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의 일상을 담는 프로그램, ‘아이돌 리얼리티’. 대본 없이 흘러가는 대로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아내는 것이 관건. 지나치게 인위적인 티가 나면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매력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2000년대 중반, 모 유명 보이그룹의 리얼리티 중 한 장면이 떠오른다. 동물 잠옷을 입고 기지개를 켜며 ‘하아암-!’ 일어나서, 누가 봐도 풀 메이크업인 상태로 상큼하게 양치질하는 모습은 2019년인 지금까지도 ‘저게 어떻게 리얼리티냐’며 웃음코드로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오히려 아무거나 주워 입은 듯한 티 쪼가리(?)에, 머리에 까치집 잔뜩 이고 일어나 잠에서 덜 깬 얼굴로 두리번두리번 거리는 식의 리얼한 모습에 시청자들은 더 열광하고, 그 맛에 리얼리티를 보게 된다. 내 아이돌의 ‘무대 비하인드’의 일상, 나와 별반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일상을 공유하는 기분으로.
필자는 아이즈원의 열렬한 팬은 아님에도, 몇 개월 전 방영된 ‘아이즈원츄’의 애청자였다. 필자가 가장 매력을 느꼈던 부분은 멤버들의 리얼한 일상이 담긴 부분들이었다. 밤에 라면을 끓여 먹고 뒷정리를 하기 귀찮아하는 모습이라던가, 멤버들끼리 또래 10대 후반 20대 초반 아이들처럼 까르르 거리며 논다던가, 또래들이 일상에서 쓰는 말들을 똑같이 사용하는 모습들이 그러했다.
아이즈원츄가 끝나고 아이오아이 출신 청하의 리얼리티도 이어서 보았는데,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회차는 청하가 기희현을 만나 카페에서 맛있는 디저트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고, 쇼핑도 하고, 집에서 뒹굴대며 여유로운 일상을 보내는 장면들이었다.
이후에 더 챙겨본 리얼리티로는 과거로 흘러가 2014년 방영되었던 ‘제시카&크리스탈’과 ‘에이핑크의 쇼타임’이 있었다. 필자는 주로 한가한 주말에 그 리얼리티들을 몇 회차씩 몰아서 봤다. 아무 생각 없이 세상 편안하게 누워 보다 문득 ‘이들의 팬도 아닌 내가 이걸 왜 재미있게 볼까?’ 싶었다. 재미있다는 게 ‘웃기다’는 의미의 재미있음보다는, ‘흥미롭다’는 의미의 재미있음에 가까웠다. 내가 흥미롭게 본 리얼리티에는 공통점들이 있었는데, 나와 성별이 같은 걸그룹들의 리얼리티라는 것이었고 또 하나, 이들의 평범하고 내추럴한 일상을 시청자와 공유함과 동시에 일상에서 쓰이는 ‘아이템’들도 함께 공유된다는 점이었다.
온스타일 채널에서 기획되었던 ‘제시카&크리스탈’은 두 자매의 자연스러운 일상뿐 아니라 그들이 즐겨하는 패션 팁, 메이크업, 악세서리 아이템 등 다양한 볼거리와 정보들을 제공하였다. ‘에이핑크의 쇼타임’ 같은 경우, 촬영 당시 식욕이 왕성했던 멤버들이 1인 1설빙을 하고, 닭발 먹방을 비롯한 여러 먹방들을 선보여 맛집 공유를 할 수도 있었다. ‘아이즈원츄’나 청하의 리얼리티를 보면서는 히토미가 먹던 명랑 핫도그가 너무 맛있어 보여서 집 근처 가게에서 사 먹어보기도 하고(히토미가 괜히 흰자위까지 보이며 먹은 게 아니었다.), 멤버들의 메이크업이나 네일 포인트, 헤어 스타일링, 패션 등에 대해 굳이 작정하고 정보를 얻으려 하지 않아도 시청자로 하여금 자연스레 스며들어 공유할 수 있었다. 요즘 저런 메이크업과 스타일링이 유행하나 보네, 저런 것들이 맛있구나, 저런 스타일의 옷은 저런 이미지와 체격, 피부톤을 가진 저 멤버에게 잘 어울리는구나, 이런 식으로 말이다.
실제로 아이돌 리얼리티는 '찐팬'이 아닌 머글들에게도 수요가 있는 편이다. 특히 일상 외에 의.식.주에 대한 정보가 자연스레 스며있는 리얼리티 콘텐츠일수록 더더욱 높은 수요를 보인다고 느꼈다. ‘제시카&크리스탈’의 경우 내 주변에 소녀시대나 에프엑스의 팬이 아님에도 꾸준히 챙겨보는 열혈 애청자들이 꽤 되었다.
2000년대만 하더라도 ‘내 돌 까면 사살’ 분위기였고, 아이돌들이 신이나 무대 위의 요정들 같은 이미지가 컸다면 2010년대 이후로는 점차 ‘아이돌은 '아이돌 가수'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지’의 인식이 생겨났다. 이에 따라 1세대부터 꾸준히 방영되던 아이돌들의 리얼리티 성격도 점차 변화 중인 것이다. 인간 같지 않던 아이돌들의 인간 같은 일상을 담고, 적당히 망가지는 모습만으로도 신선하고, ‘세상에, 아이돌이 망가져?’ ‘아이돌이 화장실을 가?’ ‘아이돌도 사람이었어!’ 식의 느낌으로 놀라던 그 ‘시청자’들은, 이제 아이돌들이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는다. 그 아이돌이라는 직업을 가진 인간들은 어떤 주말을 보내고,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메이크업을 하고, 어떤 곳에서 일상을 보내는지 그 정보를 ‘공유’하고 싶어 한다.
세상 트렌디함은 다 때려 박은 그 ‘아이돌’ 들이 즐기는 평범한 일상, 그 속에서의 정보 공유라니 솔깃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의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이 어떤 모습으로 변모할지, 아이즈원츄 다음 시즌을 기다리며 한번 예측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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