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 작성자 사진딩가

[I burn]: 꽃을 피워내는 (여자)아이들의 정체성


'화(火)'라는 단어가 당신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모든 것을 태워 없애는 불의 의미의 '화'는 위협적인 존재로 표현되기도 한다. '화가 난다', '화를 부르다', '화를 내다' 등에서의 '화'는 대부분 부정적인 뜻으로 쓰이며, 이들은 보통 지양해야 할 감정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부정적 의미의 '화'를 제목으로 가져와 긍정적으로 해석한 팀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리고 역시나 (여자)아이들이다.


© 큐브엔터테인먼트

1월 11일 (여자)아이들이 'I' 시리즈의 네 번째 앨범인 미니 4집 [I burn]으로 돌아왔다. 컴백과 동시에 타이틀곡 <화(火花)>는 여러 음원 사이트에서 1위로 진입하며 다시금 케이팝 신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화(火花)>는 이별 후의 시린 감정을 겨울에 빗대어 표현하고, 이를 불태워 꽃을 피우고 봄을 되찾겠다는 내용의 곡이다. 동양적인 분위기와 뭄바톤이 합쳐진 음악, '~리오'로 끝나는 한국적인 문체의 가사, 불, 꽃 등을 형상화하며 절제된 몸짓을 보여주는 안무, 화려하면서도 처연한 느낌을 주는 의상까지 모든 것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동양풍'이라는 아이들의 새로운 시도를 성공적으로 구현했다.

(여자)아이들의 앨범 발매 시기마다 케이팝 신에서 대두되는 '전소연 천재설'은 이제 하나의 가설을 벗어나 '천재'라는 정설,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앨범 작업에서도 많은 부분에 참여하여 역량을 여실히 보여준 전소연이 천재로 칭송받는 데에는 물론 매번 완성도 높은 곡을 뽑아내는 프로듀싱 능력이나 변함없이 독보적인 랩 실력 등도 있으나, 필자가 이 글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점은 그녀의 스토리텔링 능력이다. 근래 케이팝 신에서 빠질 수 없는 컨셉추얼한 세계관 설정 대신 (여자)아이들은 그들의 노래 사이의 관계성이 그들만의 스토리를 만들며 아이들만의 독보적인 아이덴티티를 완성했다.


<한(一)> - <한(寒)> - <화(火花)>; (여자)아이들의 ‘이별 세계관’

© 큐브엔터테인먼트


[I burn] 앨범 설명에도 나와 있듯이 2018년 활동곡 <한(一)>과 2021년 [I burn]의 <한(寒)> ,<화(火花)>는 내용이 연결되며 하나의 스토리를 만든다.

세 곡은 아이들의 몇 되지 않는 이별 노래이자 동양풍 컨셉이다. 특히 '~다', '~리라', '~구나', '~리오' 등으로 끝나는 가사가 곡들에 한국적인 느낌을 더해준다. 이들이 사랑, 이별에 관련된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서늘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세 곡은 모두 '한(恨)'이라는 한국의 정서를 전제로 유기적인 스토리를 구성해 간다. 중간곡인 <한(寒)>이 한국적 색이 짙은 싱어송라이터 안예은의 작품인 것도 서로 다른 두 노래의 정서를 자연스럽게 연결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추측한다. (전소연은 <한(一)>과 <화(火花)>의 연결고리를 위해 안예은에게 곡을 요청했다.)

© 큐브엔터테인먼트


전소연은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화자의 감정을 세 곡에 나누어 한(恨)과 함께 중의적으로 담아냈다. 2018년 <한(一)>의 화자는 영원한 사랑은 없다는 운명론적 인식 아래에서 자신을 배신한 연인으로부터 상처를 입었지만 스스로 등을 돌리고 혼자가 되겠다는 차가운 모습을 보인다(一, 하나, 홀로). 이로써 연인에 대한 마음을 매몰차게 정리한 듯 보였으나 시간이 흐른 후의 2020년 [I burn] 앨범을 통해 이별은 완전히 잊힐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는 생각 아래 이별의 극복 과정에서 느끼는 여러 가지 감정을 드러냈다. 앨범의 첫 트랙 <한(寒)>에서는 여전히 연인을 그리워하며 원망하는 화자가 드러난다. 이 곡에서는 이별 후 상처 속에서 살아가는 시간을 차갑고 고독한 겨울에 빗대어 화자의 서늘하고 쓸쓸한 모습을 강조한다(寒, 차다). 이렇듯 미련의 시간 속에서 연인과의 재회라는 봄을 기다리던 화자는 이제 <화(火花)>를 통해 스스로의 변화를 꾀한다. 미련을 품에 안은 채 스스로에게 화를 내며(불을 지피며) 추억과 이별의 아픔을 태우고(火, 불) 남은 재를 거름 삼아 찬란한 꽃을 피우며 상처를 극복한다(花, 꽃).

세 곡의 가사를 비교했을 때에도 이어지는 부분들이 명확히 보인다.

-<한(一)> '널 잊으리라, 널 지우리라'

<한(寒)> '잊겠다 했던 그 다짐은 바람 한 번에 휘청이고 지우겠댔던 그 약속도 전부 거짓이었던 것처럼'

-<한(一)> '너무 차가워 깜짝 놀랄지 몰라, 돌아보지도 말아'

<한(寒)> '차갑던 그 날의 날 믿은 듯 뒤도 돌아보지 않는구나'

-<한(一)> '끝이 난 거죠 난 이제 너를 몰라'

<한(寒)> '끝이 없구나'

-<한(寒)> '차디찬 계절 참 길구나'

<화(火花)> '차디찬 한겨울이 덮친 듯'

-<한(寒)> '다시 너의 봄을 기다리는 건 내 욕심인 걸까'

<화(火花)> '난 화를 내리오 잃었던 봄을 되찾게'

-<화(火花)>후렴구의 '화'가사가 '火(불)'에서 '花(꽃)'으로 바뀌며 이별을 극복하려는 화자의 노력이 성공했음을 보여줌.

이 외에도 '바람', '꽃' 등 중복되고 이어지는 가사들이 많아 세 곡을 이어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렇게 전소연은 직관적인 가사와 한국적 정서를 토대로 아이들만의 이별 서사를 완성했다. 아이들의 이별 세계관에서는 이별에 마음 아파하기만 하는 청순가련하고 수동적인 소녀 대신 이별에 품은 한(恨)을 능동적으로 극복하려는 아이들이 존재한다.


(여자)아이들의 노래를 하나로 이어주는 그들만의 ’대담한‘ 태도

위 세 곡이 아닌 다른 곡들은 어떠할까? 최근 케이팝 신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세계관이다. 엑소, 방탄소년단의 세계관 활용이 대박 난 이후 데뷔한 아이돌에게 세계관은 거의 필수 요소가 되었고, 세계관이 곧 그들의 컨셉이자 향후 활동의 방향성이 되었다. 이러한 경향과는 달리 (여자)아이들은 특별한 세계관이 없다. 또한 이들은 '컨셉 장인'이라고 불릴 만큼 뭄바톤, 라틴팝, 힙합, 동양풍 등 다양한 컨셉을 소화해왔기에, (여자)아이들의 컨셉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쉽게 하나만을 떠올리긴 힘들다. 그런데도 대중들은 (여자)아이들의 유일무이한 정체성을 인지하고 있으며 그들의 노래는 케이팝에서 공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하나로 떠올릴 수 있을 만한 특정한 세계관이나 컨셉은 아니지만 (여자)아이들의 노래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건 '대담한 애티튜드'를 전제로 한 전소연만의 세계관이다. (물론 노래의 음악적 유사성 등의 이유도 있겠지만 오늘 필자는 당당함에 대해서만 언급하려 한다.)

© 큐브엔터테인먼트


(여자)아이들의 'I' 시리즈는 현재까지 4개의 앨범으로 이루어져 있다. (미니 1집 [I am] (<LATATA>), 미니 2집 [I made] (<Senorita>), 미니 3집 [I trust] (<Oh my god>), 미니 4집 [I burn] (<화(火花)>)) 첫 번째 앨범인 [I am]의 <LATATA>는 당시 청순하거나 귀여운 컨셉의 타 걸그룹들과는 달리 강렬한 뭄바톤 음악을 배경으로 사랑에 적극적인 화자를 노래했다. 두 번째 'I' 시리즈인 [I made]의 <Senorita> 또한 상대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매혹하는 직설적이고 적극적인 내용이 두드러진다. 적극적인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양한 컨셉으로 노래하며 대중에게 (여자)아이들을 소개하고 다른 그룹들과는 차별화된 그들의 방향성을 예고했다.

© 큐브엔터테인먼트


1, 2번째 시리즈가 자기소개 및 그들의 능력치에 대한 예고편이었다면 3, 4번째 시리즈는 그들이 하고 싶었던 좀 더 깊은 이야기이자 고정관념에 대한 도전이다. 3번째 'I' 시리즈 [I trust]의 <Oh my god>은 거부, 혼란, 인정, 당당함의 감정을 겪으며 현실과의 부딪힘을 통해 나 자신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그것이 내가 당당해질 수 있는 방법임을 깨닫는 과정이 내포된 곡이다. 여기서 전소연은 옳고 그름에 대한 기존의 흑백 논리를 뒤집는다. 앨범부터 Lie Ver(White) / Truth Ver(Black)으로 제작되어 흰색이 선에, 검은색이 악에 가깝다는 기존의 인식과 반대되는 기획을 했다. 또한 동성애적 코드를 가사에 꽤나 직접적으로 드러내며, '그녀'의 상대는 꼭 '그'여야 한다는 기존의 이성애 중심 가사를 벗어나는 대담함을 보였다. [I burn]의 <화(火花)> 또한 서문에서 언급한 것과 마찬가지로 '한(恨)'을 품은 상황에서 부정적으로 쓰이기 쉬운 '화'라는 단어를 이별의 극복 수단으로 삼으며 그 의지를 표현하는 단어로 사용했다. <Oh my god>과 <화(火花)>에서는 당당한 어투의 가사뿐만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작사가 전소연의 기존 고정관념을 뒤집는 대담한 가치관까지 투영되었다.

© 큐브엔터테인먼트

'I' 시리즈뿐만 아니라 <LION>, <Uh-Oh> 등 다른 곡들 또한 대담한 애티튜드를 공유한다. 특히 퀸덤에서 무대했던 <LION>은 사자처럼 최고의 위치에 오르고자 하는 야망에 가득 찬 태도를 가장 직설적으로 드러냈다. 이제 대중들은 아이들에게서 '대담하고 멋있는 걸그룹'이라는 생각을 떠올리고 그러한 음악을 기대한다. 기존의 인식에 부합하지 않는 말도 대담하게 주제화하는 전소연의 언어적, 음악적 능력은 시대의 니즈와 잘 맞아떨어져 (여자)아이들이라는 그룹이 성공할 수 있는 하나의 기반을 만들었다.


 

출처 - (G)I-DLE (여자)아이들 (Official Youtube Channel)

[#HASHTALK] EP.11 소연이의 브이로그: 쏘트레스 해소법


다음은 (여자)아이들의 자체 컨텐츠 중 곡 작업을 진행하던 전소연이 스트레스 해소에 대해 한 말이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은 문제를 해결하기' 다들 알고는 있지만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전소연은 당연하게 여긴다. 문제를 묵혀두고 고민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하는 전소연의 평소 성격이 그녀가 프로듀싱한 (여자)아이들의 노래에도 꽤 투영된 것이 아닐까. (<화(火花)>에서는 이별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잊혀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불태우는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추측일 뿐이지만 이렇게 대담하고 확실한 아이들의 노래 스타일에 많은 이들이 열광한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이별의 끝을 꽃으로 마무리 한 아이들이 다음엔 어떤 주제로 우리에게 기분 좋은 충격을 선사해 줄지 기대해본다.

조회수 179회댓글 0개

Comment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