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최초로 국내에 확산되었을 때만 해도, 필자는 길어도 한 달이면 종식될 것이라고 지레짐작했었다. 그러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라는 하나의 조어가 생성될 정도로, 하나의 전염병은 시대를 구분하는 기점이 되었다. 우리가 외출할 때 옷을 입듯이 마스크를 끼는 것이 당연시될 줄을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새삼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는 요즘이다.
공개방송 참여 및 오프라인 공연 재개 또는 확대 시점의 불확실성, 오미크론 변이로 인한 아이돌들의 연이은 확진은 아이돌 산업 시장에서 수많은 난관을 유발해 왔다. 본격적으로 COVID-19 사태를 선언한지 햇수로 3년 차에 접어든 현 시점에서, 필자는 독자들을 위해 코로나 시국에 발매된 케이팝 곡들을 소개해보려 한다. 아이돌이 우리에게 전하는 공감과 위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자.
일상 회복에 대한 염원
외출과 활동이 제한되는 것에 대한 답답함. 마스크로 인해 제대로 숨 쉴 수 없는 불편함. 재회에 대한 소망.
아이돌들도 함께 코로나 상황을 겪고 있기에, ‘나도 네 마음 잘 안다’는 그 마음을 가사와 뮤직비디오에
흘깃 흘려 놓았다.
진진&라키의 ‘숨 좀 쉬자’는 제목 로고의 ‘ㅁ’을 마스크로 디자인했다. ‘숨 좀 쉬자 어젯밤에 또 벽 보고 혼자 Talk / 숨 좀 쉬자 거울 보며 또 나 홀로 Dance time / 외로워 미칠 것 같아 사랑하는 친구들 다’는 앞서 말한 현재의 세 가지 생활상을 모두 보여준다. 뮤직비디오는 진진과 라키의 잠결에 마스크 없이, 여럿이 함께 포차에서 술을 마시고 즐겁고 싶은 바람을 투영한다. ‘Breath in breath in Just breath out breath out’ 등의 구절에서 엿볼 수 있는 들숨과 날숨의 포인트 안무도 통통 튀는 매력이 있다. “잔 채우고 마스크 치우고, 건배사는 숨 좀 쉬자!”
마마무의 ‘딩가딩가’는 이러한 사회상을 재치 있는 표현을 통해 반영한다. ‘유유자적해 여기 방구석에 / 언제부터인지 사회와의 거리가 꽤나 멀지’에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부족해 비타민 D / 아까워요 Delivery fee’와, ‘드라마만 정주행해 / 드라이브는 못 가네 폰 게임으로 주행’에는 외출이 제약되는 상황이 드러난다.
ⓒRBW YOUTUBE: 부족한 비타민 D를 충당할 수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아이스크림 먹으러 갈래?’)
코로나 완화와 종식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통제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파하는 슈퍼주니어의 ‘House Party’는 유쾌함이 가득한 곡이다. 해당 곡의 차별성이라 함은 방역수칙 홍보곡으로 사용되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세세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집에 틀어박혀 버려 당분간 집 밖은 위험”한데도 일탈을 벌이는 이들에게 ‘Freedom is not free’라는 자유의 역설을 강조하며, ‘가로 세로 면적 1미터 그만큼 거리를 둬’, ‘Keep it mask with no mess up please’에서 엿볼 수 있는 특성이다. 한편, ‘당연하게 누렸던 평범한 날이 버킷리스트가 됐어 / 다 모여 Party (No) 가자 콘서트 (No) / 마스크 안 써 Hey 어림없는 말 / 자유롭던 날의 대가를 비싸게 치르는 건지도 몰라’에서는 익숙하던 것에 대한 그리움과 동시에, 그 가치를 환기하는 COVID-19 시대의 기능에 대한 통찰이 드러난다.
ⓒHYBE LABELS YOUTUBE
불가피한 일상생활의 통제에서 우러나오는 울적함이 부각되는 노래들도 있다. 이들은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전염병 상황의 장기화로 힘들어하던, 2020년도 후반에 출시된 곡이 주를 이룬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는 ‘Our summer’라는 곡에서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는 일상을 여름이라는 계절으로 노래한 바가 있다. 코로나 이전의 활발함은 이들에게 의미 있는 계절인 여름으로 표상된다. 반면, ‘날씨를 잃어버렸어(We lost the summer)’에는 COVID-19로 인해 잃어버린 계절을 되찾고 싶은 염원이 반복된다. ‘내 달력 위 first day 뒤 수많은 first day 끝이 없는 3월 1일의 저녁에 난 남겨져 있어 / 내 화이트데인 이미 wasted Keep lovesick, no vaccine’에는 일회적이고 단절적인 만남의 반복으로 지쳐버린 마음이 부각된다. 또한, ‘하루 이틀, 일주일 또 한 달, 일 년을 / 나 홀로 걷고 있어 서툰 이 제자리걸음’은 종식 시기에 대한 예상이 다음 달, 내년, 내후년으로 미루어져 왔던 우리의 심정을 대변한다.
그 밖에도 트와이스의 두 번째 정규 앨범의 13번 트랙인 ‘Behind the mask’는 헤이즈가 작사에, Dua Lipa가 작곡에 참여한 곡으로 흔히 알려져 있다. 곡명에 쓰인 ‘마스크’는 “다시 예전처럼 우리 사이의 거리를 좁혀, 서로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날이 찾아오길 원하는 마음을 노래한다”[1]는 곡 설명을 보면 마스크 자체로 읽힐 여지가 존재한다. 이 곡은 얼굴의 절반 가량을 가리는 마스크는 상대의 표정도, 온전한 얼굴도 마주하기 어렵게 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특히, 가사 ‘내 이름을 불러줘 예전처럼 Once again 거리를 좁혀줘 운명처럼 Twice again’에는 트와이스와 팬덤 ‘원스’의 의미를 살려서 아이돌과 팬 사이에 생긴 물리적 거리를 극복하고 싶은 소망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코로나 시국이 변화 시킨 것들
대면으로 만나지 못한다면, 비대면으로 보면 되지!
우선, 코로나로 인해 여행은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되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과 경기관광공사에서 조사한 ‘코로나 종식 후 가장 하고 싶은 것’으로는 여행이 1순위로 거론되었다. 통계를 논하지 않더라도, 포털 사이트에 ‘코로나가 종식되면 가장 하고 싶은 것’이라고 검색하면 스크롤을 하기도 전에 여행이 나온다. 현재는 자가격리가 의무가 아닌 국가들도 늘어나면서 기준이 완화되고는 있으나, 아직 전염에 대한 염려로 마음 편히 여행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다반사다. 이들에게 방탄소년단의 ‘내 방을 여행하는 법’은 방구석 생활에서 찾을 수도 있는 여행과 유사한 가치를, 온앤오프의 ‘누워서 세계 속으로’는 비대면 여행의 특색을 일깨운다.
무엇보다도 방탄소년단의 ‘내 방을 여행하는 법’은 내 방이 현재로서는 나의 전부라면 이 곳을 나의 세상으로 만들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상황을 긍정하기로 하는 메시지가 희망적이다. 이 곡의 시각으로 보면, 방에 놓인 사소한 사물과 풍경도 새로운 관점에서는 또 낯설고 특별한 추억으로 가득하다. 그 밖에도 ‘시선을 낮추고 어디든 막 zoom’에서 비대면 생활의 핵심 플랫폼으로 읽힐 수 있게끔 하는 가사에서 센스가 돋보인다.
온앤오프의 ‘누워서 세계 속으로’는 스마트폰으로도 가보고 싶었던 많은 지역을 탐방할 수 있다는 발상이 가사의 운율과 귀여운 표현이 가미되어 더욱 돋보인다. ‘누워서 누워서 누워서 세계 속으로/ 걸어서 걸어서 걸어서 가는 건 냉장고까지야 / 왼쪽 오른쪽 뒹굴뒹굴 상하이 두바이 왔다 갔다’의 흥겨운 리듬감처럼 말이다. ‘답답한 우린 지금 지도 여행을 하지 / 지구야 너도 쉬어 아름다운 넌 아프지 마’에서는 여행의 감소로 완화될 환경 문제까지 내다보는 넓은 안목을 보여준다.
ⓒONF OFFICIAL YOUTUBE
한편, 코로나로 인해 온택트 문화를 담당하는 분야는 활성화되었다. 아이돌 판에서도 비대면 팬미팅과 랜선 콘서트, 영상 팬사인회, 유니버스와 위버스의 활용,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계정 업로드 횟수의 증가 등을 실감할 수 있기도 하다.
ⓒappledaechu Youtube
앞서 언급한 ‘누워서 세계 속으로’의 이전 트랙인 온앤오프의 ‘On-you(Interlude)’는 온택트로 소통하는 새로운 시대로의 도약을 담고 있다. 이 시기는 더 나은 다음으로 향하기 위한 ‘간주(Interlude)’와도 같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멀어서 안아줄 수도 없지만, 마음의 거리는 소수점으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가까운 우리. 서로가 그 마음을 알기에, 온앤오프는 이 곳도 “ontact my love 신기한 세상”으로 긍정할 수 있다. 이 곡을 안동 케이팝 랜선 콘서트에서 부르고, 줌(zoom)을 활용하여 배경을 팬들로 채운 무대는 곡의 의미를 몸소 보여준다.
이 밖에도, 이 시국에 발매된 뮤직비디오들은 슬기로운 코로나 시국 적응 생활을 보여준다. 다른 챕터에서 언급한 진진&라키의 ‘숨 좀 쉬자’는 격리 생활을,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날씨를 잃어버렸어’는 구글 클래스룸을 통한 일상 공유 외에도 세븐틴의 ‘ひとりじゃない (히토리쟈나이)’는 줌을 통해 시행되는 생일파티의 모습을 담아낸다.
ⓒ FANTAGIO YOUTUBE
ⓒHYBE LABELS YOUTUBE
ⓒSEVENTEEN Japan official Youtube
혼자가 아니야, 사랑으로 이겨내자
늘 하던 시작과 끝 안녕이란 말로 오늘과 내일을 또 함께 이어보자고 -방탄소년단, Life goes on
혼자가 아니야 늘 너의 곁에 있어 우리 이어질 때 그 손을 놓지 않을게 -with 울림, 이어달리기
Hands Up Beyond the wall 닿지 않아도 모두 연결되는 세계 -슈퍼주니어, House party
멀리 있어도 우린 함께 있어 서로의 마음은 변하지 않아 I know we love 약속했던 우리 이어져 있어
-온앤오프, On-you(Interlude)
혼자가 아니야 마음 속에 남아 있는 따스한 온기를 느껴 -세븐틴, ひとりじゃない(Not Alone)
가사의 교집합에 주목해보면 이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강조점이 보인다.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핵심 키워드는 ‘연결’으로 설명할 수 있다.
방탄소년단은 본인들의 전 세계적 입지를 인지하고, 어려운 시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전파하는 그룹이다. 이들의 일곱 번째 미니 앨범 ‘BE’는 전곡이 COVID-19라는 시대상을 반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에서도 타이틀곡인 ‘Life goes on’에 주목해볼 수 있다. ‘Life goes on’은 곡명에서 직관적으로 드러나듯, 일상에 변화가 있어도 우리의 삶은 계속해서 흘러가고 있음을 내포하는 곡이다. 이는 특히 ‘사람들은 말해 세상이 다 변했대 / 다행히도 우리 사이는 아직 여태 안 변했네’라는 가사에서 두드러진다. 뮤직비디오의 비어 버린 객석은 취미를 향유하는 방식, 사람들과 소통하는 장소와 횟수, 경험을 축적하는 경로 등에서 많은 것이 바뀌면서 발생한 혼란을 상징한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정말 소중한 것은 변하지 않으니, 두려움을 가지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청자에게 더욱 와 닿는 것이다.
ⓒ HYBE LABELS
이들은 2020년 4월에 예정되어 있던 <MAP OF THE SOUL: 7> 의 국내 투어를 취소하고, 그 비용을 코로나 19에 대응하기 위한 방편으로 기부를 택하기도 했다. 이처럼 실천적인 태도로도 주목을 받는 그룹인 만큼 메시지의 진정성이 돋보인다. 이후에 발매한 ‘Butter’와 ‘Permission to dance’는 ‘BE’ 앨범의 잔잔함과는 대비되는 경쾌함으로 사람들을 치유한다.
NCT 127의 ‘다시 만나는 날’은 COVID-19 사태가 해결되어 팬들과 재회할 날을 가정하는 팬송으로 읽힌다. 이들의 ‘상황은 변했어도 마음은 변치 않았다’는 말은 방탄소년단의 ‘Life goes on’과 유사한 맥락의 가치를 지닌다. 세 번째 앨범인 ‘STICKER’의 컴백쇼에서 선보인 ‘다시 만나는 날’ 무대에서는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슬로건에 담았다. 도영의 슬로건(만나면 울지 않기 약속!)에 명시되었듯이, 이 노래는 그 어떤 말보다도 웃음으로 그동안의 그리움을 전하고, 서로를 마주할 날을 기다리게 한다.
그 밖에도, 비투비 포유의 ‘Show your love’에서도 사랑의 힘을 역설한다. 이전에 발매된 곡 ‘아름답고도 아프구나’를 연상시키는 ‘이 세상은 왜 아름답기보단 아프기만 한지’라는 구절은 현재의 고난을 묘사하지만, 결국 사랑을 통해 이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굳건함이 전반적인 기조를 이룬다. 노래가 주는 감동도 있지만, 이들이 진심으로 행복해하며 이 곡을 선보이는 음악방송 무대가 특히 청자를 행복하게 하는 에너지를 발산한다.
특정 그룹에만 국한하지 않고, 여럿의 목소리와 화음을 담아내 ‘함께하는 가치’를 돋보이게 한 곡도 있다. “울림이 저 하늘에 닿을 수 있도록” 울림 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인피니트, 러블리즈, 골든차일드, 로켓펀치, 울림루키)이 불렀던 ‘이어달리기’는 ‘우리에게 주어진 별 하나 없는 하늘을 밝힐 수 있는 것은 결국 우리’라는 메시지를 전파한다.
그 밖에도, 국가적 위난이었던 IMF 당시에 큰 힘이 되어준 양희은의 ‘상록수’는, 코로나 시국에 다시 ‘산들, 유아, 규현, 려욱, 예성, 조이, 라붐, 투모로우바이투게더’와 같은 아이돌과 여러 타가수들을 통해 ‘상록수 2020’로 리메이크되었다. 이는 의료진에 대한 감사를 전하기 위한 목적이 주를 이루는 점이 다른 곡들과 차별화된다고 할 수 있지만, ‘우리가 함께’ 거친 들판의 푸르른 솔잎이 될 것이라는 확신은 앞서 말한 곡들의 어조와 통한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코로나 시국이 시사하는 ‘익숙함의 소중함’을 말한다. 사람 간의 사랑, 노마스크로 거리를 활보하던 일상, 인원 제한이 없는 대면 소통, 방역패스와 안심콜이 없던 일상은 그리움의 대상이다.
기약 없는 COVID-19 사태의 장기화로 지친 당신에게, 이 글이 조금이나마 힐링이 되었으면 한다.
[1] 멜론. 트와이스 정규2집 Eyes wide open 곡 소개
(https://www.melon.com/album/detail.htm?albumId=10508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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