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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KINDa

엠넷을 위한 전쟁 <퀸덤>

‘서바이벌 명가’와 ‘암넷’ 두 단어 사이 어딘가에 있는 엠넷이 새로운 경연 프로그램을 론칭했다. 컴백 전쟁이란 타이틀로 시작하는 ‘퀸덤’은 말 그대로 6팀의 걸그룹이 한날한시에 발매된 싱글 앨범을 두고 순위 대결을 펼치는 실전 경쟁 서바이벌이다. 프로그램 내부에서 만들어진 경연곡으로 대결을 펼치는 그동안의 방식과는 다르게 이들은 실제 자신의 커리어를 두고 대결해야 한다. 걸그룹들의 정면 승부로 진짜 탑을 가리겠다는 다소 자극적인 기획 의도를 내건 만큼 무모하고도 잔혹한 여정이 될 예정. ‘쇼미더머니’와 ‘프로듀스101’ 등 장수 서바이벌을 보유하고 있는 이들에게 이번 ‘퀸덤’은 기존 음악 시장에서 갖고 있던 엠넷의 장악력을 더욱더 과시하려는 질 나쁜 기획에 그친다. 참여자들에게 이토록 불필요한 경쟁이 필요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는 게 문제다.


기본적으로 경연 프로그램은 방송을 통한 조명을 통해 수면 아래에 있던 참여자들에게 전에 없던 기회를 주는 하나의 장이 된다. (두 프로그램 모두 부정적인 점이 더 많지만) ’쇼미더머니’는 잘 알려지지 않은 좋은 래퍼들을 발굴했으며 ‘프로듀스101’의 경우 연습생들에게 글로벌 그룹의 일원이라는 검증된 혜택을 제공했다. 그렇기에 동등하지는 않더라도 판을 만드는 방송사, 그리고 판을 구성하는 출연자 사이의 암묵적인 가치 교환이 성립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3화까지 방영된 ‘퀸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참여 팀들의 동기부여나 달성 목적을 찾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걸그룹의 동반 컴백이라는 이벤트는 케이팝을 넘어서 전체 음원시장 혹은 앨범 시장에서 큰 효용을 갖지 못한다. 경쟁을 통한 화제성을 그 이유로 내걸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여섯 팀의 유혈 사태로 바꾸기에 차트는 너무도 넓은 바다다. 오히려 걸그룹이라는 같은 범주의 소비층을 공유하는 만큼 상대적으로 인기의 규모가 큰 그룹과의 경쟁으로 피해를 보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렇기에 단순히 우승팀의 특전인 단독 컴백쇼만으로는 전쟁의 명분이 여러모로 부족한 것이다.



현재 3화까지 방영된 ‘퀸덤’은 기본적으로 예능적 요소를 지닌 각 팀의 무대 기획과 본 경연, 그리고 순위 발표식의 도식화된 전개로 구성된다. 그리고 첫 경연과 두 번째 경연의 주제는 각각 ‘히트곡 대결’과 ‘커버곡 대결’로 이미 알려진 6팀의 곡을 편곡해 선보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본 순위 경쟁을 앞두고 베네핏을 위해 각 그룹들은 기존 노래들을 편곡해 무대를 구성해야 하지만 이미 잘 알려진 히트 곡들인 탓에 경연의 테마는 진부해지고 대중들의 관심도 역시 떨어진다. 뿐만 아니라 각 팀은 저마다 소화 중인 스케줄과 병행하며 편곡을 통해 무대를 재구성해야 하고 경쟁을 위한 새로운 퍼포먼스도 준비해야 한다. 경쟁에 대한 당위성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프로그램의 기획과 진행 역시도 그 의미를 찾기 힘든 주먹구구식 만듦새에 그치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악랄한 건 결국 프로그램을 위한 경연곡이 아닌 각 팀의 오리지널 신곡으로 경쟁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여섯 걸그룹의 커리어 대결은 매번 관행적으로 피해왔던 팬덤 간의 충돌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참가자 집단 혹은 개인의 팬덤의 목소리가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한다. ‘쇼미더머니’의 경우 본선 이후 심사위원의 권한을 없애고 오로지 시청자 투표와 현장 투표를 합산해 승자를 결정하며 ‘프로듀스101’ 역시 국민 프로듀서란 이름의 시청자들이 문자 투표를 통해 최종 멤버를 선발한다. 물론 기형적인 시스템에 빚을 지고 있지만 기존의 미디어에서 볼 수 없었던 지원자들이 방송을 통해 팬덤을 형성해나가는, 어느 정도 순행적인 구조를 따른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미 팬덤이 형성된 그룹들로 시작하는 ‘퀸덤’의 경우 경연 내부가 아닌 경연 외부에 있는 차트 경쟁으로 여섯 팬덤의 의도적인 마찰을 유도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전개를 통해 수혜를 받는 건 이를 방송하는 미디어, 오로지 엠넷뿐이다. 사실상 경연에 참여한 여섯 그룹의 팬덤은 스스로가 처한 부조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해당 프로그램을 외면할 수 없다. 아티스트들이 같은 날 발매하는 신곡의 성적은 걸그룹이라는 명확한 카테고리 안에서 서열화되며 개별 팬덤의 화력은 이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응원하는 아이돌을 더 높은 순위로 올리기 위해 더욱더 적극적으로 ‘퀸덤’의 기여자가 되어야 한다. 엠넷은 여기서 한 술 더 떠 노골적으로 싸움을 유도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히트곡 경연을 마친 각 팀은 자신보다 잘했다고 생각하는 한 팀과 못했다고 생각하는 한 팀을 뽑아달라는 질문을 받는다. 이후 이어진 순위 발표식에서 제작진은 이들이 뽑은 순위를 공개하도록 하며 누군가를 눈물짓게 하는 불편하고도 민망한 전개로 일관한다. 공개 저격과도 같은 무안한 상황에 여섯 그룹은 서로에게 미안해하지만 이후 1등이 다음 경연의 큐시트를 직접 작성하는 또 다른 난처함으로 이어진다. 뿐만 아니라 두 번의 경연에서 6위를 한 그룹은 탈락하게 되며 실제로 인기와 팬덤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적은 ‘러블리즈’가 첫 순위 6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시청자들의 불편한 감상과는 별개로 엠넷의 의도는 각 그룹의 인기를 지탱하는 ‘실팬’에게 향한다. 힘을 보태기에도 바쁜 이들에게 미디어는 서로를 이간질하며 더욱더 ‘컴백 전쟁’에 집중할 수 있도록 미끼를 푸는 것이다. ‘내 아이돌’이 지는 상황을 마주하고 싶은 팬들이 얼마나 될까. 이처럼 엠넷은 다양한 채널을 지닌 미디어로서 팬들을 동원해 음원 차트를 넘보는 한층 새로운 지배력을 키우려 하고 있다.


결국 ‘퀸덤’은 자극적인 진행과 논란 유도로 일관하는 엠넷의 서바이벌 이상도 이하도 아닌 방송에 그쳤다. 그리고 경연에 참여하는 여섯 팀의 걸그룹은 방송사의 영악한 기획으로 실질적인 승자가 없는 전쟁을 이어가야만 한다. 시청률이나 화제성 등을 고려해봤을 때 크게 유의미한 기획은 아닌 듯 보이지만, 넓은 의미의 대중들이 아닌 한층 더 소급적인 아이돌 팬층을 겨냥한 이들의 전략은 음악 시장에서의 장악력을 확보하려는 더 높은 차원의 시도로 읽을 수 있다. ‘퀸덤’의 시즌이 어느 정도 자리 잡을 수 있다면 앞으로도 아이돌의 차트 경쟁을 미디어, 즉 엠넷의 힘으로도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퀸덤’의 후속으로 보이그룹 버전인 ‘킹덤’을 언급한 만큼 갑의 횡포는 계속될 여지가 충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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