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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분배가 말하는 보컬 활용

최종 수정일: 2023년 10월 2일

케이팝 아이돌 그룹은 각자마다 그룹의 정체성을 굳히기 위해 여러 전략을 쓴다. 개중에는 내세우고 싶은 목소리를 가진 멤버들 위주로 노래 파트를 짜는 방법도 있다. 이는 과거 1세대 시절부터 써온 방법이지만, 이로 인해 생기는 멤버 간 분배의 심한 불공평함이 문제점으로 대두되어 왔다. 그래도 최근에는 소속사가 팬들의 호소에 적절히 응답하거나 내부적으로도 멤버 간 보컬 활용에 대한 탐구가 더 진척되는 일로 이전만큼의 치우침은 해결되는 추세다. 심지어 4세대 아이돌에는 공식적으로 포지션을 정해놓지 않는 것이 나름의 유행이 되고 있을만큼 요즈음의 케이팝은 그 특유의 역할분담 심화를 막으려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최근의 아이돌 그룹들은 어떤 식의 정형화된 파트 분배들을 가졌고, 이가 가진 장단점을 어떻게 해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지 살펴보는 활동으로 케이팝 업계의 미래 동향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1. 트와이스 - Feel Special(2019)

트와이스는 평소 특유의 통통 튀는 컬러 팝 장르를 살리기 위한 파트 짜임이 돋보였다. 분위기에 맞는 산뜻한 나연의 목소리로 포문을 열고 쯔위-미나-모모 등의 서브보컬 멤버들로 간극을 채우며 빌드업한다. 이후 브릿지와 애드리브를 포함해 후렴은 각 절마다 지효와 나연이 양분한다. 이것이 평소 트와이스가 보이던 멤버별 보컬 활용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연차가 쌓일 무렵 나온 <Feel Special>은 래핑을 하던 채영의 중성적인 톤으로 시작을 연다. 쯔위와 모모 등 비강 사용이 두드러지는 발성의 보컬은 너무 튀지 않게 곡의 분위기를 살려주며 후렴 직전까지 안전하게 인도하는 역할만 맡는다. 그리고 그 후렴을 터뜨리고 나오는 사람은 다름아닌 사나다. 감성적인 노래지만 초반부터 호소력 있는 지효의 보컬을 배제하고 사나-나연을 연계하며 의외의 절제미를 선보이도록 짜인 이 구조는 괄목할 만하다. 당시사나는 트와이스의 보컬라인으로 새롭게 떠오르는 모양새였고, 대중에게 선보이는 타이틀 곡에서는 후렴의 선발주자로 처음 나섬으로써 그 안정적인 발성을 널리 어필할 기회를 챙겼다. 더불어 1절에서 먹먹하게 억누른 감정으로 마무리 지은 느낌은 2절과 3절에서 등장하는 지효-정연-나연이 폭발력 있게 터뜨리며 감정선을 더 극적으로 만드는 대비효과까지 알뜰하게 챙겨간다. 이는 트와이스의 색다른 보컬 활용의 지평을 열었다. 실제로 추후 발매된 <Talk that Talk>에서는 미나, 모모가 프리코러스에서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쓰이는 모습이 보인다. 또, <SET ME FREE>에서는 정연이 2, 3절 후렴에 모두 기용되며 오랜만에 리드보컬로서의 면모를 보이고, 다현, 채영의 싱잉 파트가 눈에 띄게 느는 모습을 보인다.



2. 세븐틴 - 손오공(2023)

세븐틴은 트와이스보다 더한 다인원 그룹인만큼 평소 파트 전환이 잦다. 게다가 고음에서 기용되는 조합이 한정적이던 트와이스만큼은 아니지만, 세븐틴 역시도 주로 도겸-승관-우지의 보컬라인이 고음을 처리하는 쪽으로 방향성이 잡혀있다.



<손오공>은 이례적으로 한 멤버 한 멤버가 길게 부르고 넘어간다. 음악에서 사용하는 박자나 구간 별 요구하는 긴장감이 달라진 것도 이러한 파트 분배에 한 몫 했겠지만 어쨌든 한 번에 넉넉하게 두 소절 씩 부르고 넘어가는 인상은 연차에서 나오는 여유와 합쳐져 보컬 활용이 정리감 있게 다듬어졌다는 인상을 준다. 또 <손오공>은 후렴에서 반주의 비중이 큰 노래다. 이는 동시에 그만큼 보컬의 중요도가 낮아졌다는 뜻이다. 결국 보컬에 약점인 멤버가 센터에 위치해 후렴이라는 가장 주목받는 시간 동안 스크린타임을 많이 확보할 기회가 있다는 말이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발성을 갖춘 동시에 메인댄서로 퍼포먼스에서 제 몫을 톡톡히 해내는 디노가 1절에서 알맞은 텐션의 보컬을 선보이고 들어가며 퍼포먼스까지 완벽하게 마무리해낸다. 디노가 안정적으로 형성한 좋은 인상 아래 2절과 브릿지를 각각 이어받는 디에잇과 준이, 배턴을 들고 이어달리는 구간은 다행히도 무난하다. 이들이 맡은 부분은 앞뒤 돋보이는 부분 사이 가교 역할인 동시에 특별히 고난도의 기술적인 보컬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 덕에 외국인 특유의 어색한 발음까지 쉽게 묻어간다. 물론 프리코러스에서 보이는 정한과 조슈아의 여전히 불안정한 발성, 도겸과 승관의 예측되는 등장 등 몇몇 단점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래도 <Fallin' Flower>에서 준을 브릿지의 아카펠라 고음에 무방비하게 노출하던 모습과 비교하면 충분히 자체적인 피드백이 되고 있는 모습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3. 우주소녀 - BUTTERFLY(2020)

우주소녀는 I.O.I.에서 메인보컬로 활약한 연정의 탄탄한 목소리를 후렴 전면에 노출해왔다. 서브컬처 감성에서 요구하는 무게감과 쾌감을 그 음색 안에 동시에 갖춘 연정은 단연 빠질 수 없는 팀의 핵심이다. <꿈꾸는 마음으로>나 <비밀이야>, <르네상스> 등은 10~13인 정도가 같이 부르는 곡인데도 연정 혼자 20~30%에 육박하는 파트를 독차지하는 기염을 토하는 등 그는 여태 우주소녀 노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목소리의 주인공이었다.



연차가 쌓인 후에야 소극적이지만서도 조금씩 보컬의 활용도를 바꿔가는 트와이스나, 지속적인 피드백을 거듭하며 칠전팔기를 반복하는 세븐틴의 모양새에 비해 우주소녀는 변화구를 여러 번 던지면서도 안정적인 모습을 보인다. 자세하게는 <부탁해>에서 중국인 멤버 3명(성소, 선의, 미기)이 빠진 상황을오히려 서브보컬 멤버들의 파트를 늘리는 기회로 활용했다. 은서와 보나, 루다 등의 분량 급상승이 돋보이는 이 진취성은 다음 곡으로 이어진다. <Boogie Up>에서는 브릿지에서 또다른 메인보컬 다원에게 목소리를 충분히 뽐낼 수 있는 파트를 쥐어주고, 연정은 이번에도 프리코러스의 일부로만 자리했다. 그리고 <BUTTERFLY>는 이러한 분배의 정점을 찍는다. 도입부를 안정적으로 열기 위해 리드보컬인 설아를 문지기로 택한 것은 관습적인 일이었기에 그리 놀랄 일은 아니지만, 이어지는 부분에서 고난도 구간이 딱히 없음에도 중음부 음역 안에서 노는 벌스에서 메인보컬인 다원-연정을 차례로 먼저 소모하는 과감함을 선보인다. 또 서브보컬 멤버들이 많은 시간을 부른 것은 아니지만, 가장 돋보인다고 할 수 있는 1절 후렴을 오롯이 여름과 루다의 힘으로만 꾸려가는 것은 덤. 여기에 담백하게 눌러야 할 훅을 다영과 연정에게 주는 것으로 모자라 다원이 오랜만에 후렴을 부르거나, 수빈이 브릿지에서 3절로 이어지는 애드리브까지 맡으며 총체적으로 가히 파격적인 분배를 선보인다. 연정의 보컬은 주인공으로서 보여준 역량만큼이나 조연으로서의 물러남도 적당히 아는 중용을 가졌고, 수빈은 애드리브를 소화하면서 노래의 이미지를 밝게 환기하고 메인보컬의 위용을 과시할 기회를 만들었다.



4. 몬스타엑스 - GAMBLER(2021)

몬스타엑스는 그동안 대표곡 <Shoot Out>을 위시한 대부분의 타이틀 곡에서 메인보컬 기현 위주로 목소리를 엮어내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상기한 우주소녀의 사례와 같이 몬스타엑스 역시 발성을 제대로 이해하면서도 가창에서 탁월한 피지컬과 완성도를 보이는 멤버의 비중이 꽤 높다. 래퍼 주헌과 아이엠이 자랑하는 공기 함량과 호흡은 물론이요, 서브보컬 민혁은 복면가왕에서 3라운드까지 진출하는 상당한 실력을 갖췄지만 이상하리만치 소속사는 기현, 셔누 이외 멤버들의 보컬 활용에 소극적인 편이었다.


(셔누는 GAMBLER 활동 때 병세를 보여 불참. 애드리브가 섞여있지만 화음을 더블링하는 나머지 멤버들의 가창을 제대로 볼 수 있어 스탠딩 라이브 영상을 가져왔으므로 참고 바람.)


<GAMBLER>는 이러한 애로사항을 완벽하게 메꾼다. 이 노래의 1, 2절 프리코러스의 후반부(음원 기준 1분~1분 6초, 2분~2분 6초)는 중고음역대를 오가는 멜로디를 적당한 시간으로 끌면서 한 호흡에 강하게 때려 박듯 부르는 피지컬을 요한다. 이를 1절에서부터 기현과 민혁이 나눠 부르는데 2절에서는 거뜬히 순서를 바꿔 부른다. 브릿지가 주헌의 반가성을 뻗는 소리로 끝나는 것도 충격적이다. 이 여운은 청자를 댄스브레이크로 이끌다 3절 이후에는 리드보컬 셔누가 깔아주는 애드리브 위에서 기현, 민혁의 목소리가 교차하며 정신없는 폭격을 퍼붓고 끝난다. 민혁과 형원은 이 곡에서 6명 중 각각 4위, 5위에 해당하는 분량을 가져갔지만, 멤버별로 가져간 분량이 16초 내외 정도로 모두 균일하다. 게다가 민혁에게 이 노래는, 브릿지와 3절에서 화음으로 한 번, 메인 트랙으로 한 번 탄탄한 발성을 바탕으로 아낌없이 본인이 가진 피지컬을 쏟아붓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것으로 여러모로 양질의 배분이라고 보아도 무방했다. 이 노래가 변화의 효시였을까? <LOVE>에서는 래퍼 특유의 라임 위주 그루브를 타는 주헌이 소울풀한 싱잉을 보이고, <Beautiful Liar>에서는 도입부의 선율적인 라인을 리드래퍼 아이엠이 살린다. 멤버들의 파트 분화나 적절한 포지션 이탈이 주는 의외성과 흥미로움이 몬스타엑스에는 분명 있다.


케이팝 업계에서는 적절한 파트 분배도, 그렇지 않은 분배도 있어왔다. 파트 분배 자체가 심한 고착화를 이루어 변화가 아예 없는 경우까지도 물론 있다. 케이팝 업계가 떠오른 것은 퍼포먼스 덕택일 가능성이 크지만, 각자의 보컬 능력치가 충분해 다양한 활용을 보여줄 수 있는 경우 가수로서의 수명 연장에 도움이 됨 역시도 사실이다. 따라서 보컬 활용 측면에서 기존 관행을 뒤엎는 시도 역시 지금과 같은 빈도로 적당히 늘어난다면, 팀의 잠재력 홍보에 큰 도움이 될 듯하다. 아울러 역할 분화의 고착화가 심해진 케이팝 업계에 재미 있고도 유연한 파장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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