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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민의 이상을 실현하는 그의 이데아

최종 수정일: 2021년 2월 28일

샤이니의 태민은 근 2년 6개월 만이지만 솔로 아티스트 태민은 지난해 정규 3집을 발표할 만큼 꾸준한 행보를 이어왔다. 그 중 3집 act.2의 타이틀곡이었던 ‘이데아(IDEA:理想)’를 한 번 다뤄볼까 한다.


이데아, 시작부터 흥미를 자극하는 제목이었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모티브로 삼아 자아를 찾고자 한다는 말이 앨범 소개에 있었다. 분명 쉽지 않은 모티브였다. 플라톤의 ‘이데아’, 한 번 즘은 모두가 들어본 단어일 것이다. 흔치 않더라도 은근히 사용되는 단어이기도 하다. 대체로 좋은 것, 이상향을 나타내는 단어로 여겨지는 것 같지만 실제로 그리 단순하진 않다. 매우 심오한 단어이니 말이다. 이 멋진 단어를 과연 어떻게 풀어냈을까 곧바로 곡을 실행시켰다.

우선 태민의 ‘이데아(IDEA:理想)’가 아주 강력하고 완전한 자아를 찾고 있음은 분명히 느껴졌다. 또한 곡의 가사를 두고 그저 단순히 자아를 이데아에 비유했다 넘기기엔 그 내용이 심오했다. 어려웠지만 단어에 대한 고찰이 제법 이뤄진 곡이 아닌가 싶었다. 적어도 필자가 느끼기엔 그러했다. 이데아를 단지 곡의 제목으로 두기보단 조금 더 엄밀한 개념을 알아보며 곡을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고 이를 독자 여러분과 나누고 싶었기에 기사를 준비했다. 이제 가사 속 단어를 따라가며 곡을 음미해보도록 하자.


© SM엔터테인먼트. 샤이니


먼저 곡이 이데아에 대한 비유를 인식하고 있음은 명확해 보였다. ‘shadow, 실루엣, 그림자’라는 세 단어가 그러하다. 윤리와 사상을 고교 시절 공부한 독자라면 아마 쉽사리 떠올릴 것 이다(지금도 이 비유를 배우지 않을까 싶다). 플라톤은 자신의 저작 〈국가〉에서 ‘동굴의 비유’를 통해 이데아계와 현상계를 설명했다.


축약하여 말하자면 죄수들은 동굴 바닥에 앉아 빛이 들어오는 입구를 등지고 있고 그들과 빛 사이에 담장이 있다는 비유이다. 그리고 이 담장 위로 여러 가지 것들이 지나쳐 간다고 할 때 죄수들은 오직 그것들의 ‘그림자’만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볼 수 없는 물건이 바로 실재하는 사물, 원상 즉 이데아이며 뒤로 비춰진 그림자가 바로 우리가 보는 현상이다. 이렇게 볼 때 태민은 우선 진정한 자아를 찾기 전 그의 완전하지 못한 ‘그림자’를 보고 있다.

이후의 해석을 위해 이데아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하겠다. 그래서 그림자랑 다른 원상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데아란 바로 존재 그 자체를 뜻한다. 이는 생성과 소멸, 바로 변화가 부정됨을 의미한다. 이데아의 세계에서 모든 것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데,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진정한 세계가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시간이 흘러가며 변화하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플라톤은 이런 세계가 아닌 진정하고 참된, 변치 않는 보편적인 세계를 추구하길 권한다. 즉 이데아를 원한다는 태민의 뜻은 참되고 진정한, 언제나 변치 않고 완전한 자아를 찾겠다는 의지인 셈이다.


그림자를 본 태민은 당연히 한 번 더 나아간다. 그림자는 결국 이데아가 아니니까. 그리고 끝내 ‘너와 날 마주’한다. 인식이란 한계’를 넘어서 말이다. 이는 아마 감각적 인식을 넘어 이성을 통해 이데아를 인식했다는 것 같았다. 너와 날 마주할 때’를 말하며 태민은 곧 상황을 묘사한다. 너란 존재가 ‘내 세계 속 가장 눈부신’ 존재라는 가사가 아주 훌륭해 보였다. 곡의 흐름상 ‘너’는 곧 이데아의 비유일 것인데 가장 눈부신 너는 곧 가장 눈부신 이데아로 이어진다. 플라톤의 ‘태양의 비유’가 적용된 가사인 듯 했다. 플라톤은 이데아 중에서도 최고의 이데아 바로 ‘선(좋음)의 이데아’를 태양에 비유했는데 이를 고려한 가사로 여겨졌다. 이 부분을 지나며 곡이 제법 남아있지 않나 싶었지만 태민이 이데아를 찾은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동굴의 비유, 1604 오스트리아 얀 산레담의 판화


그러나 곡의 마지막 갑작스레 혼란이 찾아왔다. 반전이라면 반전이었다. 우선 가사를 살펴보자.

“내 속에 너를 도려낸 밤 / 끝내 새로운 눈을 뜬 나”


문제의 내용이다. 곡의 중후반부 태민은 분명 너는 ‘내 세계 속 가장 눈부신’ 존재라고 노래했다. 그러나 끝내 너를 도려낸 후에야 진정으로 눈을 떴다는, 마치 너를 버린 후에야 목적을 이룩했다는 가사가 적혀 있는 것이다. 정말 이렇게 마무리되는 걸까, 앞서 언급된 ‘너’는 선의 이데아에 비유된 진정한 자아가 아니었던 것일까? 천천히, 다시 한 번 가사를 살펴보았다.


한 가지가 새롭게 눈에 들어왔다. 너란 존재가 가장 눈부시지만 ‘내’ 세계 속에서 그렇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너란 존재에 대한 생각은 다시 이뤄져야만 한다. ‘불완전한 나’의 세계는 앞서 말했듯 불완전한 감각의 세계 바로 현상계이다. 이곳에선 당연히 이데아를 찾을 수 없다(조금 더 엄밀히 말하자면 현상계에는 이데아가 분유되어 있을 뿐이다).


다시 가사로 돌아가 생각해 볼 때 완전한 줄 알았던 너는 결국 나의 세계 즉 현상계에 있는 것으로 진정한 자아라고 할 수 없다. 아무리 눈부시더라도 ‘너’는 결국 나의 세계에 있고 태민은 아직 이데아를 찾지 못했다. 이데아계에 닿지 못한 것이다. 즉 너는 감각에 의존했을 뿐 진정한 자아(이데아)가 아니다. 여기서 다시금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굳이 눈부신 존재인 너를 말한 이유가 무엇인가? 극적인 반전을 위한 가사일까? 앞서 우리는 분명 너를 찾아 기쁨을 느낀다는 인상을 받았다.


© SM엔터테인먼트. 태민


이곳에서 생각나는 개념은 ‘에피스테메와 독사’였다. 가사를 해석하기 전 에피스테메와 독사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겠다. 이는 파르메니데스의 〈자연에 관하여〉에서 우선 언급되는 개념이다. 파르메니데스는 에피스테메와 독사라는 이분법적 개념을 통해 세계를 보는데, 전자의 것은 있음이나 존재, 후자의 것은 없음이나 허위라고 간단히 생각하면 된다(에피스테메는 근본적으로 ‘학’이란 뜻을 가졌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우선 ‘참된 인식’으로 해석하여 사용함을 밝힙니다). 그는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는 명언을 남기며 존재에 대해서는 에피스테메만이, 그 아닌 것에는 독사만이 가능함을 밝혔다.


그러나 플라톤의 경우 파르메니데스와 조금 다른 생각을 전개한다. 그는 파르메니데스가 말한 독사를 없는 것이 아닌 ‘참되지 않은 것, 억견’이라 표현한다. 플라톤에 따르면 없는 것에는 독사조차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에피스테메에 대한 대상을 이데아로, 독사에 대한 것을 현상, 바로 감각에 의한 것이라 말한다. 즉 이데아에 대한 앎이 곧 에피스테메, 현상에 대해 무엇인가 안다고 믿는 것이 바로 독사인 것이다. 그리고 플라톤은 에피스테메가 진정한 인식임을 주장한다. 이는 곧 플라톤이 실시한 이데아와 현상의 구분이기도 하다.


다시 가사로 돌아가자. 위의 것들을 고려하여 진정한 자아를 참된 앎이라고 할 때 태민의 가사는 알고 보니 불확실한 것 즉 독사였던 ‘너’에 대한 믿음과 주관적 인식을 버리고, 이제 진정한 자아(에피스테메에 대한 인식)를 추구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마치 파르메니데스가 〈자연에 관하여〉 속 ‘여신의 환영사’를 통해 여겨지는 것, 독사에 대해 깨달을 것을 요구하며 에피스테메의 선택을 권했던 것 같지 않은가.


©바티칸 미술관. 라파엘로 아테네 학당. 중앙 좌측의 인물이 플라톤이다.


결국 태민의 ‘이데아’는 플라톤이 참된 인식을 추구했듯 진정한 자아를 찾겠다는 아주 강력한 외침이다. 곡의 해석을 고려하자면 진정한 자아를 찾겠다는 의지의 표명인 셈이다. 그리고 그는 결국 이 목적을 이룩한 것 같다. 너라는 독사를 도려내고 끝내 새로운 눈을 떴기 때문이다. 다른 감각 역시 사용되고 있지만 가사 속 시각에 의존한 비유가 좀 더 두드러짐을 고려할 때 새로운 눈을 떴다는 것은 중대한 깨달음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을 살펴보며 태민의 ‘이데아(IDEA:理想)’를 분석해보았다. 분석을 끝내고 보니 제법 아니, 상당히 잘 구성된 가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작사가가 총 7명이었기에 이런 통일된 해석이 부족할 수도 있다. 더하여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 혹은 에피스테메와 독사에 대한 설명과 적용이 다소 어긋났을 수도 있을 것이다. 몰론 최대한 개념이 틀리지 않도록 노력하였다. 다만 모든 것을 고려하려 2페이지의 글에 담기가 쉽지 않았음을 고백하며 양해를 구하도록 하겠다. 그러나 철학으로 가사를 읽는 것, 나름대로 재밌지 않았는가?



 

* 가사 해석을 위해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사용하였고 보조적인 설명을 위해 파르메니데스와 플라톤의 에피스테메, 독사에 대한 내용을 사용하였습니다. 곡과 가사가 ‘진정한 자아’라는 최종 목적을 ‘이데아’에 비유하여 노래하고 있다고 가정하였고 이런 관점을 바탕으로 가사 분석을 진행하였습니다. 모든 가사의 단어 하나하나를 다루진 못했기에 해당 관점을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또한 위 이론과 개념들이 철학사적으로 방대하게 사용되어 그 뜻을 단순히 제한시킬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사 분석을 위해 필자 나름 최대의 노력을 담아 글을 완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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