 주도하고 소비하는 연령이 이들 나이대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학창시절 다양한 음악을 접하며 덕질을 해온 이들에게 K-POP의 음악적 획일화는 피로를 안겨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현재의 정체감을 벗어나기 위해 잊고 지냈던 과거의 매체와 상품을 찾게 되고, 자연스럽게 ‘숨듣명 문화’로 흘러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 지금이 바로 변화의 시점


 이러한 현상은 비단 음악에만 한정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관과 앨범별 컨셉, 뮤직비디오, 안무, 콘텐츠 등 K-POP 산업에 속한 모든 것이 해당된다. 처음에는 팀의 정체성을 보여주기 위해 등장한 세계관이 점차 신인 그룹의 필수적 공식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으며, 그 내용 역시 점점 난해해져 ‘굳이 있어야 하는지 모를’ 정도로 획일화되는 현상을 보인다. 또한 그룹만의 특이한 컨셉을 가져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매일매일 새로운 컨셉이 쏟아지고 있다. 물론 이것들이 팬덤의 욕구와 부합했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점점 이러한 K-POP의 현재에 대해 피로감을 느끼는 ‘덕후’들이 필자의 주변에 늘어가는 것을 보면서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K-POP이 과연 화려한 퍼포먼스와 SNS의 성장을 통한 해외 팬덤의 유입 증가라는 성장 요인만 가지고 있을까. 지금의 K-POP이 있기까지 그간 거쳐온 약 30년에 가까운 시대적 흐름이 현재의 성공을 다지는 기틀과 양분이 되었음은 틀림없다. 전국민적 인기를 얻던 과거의 영광이 왜 현재로 연결되지 않고 있는지, 대중뿐 아니라 팬덤마저도 ‘거기서 거기인 음악’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아야만 한다. 더불어 사라진 다양성을 어떻게 살려낼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이제는 무조건 ‘되는’ 것에만 집착하지 않고, 기본으로 돌아가 무엇을 키워야 할지 말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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