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의 기세가 무섭다’는 말은 좀 새삼스럽게 들린다. 기세가 무섭다고 하기에는 이미 이들은 팝 시장에 자리를 잡았다. 이들은 2017년 AMA의 DNA 무대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미국 활동을 시작했다. 이 이후 앨범의 타이틀곡 FAKE LOVE, IDOL은 미국 매체에서 하는 공연이 활동의 주요 일정이었다. 이번 활동곡 ‘작은 것들을 위한 시’(이하 작것시)도 작년에 이어 BBMAs 무대에 올랐고, 이날 탑 듀오/그룹 상까지 2관왕을 했다. 이렇게 BTS는 거의 미국 보이밴드―그것도 엄청난 인기의―처럼 활동을 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보며 양가적인 감정이 들었다. ARMY의 엄청난 규모가 만들어내는 모든 상황이 신기했지만, 한편으로는 미국 무대에 선 K-POP 아이돌의 무대가 주는 어색함 때문에 이들의 무대를 한국의 음악 방송, 시상식 보듯이 할 수가 없었다. 한국인이 한국말로 노래를 한다는 어색함이 아니라 팝 시장에서는 흔치 않은 K-POP 아이돌의 퍼포먼스가 주는 어색함이었다.
K-POP의 안무는 ‘칼군무’로 대표된다. 기본적으로 팝 가수의 안무보다 복잡하고 에너지가 강하다. FAKE LOVE의 경우 그야말로 K-POP 안무의 결정체였는데, 멤버별 파트 와중에도 쉴 틈 없이 이어지는 동작 때문인지 미국 무대와의 이질감이 더 심했다. 컴백 무대였던 BBMAs에서 별안간 특이한 헤어와 의상으로 멋을 낸 방탄소년단이 인형처럼 춤을 추는 모습은 정말, 낯설었다. 그다음 앨범의 타이틀곡 IDOL도 여전히 정공법으로 밀고 나갔다. 몸이 드러나는 핏의 화려한 패턴 수트와 강한 에너지의 안무는 IDOL의 컨셉 자체가 가진 한국적인 느낌과 어우러져, K-POP스러움이 한층 더 강조됐다. 또한 K-POP 안무는 칼군무이기에 적재적소에서 줌을 당기고 빠져주는 카메라 워킹이 중요하다. K-POP의 안무는 복잡한 동선과 정확한 동작으로, 많은 멤버들의 안무가 모여 하나의 그림을 완성한다. AMA의 DNA 무대는 팬들에게 카메라 워킹의 측면에서 박한 평가를 받았는데, K-POP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방법을 모르는 카메라 워킹이었다. 물론 관중이 열광하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욕심도 과했지만, 일차적으로 쉴 새 없이 몰아치는 K-POP 안무를 보여주려다가 전체의 그림을 놓친 파트가 많았다.
하지만 ‘작것시’의 안무는 조금 달랐다. 이 또한 군무가 아닌 건 아니다. 이제까지 안무 중에 그나마 간결해 보이는 것이지, 전체적인 틀은 K-POP 안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곡들과 비교하면 힘이 많이 빠졌다. 핸드 마이크를 쓰고 여유롭게 무대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음악에 적당히 맞춘 간결한 동선과 동작이 대부분이다. 변화가 가장 크게 느껴진 건, 이전 곡들과는 달리 어떤 순간에 어떤 앵글에서 안무를 잡아도 크게 어색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전까지의 무대는 이들의 음악과 안무, 여기에 완벽한 카메라 워킹까지 하나로 완성되는 작품으로서 연출되었다면, ‘작것시’는 멤버 간의 시선 교환이나 자유로운 무대 연출로 조금 더 열려있다는 느낌을 준다. 음악의 색이 바뀌면서 안무도 자연스레 변화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K-POP 아이돌로서 자신들의 강력한 무기 중 하나였던 강렬한 퍼포먼스에서 조금 벗어난 선택을 했다는 건 흥미롭게 다가온다.
2017년 DNA부터 현재의 ‘작것시’ 사이의 시간 동안 미국 무대 위 BTS의 모습은 점점 더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그건 미국 무대에 선 이들의 모습에 대중이 익숙해져서일 수도 있지만, 이들이 K-POP이 아닌 팝의 문법을 따라가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작것시’ 컴백 무대를 처음 봤을 때, 이들이 이제 팝 가수가 되려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솔직히 이제야 좀 덜 어색한 듯해서 안도하기도 했다. 여러 모로 팝스타 같은 ‘멋’을 의도한 듯했다. 하지만 팝의 기준에 맞춰 K-POP 아이돌의 무대를 어색해했던 나는 팝을 우월하게 보는 시선에 사로잡혀 있던 건 아닐까? 이들이 지난 몇 년간 이루어낸 성취는 ‘K-POP 아이돌이 미국에서 인정받았다’의 수준을 넘어섰다. 오히려 그 역방향의 효과가 대단하다고 본다. BTS를 시작으로 팝 시장이 K-POP을 주목하고 있고 미국의 젊은 세대는 K-POP을 새로운 문화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K-POP은 하나의 장르로서, 새로운 ‘멋’이 될 가능성을 역으로 인정받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 인기 있는 보이밴드 PRETTYMUCH의 한 멤버는 BTS의 곡을 따라 부르고 팬을 자처하기도 했다. BTS가 팝에 끼친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 떠오르는 미국의 보이밴드들은 BTS를, K-POP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말한 DNA, FAKE LOVE, IDOL에서 ‘작것시’로의 변화를 BTS가 의도적으로 선택한 것이라면,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BTS가 팝 시장에 자리를 잡았다는 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다르게 말해, 이들은 팝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기 위해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결국 BTS는 미국 진출의 최전방에 나서 있는 K-POP 아이돌로서, 그들의 정체성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또는 K-POP 아이돌이라는 정체성을 어느 정도로 가지고 가느냐는 질문에 봉착했다. ‘K-POP 아이돌’ BTS로서 이들의 성공이 K-POP을 한 장르로 구축하게 한다면 아마 여러 장르의 무대가 모이는 세계적인 어워즈에서도 K-POP적인 무대가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작것시’는 최근 발매된 단 한 앨범의 타이틀곡일 뿐이며, 이들이 팝적인 무대를 향한 방향으로 계속해서 나아갈지는 미지수다. 아마도 BTS가 어떤 선택을 하든 향후 몇 년간은 팬덤은 식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본인들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다. BTS가 BTS로 끝날 것이냐, 혹은 K-POP의 진정한 메이저화의 주역이 될 것이냐. 이것은 K-POP 소비자로서 꽤 흥미로운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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