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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의 짝사랑 유니버스 (feat. SM 아티스트)

필자가 생각하는 최고의 가사는 누구나 공감하기 쉬운 소재를 특별하게 승화한 것이다. 짝사랑이 그렇다. 누구나 한 번쯤 마음에 담아 보았을 경험이기에 대중음악에서 클리셰처럼 사용된다. 우후죽순으로 쏟아지는 ‘나 홀로 러브 스토리’ 안에서도 유독 대가로 여겨지는 분이 있다. 바로 2020년, 필자의 마음을 뒤흔든 모노트리의 수장 황현이다. 공감을 넘어서 리스너의 심장까지 저릿하게 만드는 가사는 많은 케이팝 팬으로부터 ‘도대체 황현은 어떤 사랑을 해온 것이냐’며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황현은 JTBC ‘배달가요 – 신비한 레코드샵’ 출연으로 이 의문에 대한 실마리를 잡을 수 있도록 했다. 그는 자신의 인생곡으로 토이의 <좋은 사람>과 윤상의 <어떤 사람 A>를 꼽았고, 본인의 이야기를 다룬 곡 같다며 가사에 대한 큰 공감을 표했다. 두 곡의 가사를 떠올리는 순간 그가 작사해왔던 수많은 짝사랑 서사의 곡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고, 그 명곡들의 뿌리를 찾은 듯한 기분이었다. 김이나 작사가는 ‘좋은 사람과 어떤 사람 A를 합친 것이 바로 황현’이라는 명쾌한 답변을 연이어 내놓기도 했다. 황현은 세븐틴, 이달의 소녀, 위키미키, 엘리스 등 짝사랑을 소재로 다양한 아티스트의 곡을 작업해왔다. 하지만 그의 짝사랑 서사가 특히 SM 엔터테인먼트 아티스트를 통해 꾸준히 제시된 바 있기에, SM 아티스트를 중심으로 심장을 뜨겁게 만든 황현의 음악을 추려보려 한다.


* 해당 순서는 발매순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나랑 밥 한 번 먹는게 그렇게 힘든가요

​ 룸메이트의 <오빠 나빠>는 당시 사춘기였던 여학생들의 심금을 울려, 2008년도 경에 수학여행을 다녀왔던 사람이라면 장기자랑 무대에서 한 번쯤 접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SM 엔터테인먼트와 황현의 첫 인연은 바로 제시카, 티파니, 서현이 객원보컬로 참여했던 <오빠나빠>에서 시작한다. 참고로 ‘룸메이트’는 발매 당시 황현이 원맨 프로듀싱 그룹명으로 내세웠던 이름이며, 유희열의 ‘토이’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겠다.


이 곡은 황현이 작곡, 작사, 편곡 모두 참여한 첫 작품으로, 그가 SM 아티스트를 통해 써 내려 갔던 짝사랑 유니버스의 본격적인 출발점이 되었다. 수학여행에서 보았던 윗 학년 선배 혹은 친구의 순수한 사랑 고백 무대는 어쩌면 먼 미래, 황현에 열광할 케이팝 팬들을 위한 예고편이 아니었을까.




그거 아니 내가 요즘 니 생각에 밤이 길어졌어

에프엑스의 <좋아해도 되나요 (…Is It OK?)>는 소녀시대의 <첫눈에…>와 유사하게 발랄한 톤, 그 밑엔 스트링 사운드로 가득 찬 러브송이다.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황현의 짝사랑 연대기 중 유일하게 ‘절절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의 짝사랑 유니버스도 여성 아티스트의 목소리를 거치게 되면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떨리는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려고 한다는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던 곡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황현의 작사 실력을 엿볼 수 있는 곡이다. ‘멀리서 비춰진 우리의 거리는 잴 수 없을 만큼 좁은데 / 오늘도 나 니 옆에 설 때면 아쉬운 공기가 느껴지는걸’, ‘순간순간 느껴지는 너의 상처에 나도 아프단 말야’ 등, 당시 3년차였던 에프엑스에게 어울리는 귀여운 표현임과 동시에 짝사랑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풀어낸 가사가 돋보인다. 하지만 놀랍게도, 한 인터뷰에 따르면 <좋아해도 되나요>의 경우 실제 감정을 오롯이 담은 곡이었기에 작사하는데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너의 일상에 난 어떤 사람인지 가끔은 궁금하기도 해’ (좋아해도 되나요)

‘나의 일상 속에선 너라는 문제가 큰 숙제야 하나하나씩 풀어보고 싶어’ (지금, 좋아해)


<좋아해도 되나요>는 6년 뒤 발매된 이달의 소녀 1/3의 <지금, 좋아해>를 통해 황현이 그렸던 짝사랑 유니버스 속 여성 페르소나의 서사를 확장할 수 있었다. 아직 좋아한다고 고백을 하진 않았으나, 전전긍긍한 상태로 고민하던 <좋아해도 되나요>의 화자는 <지금, 좋아해>를 통해 지금 당장 어딘가로 달려갈 것 같은 진취적인 인물로 거듭났다. 가사 외에 음악적인 부분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느낄 수 있다. 과연 황현의 ‘현’이 현악기 ‘현’이었던가 싶을 정도로 <지금, 좋아해> 역시 후렴구에 스트링이 은은하게 깔려 귀를 가득 채우게끔 한다.




날 보며 웃을 때마다 맘 속 깊은 곳에선 심각해지는 병이 있어요

황현을 짝사랑 서사의 대가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한 작품은 다름 아닌 샤이니의 <방백 (Aside)>이다. 무대 위 배우라는 설정을 가사에 옮겼기 때문일까, 실제로 연기하듯 감정을 하나하나 살려서 부르는 보컬은 눈앞에서 방백을 하는 배우를 보고 있는 듯한 효과를 낸다. 특히 온유에서 종현, 태민 그리고 단체로 이어지는 브릿지 구간은 감정 연기가 들어간 보컬로 <방백>이라는 연극의 클라이맥스로 향하는 성공적인 빌드업을 이뤄냈다.


필자는 감히 황현의 짝사랑 유니버스가 ‘좋은 사람’과 ‘어떤 사람 A’으로 구성된 반죽이라면, 그 반죽을 이용해 만든 5단 케이크가 <방백>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화려한 불빛 아래 서있는 너의 곁을 잠시 지나가는 사람

/ 운명이 내게 정해준 배역 어떤 사람’ (어떤 사람 A)

‘지금 내 앞엔 너무 눈부신 두 사람 그리고 서툰 연길 하는 내가 있어’ (방백)


우선 <어떤 사람 A>는 상대방이 나를 인식하지 못하는 자신을 ‘이름 없는 배역’에 빗대어 표현했고, <방백> 속 화자는 ‘조연을 맡은 배우’를 자처한다. 극 중 존재감은 커졌으나, 두 곡 모두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그리고 ‘짝사랑’이라는 키워드가 가져오는 속상함과 답답함을 리스너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점에서 <좋은 사람>의 특징이 두드러진다. <좋은 사람>은 화자와 화자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에피소드를 구체적으로 나열한다. 혼자만의 사랑이 분명하게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니가 웃으면 나도 좋아’라고 말하는 답답한 모습은 눈물을 머금도록 한다. 한편, <방백>이라는 제목은 뜻부터 ‘무대 위 다른 등장인물에게는 들리지 않고, 관객들만 들을 수 있는 대사’를 의미한다. 이 곡 역시 자신의 감정을 억지로 누르는 모습, 그리고 끝내 내뱉지 못 하는 말을 리스너에게 털어놓는 듯한 상황을 연출해 가슴 아픈 짝사랑의 절절함을 배가시켰다.




널 사랑하지 않는 그 사람이 가끔 부럽기도 했어

NCT 127의 <나의 모든 순간 (No Longer)>은 겨울엔 신나는 캐롤만 듣던 필자에게 ‘이건 꼭 눈 올 때 들으리라’ 다짐하게 만든 곡이다. 앞서 서술한 세 곡은 황현이 작사, 작곡 모두 참여했으나, <나의 모든 순간>은 작사만 단독으로 참여했다. 우는 청자의 옆에서 “괜찮아”라는 말만 겨우 꺼낸다는 <나의 모든 순간> 속 화자는 ‘널 울리는 사람과 위로밖에 못’한다는 <좋은 사람>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짐작해보았다.


‘이기적인 고백을 너에게 할 수도 있지만 / 근데 그 후에 우린 어쩌죠 / 난 그게 두려워’ (방백)

‘성급한 내 고백에 모든게 어려워질까봐 / 그럼에도 나는 더 참지 못해

지금 너에게 달려가고 싶어’ (나의 모든 순간)


<나의 모든 순간>과 <방백> 두 화자의 비교를 통해 황현의 짝사랑 유니버스 속 페르소나의 변화를 읽을 수 있었다. 두 곡 모두 상대방을 향한 고백을 ‘쉽게 할 수 없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방백>과 달리 <나의 모든 순간>의 화자는 더 이상 사랑 앞에 주저하지 않고 달려가기로 결심한다. ‘무겁고 거친 현실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을 전부 다 전하겠다’는 가사는 이 곡이 담고 있는 내러티브를 더 극적으로 느껴지도록 만든다.


 

네 편의 서사를 정리하면서 황현의 짝사랑 유니버스 속 아티스트의 성별에 따라 다르게 설정된 페르소나를 살펴볼 수 있었다. 소녀시대와 에프엑스, 그리고 직접 다루지는 않았으나 언급했던 이달의 소녀 1/3의 음악에서는 자신의 마음을 직접 토로하거나, 고백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여실히 드러난다.


‘널 울리는 사람과 위로 밖에 못 하는 나’ (좋은사람)

‘처음 너의 눈물을 봤던 그 날이 생각이 나 / 하소연하던 너를 보면 난 못된 기대를 했었지’ (방백)

‘오늘 우는 너의 옆에서 꺼낸 말 / 겨우 괜찮아 괜찮아 다’ (나의 모든 순간)


반면, 남성 아티스트를 통해 펼쳐온 페르소나는 그의 인생곡인 <좋은 사람>의 화자처럼 눈물을 흘리는 상대방의 곁에서 마음 무거운 위로를 건넬 수밖에 없는 고전적인 ‘서브남’의 문법을 따른다. 단독 작사는 아니지만, 황현이 작사에 참여했던 세븐틴의 <좋겠다>는 여기서 더 나아가 화자가 좋아했던 상대와 잘 이뤄진 사람을 보며 부러워하는 마음과 함께 자신을 탓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짝사랑을 주제로 풀어낸 가사는 공감을 통해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으나, 자칫하면 속된 말로 ‘찌질한 감성’에 그칠 수 있다는 위험 부담이 공존한다. 하지만 황현은 가사에 짝사랑에서 파생되는 감정만 그대로 나열하기보다는, 그의 세계관 속 인물에게 생동감을 부여해 가사 속에서 움직이도록 한다.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페르소나의 태도는 그의 작업물을 팔로업하는 팬들에게 전율과도 같은 감동을 선사한다. 가끔 새벽 감성에 촉촉히 젖어 들고 싶은 이들에게, 황현의 짝사랑 유니버스를 하나하나 짚어보는 걸 권하고 싶다.




참고

"'헐벗은 자기 감정 그대로' 마음을 울리는 작곡의 자세,"NewsH, 2015년 12월 08일 수정, 2021년 04월 15일 접속, http://www.newshyu.com/news/articleView.html?idxno=19434.

"모노트리 황현이 '아이돌 숨은 명곡'을 만들 수 있는 이유(인터뷰①)[스타메이커],"스타뉴스, 2020년 04월 08일 수정, 2021년 04월 15일 접속, https://star.mt.co.kr/stview.php?no=20200407.13111623860.

"음표를 그리는 사람들⑤ 모노트리가 꿈꾸는 음악의 세계 (인터뷰),"텐아시아, 2015년 11월 11일 수정, 2021년 04월 15일 접속, https://tenasia.hankyung.com/topic/article/2015111139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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