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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KINDa

있지에게는 무엇이 있나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JYP의 신인 걸그룹으로 추측되는 ‘itzy’를 ‘있지’로 읽어야 할지 ‘아이티지’로 읽어야 할지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이후 조금은 생소한 ‘있지’가 공식 명칭이 되었고 이들은 데뷔 앨범만으로 음원차트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주목받는 걸그룹이 되었다. JYP의 신인 걸그룹 ‘있지(itzy)’는 데뷔 후 몇 개월 만에 성공의 언저리에 다다른 대형 신인이자 단기간에 시장을 장악한 뛰어난 루키이다. 그리고 이들의 뒤에는 케이팝 씬의 공식처럼 자리한 ‘JYP 걸그룹’이라는 히트 요인이 있었다. 트와이스의 성공에 이은 있지의 상승세는 대형 기획사의 자본에서 나아가 대중들을 끌어당기는 흡인력 있는 기획이 유효했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그룹의 시작이 되는 데뷔는 성장형으로 기획된 아티스트의 가능성과 방향성에 집중한다. 주제를 드러내는 도입 서사의 중요성이 커진 만큼 데뷔곡의 모양새를 통해 시장에 위치할 그룹의 포지션을 잡는 섬세한 기획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에 비해 있지의 데뷔곡 ‘달라달라’는 꼼꼼하기보다 직관적이고 단순하다. 이들이 무한히 되뇌는 ‘다름’은 별도의 설명 없이 그 자체로 반복되며 기세를 높일수록 오히려 산만해지는 인상도 있다. 게다가 곡 컨셉은 걸크러쉬에서 파생된 ‘틴크러쉬’ 정도로 '위키미키' 등의 그룹으로 접했던 기시감이 있는 메이킹에 그친다. 가사에서 드러나는 ‘난 특별하고 그래서 내 멋대로 할 거야’ 식의 화법 또한 여성의 목소리를 높이는 최근의 걸그룹 어조와 비교해봤을 때 다소 치기 어린 측면마저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다르다고 소리를 내지만 ‘그래서 어떻게 어디가 다른데?’에 대한 대답은 속시원히 들려주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있지가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가사의 어디에도 ‘왜 다르고,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논리적인 설득은 등장하지 않지만 이들의 활동은 보란 듯이 성공했고 그들이 직접 말한 ‘다름’을 입증했다. 옛말에 가수는 곡을 따라간다는 말이 있다. 노래하던 곡의 내용과 비슷한 삶을 사는 가수들을 두고 했던 말이다. 허황된 미신처럼 보이지만 브랜딩이 중요한 아이돌 판에서는 충분히 설득력 있는 분석이다. 있지는 데뷔곡을 통해 ‘예쁘기만 하고 매력은 없는 애들과’ 다르다는 공공연한 선언을 시도했다. 그리고 에너지 넘치는 바이브와 아티스트로서의 재능을 선보이며 이를 스스로의 브랜드로 체화했다. 이와 같은 방식은 도달점을 향해가는 기존의 성장 서사와는 정반대로 기능하며 기획의 예열기간을 급속도로 단축시킬 수 있었다. 따라서 '달라달라'는 증명된 결론이며 이후 공개된 'ICY'는 그 결론에 대한 첫 번째 근거가 되는 것이다.


앞서 살펴봤듯이 있지의 전략은 설득이 아닌 ‘증명’이다. 이들은 대중적인 테마의 댄스 음악과 새롭지 않은 컨셉을 들고 왔지만 서사적인 ‘설득’이 아닌 직관적인 ‘증명’을 해내면서 상당히 복합적인 본질인 ‘아이돌’에 한층 다가간다. 사실 대한민국의 아이돌은 그저 노래’만’하는 가수보다는 조금 더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지닌 미디어의 수행자들에 가깝다. 가수라면 노래를 잘해야 하지만 노래만 잘해서는 성공한 아이돌이 될 수 없다. 그렇기에 있지는 반복적으로 ‘다름’을 선언하는 영악한 서사 위에 겹겹이 쌓인 아이돌로서의 퍼포먼스, 캐릭터 등을 점차 대담하게 풀어놓는다. 대중들은 음원을 통해 ‘노래’를 듣지만 퍼포먼스가 있는 무대를 감상하기도, 예능이나 브이앱 방송을 통해 멤버들의 캐릭터를 들여다보기도 한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있지는 한눈에 봐도 무대를 잘하며 대중들의 ‘입덕’을 이끌만한 캐릭터들이 있는 그룹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신곡 ‘ICY’의 활동을 기점으로 더욱 전략적으로 구체화된다. 실제로 이들이 본격적인 방송 활동을 시작한 건 신곡 활동을 기점으로 한 7-8월 경부터이기도 하다.




이번 신곡 ‘ICY’는 ‘예쁘기만 하고 매력은 없는 애들과’ 다름을 선언한 이들이 스스로의 매력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얼음같이 찬, 쌀쌀맞은’의 의미를 지닌 ‘icy’는 단어 자체의 뜻에서 확장되어 타인의 말과 행동에도 눈치 보지 않는 있지의 쿨한 캐릭터를 설명하는 하나의 워딩이 된다. 이는 수록곡 ‘CHERRY’의 가사 ‘다 나를 위해 하는 말이래/ 나조차 나를 잘 모르는데/ 틀에 날 맞추진 말아줄래/ 이젠 내 멋대로 놀아 볼래’와도 일맥상통하며 ‘다름’의 근거이자 수식어로서 기능한다. 이때 이들의 ‘ICY’한 태도는 당찬 10-20대 여성 캐릭터에서 나아가 연예인이자 여성 아이돌로서 갖는 의식으로 확장된다. ‘참 말 많아 난 괜찮아’ 또는 ‘너의 틀에 날 맞출 맘은 없어’와 같은 표현은 연예인으로서 불가피한 대중들의 무분별한 비판과 비난에 대한 이들의 답변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ICY’에 담긴 이와 같은 주제 의식은 아이돌의 본질로 접근하는 있지의 메이킹에 큰 차별점을 부여한다.


이미 수년 전 포화된 케이팝 시장에서 외면적인 컨셉과 프로듀싱의 차별성은 한계에 이르렀다. 단기적인 화제와 성공을 바라는 식의 컨셉은 지속 가능성이 없으며 소화하는 장르나 화자로서의 주제와 같은 장기적인 맥락의 호소력을 쌓아나가는 것이 중요해진 것이다. 하지만 있지는 기존의 시장에서 유효하던 어필인 흥미로운 음악 세계나 특정 소비층을 대변하는 서사 대신 아이돌로서의 마인드, 다시 말해 보이는 이미지 너머의 연예인을 구축하는 데에 주력한다. ‘달라달라’와 ‘ICY’의 콘텐츠는 결국 ‘예쁘기만 하고 매력은 없는 애들’과는 다르게 매력적이고 남들이 ‘참 말 많아’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걸그룹으로서의 경쟁력을 시사한다. 그렇기에 이들의 당찬 에너지와 비비드함은 단순히 음악의 컨셉을 위해 ‘척 아닌 척’을 해야 하는 일반적인 활동 방식과는 조금 다르다. 다른 어떤 소녀들도 아닌 스스로 증명한 걸그룹 '있지'라는 브랜드 그 자체로 빛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우상’이란 의미를 지닌 ‘아이돌’로서의 격을 높임과 동시에 대중들로 하여금 더욱 능동적인 몰입을 이끌어낸다.


결국 있지가 스스로의 가치를 논리나 설명이 아닌 전반적인 쇼잉(showing)으로 입증할 수 있었던 건 세계관이나 장르, 스토리가 아닌 아이돌로서의 스탠스와 퍼포먼스, 그리고 자연스러운 캐릭터들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결국 서사성 없이 반복되던 '다름'의 서사는 두 번째 곡 'ICY'와 뒤이어 선보일 음악들을 통해 점차 선명하게 묘사되며 그 입지를 공고히 할 수 있다. 이는 보편적인 스토리텔링과는 반대로 '다름'이라는 결과를 가져와 입증한 뒤 점차 그 원인들을 보여주겠다는 과감한 기획의 성취이다. 성공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고 성공을 해본 이들은 그 이유를 안다. 그렇기에 있지는 수많은 시행착오로 얻어낸 JYP만의 대중적인 기획력이 녹아있는 그룹이 아닐까 싶다. 부디 초심을 잃고 방황하지만 않기를 바란다.


사진 출처: jyp 엔터테인먼트 공식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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