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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애가 최애가 되는 순간: 1년 반 동안 음악을 피해 다녔던 평범한 군인 이야기


출처: 대한민국 공군 공감 블로그


복학생들의 입에서 나오는 ‘군대 썰’이 지겹다고들 한다. 그들에게는 본인이 몸소 겪은 인생의 한번 뿐인 특별한 사건이겠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단지 공감하기 어려운 천편일률적인 ‘백스물세 번째 군대 이야기’일 뿐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전역한 지 한 달도 채 안 된 필자 역시 모임에서 조용히 있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필자는 군대 이야기가 매우 하고 싶다. 다함께 모인 자리에서 안 하기 위해, 인생 곡선 그래프에서 최저점을 찍었던 그때의 이야기를 여기에 딱 한 번만 풀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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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충동적인 사람이다. 당장 내 앞에 산적해 있는 일들도 처리하기 급급한데 어차피 지키지도 이루지도 못할 앞날을 설계한다는 것은 무의미하고 또 그럴 겨를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군대를 가기 전 4년을 보냈다. 대학생이지만 전공과목이 나랑 맞지 않고 재미없다고 느껴지면 그 과목은 그냥 포기해버렸다. 별안간 광주가 가보고 싶어 엄연히 수업 시간임에도 내려갔다 오기도 하고, 거리에 붙은 연극배우 모집 포스터를 우연히 보고 그 자리에서 지원해 오디션을 보고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마음 가는대로 결정하는 성격이 일을 그르치게 한 적도 적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겪지 못할 수도 있었던 특별한 경험들을 선사해주기도 했다.



그런데 나의 무계획적인 성격은 결정적인 문제 하나를 해결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되었다. 바로 군 문제였다. 특별한 목적 때문에 미룬다 해도 스물 중반이 넘으면 주위의 따가운 시선이 넘치기 마련이거늘 뚜렷한 이유도 없이 단지 가기 싫어서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어느덧 스물네 살이 되어 버렸다. 미필이라는 이유로 알바도 구하기 어려워지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군대는 언제 갔다 올 거냐고 닦달이었다. 적금을 들기 위해 갔던 은행에서 일면식도 없는 은행원이 인사보다도 앞서 ‘군대 언제 가실 건가요?’라는 질문을 던진 것은 특히 내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어느 날 잠자리에 누웠는데 갑자기 짜증이 확 밀려왔다. 그래서 세 달 뒤에 입대를 하기로 충동적으로 결정했다.


군대를 경험한 대부분이 공감하겠지만 입대 날짜가 다가온다고 해서 점점 울적해지거나 슬퍼진다거나 실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학교를 다니며 바쁘게 지내던 평소보다 훨씬 여유롭기까지 하다. 단지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질 뿐. 물리적으로 훈련소와 가까워지는 날은 더욱 그렇다. 설날에 바빠서 본가에 내려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어머니와 싸우고 나서 가족의 배웅은 일절 없이 혼자 시외버스를 타고 진주로 향했다. 그날은 봄의 한복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장마철 마냥 차창 밖으로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었다. 맑은 날과 우중충한 날의 기분 차이가 가뜩이나 하늘과 땅 차이인데, 대학 생활과 백팔십도 다르다고 알고는 있지만 동시에 어떠한 정보도 없는 그곳에 대한 미지의 두려움이 겹쳐 버스에 있는 장장 네 시간 동안 한숨도 잘 수 없었다. 마침내 훈련소에 도착했다. 나를 아는 사람이라고는 한 명도 없는 사람들을 향해 절을 하는 입소식 행사도 끝이 났다. 가방과 불안함만을 메고 멀뚱멀뚱 서 있는 동기들을 불투명한 천막이 둘러쌌다. 롤러코스터의 안전벨트는 이미 내려왔다. 이제는 내릴 때까지 버텨야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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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아이들 앨범 <I am> 단체 이미지 / 출처: 큐브 엔터테인먼트
여자친구 앨범 <Time for the moon night> 4차 단체 이미지 / 출처: 쏘스뮤직
AOA 앨범 <BINGLE BANGLE> 단체 이미지 / 출처: FNC 엔터테인먼트
블랙핑크 앨범 <SQUARE UP> 표지 출처: YG 엔터테인먼트

미지는 상상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군대의 속성을 파악하지 못한 나 역시 사회에 있을 당시에 매체와 소설에서 자주 언급되곤 하는 전형적인 군대의 모습으로 어쭙잖게 미래를 예단했었다. 군대는 평일에만 일하고 주말에는 쉬니까 자기 계발을 할 시간이 충분할 것이다, 안에서 나와 같이 생활하게 될 수많은 선후임과 친하게 지내서 나중에 전역하고 나서도 친하게 지낼 것이다, 처음 해 보게 될 침대 생활이 기대가 된다 등. 그 중에서도 TV로 음악중심이나 엠카를 같이 보면서 생활관 사람들과 아이돌 얘기를 나누게 되리라는 기대감이 컸다. 입대 3일 전까지 총 1년을 아이돌레에서 마케팅 팀장의 일을 했으니 덕후들처럼 아이돌 문화에 통달해 있지는 못하더라도 아이돌레 활동을 통해 귀동냥으로 들은 것만으로도 머글 중에서는 그래도 아이돌 얘기를 꽤 이어나갈 수 있는 수준이리라 싶었다.


실제로 동기들뿐이었던 훈련소와 특기학교에 있을 동안 걸그룹들의 컴백이 잦았다. 이번에 데뷔했다는 (여자)아이들의 ‘LATATA’가 훈련소 사찰에 울려 퍼지자 눈치 볼 것 하나 없는 우리는 ‘아침까지 그렇게 더 미쳐버리듯이’ 클럽처럼 춤을 췄다. 여자친구의 ‘밤’이 나왔을 때는 후렴의 ‘밤, 밤, 밤, 밤에~’ 부분을 음악방송을 소화하느라 여념이 없을 여자친구에게 함성이 가닿을 기세로 일제히 떼창을 했다. AOA의 ‘빙글뱅글’, 블랙핑크의 ‘뚜두뚜두’는 강한 중독성 덕분에 딱 한 번 듣고서 복도에서 너도나도 부르고 다녔다. 동기들끼리 같이 듣고 춤추고, 노래를 즐긴 이후 노래에 대한 평과 가수 관련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이돌과 함께한 순간만큼은 ‘이 정도면 군 생활 할 만하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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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기대는 자대에 가면서 깨졌다. 자대는 선임 두 명과 나, 병사만 도합 세 명뿐인 작은 파견대였다. 업무는 365일 24시간 교대근무였고 그래서 오히려 간부가 출근하지 않는 주말에 일을 더 많이 해야 하는 구조였다. 침대도 없었고 TV는 엉뚱하게 사무실에만 놓여 있었다. 선임들은 나이가 꽉 찬 후임이 들어온 것을 못마땅해 하는 눈치였다. 더불어 내가 낯을 심하게 가려서 수다스럽고 유쾌한 성격이 발현되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고 친해지기 전에는 쉽사리 입을 열지 않는다. 새로운 사람이 온 것 치고 분위기가 갈수록 어색해져 갔다. 신병이면 신병답게 ‘선을 지키면서 적당히 재미있고 행동은 빠릿빠릿하게’ 살기를 바랐겠지만 그렇지 못해 선임들도 적잖이 답답했을 게다.

진짜 문제는 절대 복종을 전제로 하는 군대 문화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근무 시간이 아니어도 일을 시키면 해야 했고 간부의 판단이 틀리거나 마음에 안 들어도 토를 달면 안 되었다. 내 바로 위 간부는 천사의 현신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착함의 끝을 달렸지만 일처리 하는 방식은 융통성이라고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일을 못 한다고 혼내면서도 인수인계를 제대로 해 주지 않았다. 초반에는 충동적인 성격으로 간간이 들이받았다. 아닌 건 아니라고, 이건 어떻겠냐고 등 나도 머리가 있고 생각이 있는 사람임을 어필했으나 부대는 놀랄 만큼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그저 병사답지 못하다며 계속 내리누를 뿐이었다. 일주일에 60시간 가까이 교대근무를 하면서도 터무니없이 적은 보상을 받는 군대 안에서 나는 더 이상 한 개인으로서의 나를 표현하고자 하는 의지와 체력을 모두 상실하고 말았다.


낮과 밤이 바뀌는 환경과 부적응, 500일 넘게 남은 전역일과 피부로 생생하게 와닿는 멀어지는 인간관계, 군대를 오기 전부터 했던 고민이 한데 뭉쳐 걷잡을 수 없이 부풀어 올랐다. 신체적으로도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가 갑자기 글자가 안 읽히기 시작했다. 문장을 읽는데 한 어절 한 어절 의미를 떠올려야만 겨우 이해할 수 있었다. 뉴스 자막이 다음으로 넘어가면 방금 나왔던 자막이 무슨 내용이었는지 까먹어버렸다. 한 시간이면 책 50페이지 가까이를 너끈히 읽어내던 사람이 웬일인지 한 시간에 네 페이지밖에 읽지 못하고 그마저도 어찌어찌 읽은 후에는 등이 땀으로 흥건히 젖어버렸다. 안구가 농구공처럼 눈두덩 안에서 튀고 있는 듯한 고통도 있었다. 결국 내가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상태라고 판단한 간부는 나를 정신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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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중앙일보


평생 갈 일이 없을 줄 알았던 정신병원에서는 그 전까지 유사한 증상이 없었다는 점을 이유로 입원까지는 면하게 해 주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울지 않겠다던 그동안의 결심이 무색할 정도로 거의 매일 울어서(심지어 의사 앞에서도 울었다) 당연히 우울증은 진단에 포함되었고, 감각 기관으로 들어온 정보를 모종의 이유로 뇌에서 처리를 못 하는 것 같으니 경도의 해리 장애 또한 있다고 보고 처방을 내리겠다고 했다. 분명 제일 약한 강도의 수면제라고 들었는데 실제로는 반 알만 먹어도 20분 만에 졸음이 오고 열 시간은 족히 재웠다. 잠에서 벗어나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자려고 눈을 감기 직전까지 바라보게 되는 끔찍한 군대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덜 볼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수면제는 효과가 있었다.

소위 ‘상꺽’이라고 불리는 상병의 절반까지 이렇게 살았다. 자대에 전입을 오면서부터 장장 1년 반 동안 컴백하는 아이돌의 노래는 물론이고 길거리에 무작위로 흘러나오는 노래조차 듣지 않으려고 했다. 군대가 가요를 내가 듣고 싶다고 찾아 들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기도 했지만, 노래를 들으면 안정이 오는 것이 아니라 되레 ‘가수들은 저렇게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경제적으로도 부유해지고 자아실현을 하는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여기 있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무력감과 남들보다 뒤쳐진다는 불안감만 증폭될 뿐이었다. 사랑을 갈구하고 나를 떠나지 말라는 구구절절한 대부분의 노래 가사는 변변한 사랑의 경험도 만들지 못하고 번번이 고배를 마셔야 했던 내게 위화감만을 안겨주니 시간 낭비와 다를 바 없었다. 음악을 피하던 기간 동안 엠넷에서는 IZ*ONE을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나의 최애 그룹인 여자친구는 컴백을 세 번이나 했다는 사실을 전역 직전에야 알게 되었다.

적응을 안 하려야 안 할 수 없는 긴 시간이 흐르고 병장이 되면서 눈에 띄게 줄어든 디데이 숫자가 큰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취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군대 가기 전 회사에 내세울 거리를 아무것도 만들지 못한 내 자신에 대한 질책과 취직한 사람들을 향한 까닭 없는 질투심이 나를 잡아먹었다. 적어놓고 보니 이렇게 잡생각이 많았으면서 어떻게 전역을 무사히 할 수 있었는지 경이로울 정도다. 나는 아무 쓸모가 없는 사람일까? 태어나서 처음으로 ‘미래 설계’라는 것을 하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할 때 즈음, <퀸덤>이라는 프로그램이 런칭한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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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주간 아이돌> 223회 방영분 캡처


예능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나는 많을 때는 일주일에 열 개 가까이의 예능을 본다. K-POP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도 <주간 아이돌>이라는 예능 때문이었다. 2015년 11월 4일, <주간 아이돌>에는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아이돌이 출연했다. ‘Closer’로 컴백한 오마이걸이었다. 신인이 출연하면 보통은 예능에서 웃겨야겠다는 욕심과 부담감 때문에 무리수를 둬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겸연쩍게 만들곤 하는데, 오마이걸은 선을 넘지 않고 그 직전에 끊는 능력이 뛰어났다. 또한 별자리를 형상화한 특이한 대형의 안무와 이를 무리 없이 소화해내는 춤 실력에 나도 모르게 감탄을 했다.


그 이후로 오마이걸이 방송에 나오면 조건 반사처럼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최애 그룹은 아니었지만 컴백할 때마다 노래를 꼬박꼬박 찾아들었다. 대학교 축제에도 온 적이 있었는데 멤버 중 한 명인 비니는 측면에서 우두커니 서서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는 나와 눈을 마주치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분명 나에게만 흔들어준 것 같았는데 근처에 있던 열 명이 일제히 나에게 흔들어줬다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의 아이돌스러움에 반했던 기억이 있다.

최애는 아니었지만 나의 차애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던 오마이걸이 엠넷의 경연 프로그램 <퀸덤>에 나온다는 소식은 군대 안에서 한동안 잊고 있었던 감정인 기대감과 설렘을 갖게 해 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오마이걸은 엠넷의 살인적인 편집을 우려하는 팬들의 걱정을 한순간에 기우로 만들어버리면서 본인들이 잘하는 것을 대중에게 각인시키는데 성공했다. 이미 골백번도 넘게 봤지만 ‘나의 지구(Destiny)’ 커버 무대에서 전주에 허리 숙여 인사하는 안무는 아직도 소름이 돋는다. 뱀파이어 컨셉의 ‘Twilight’과 바다의 제왕 컨셉의 ‘Guerilla’는 오마이걸이 그동안 보여준 모습과는 다른 색다른 매력을 보여주었다. 또한 1등을 하고 감동을 받은 멤버들이 우는 모습은 거의 매 회 등장했지만 질리지 않고 외려 ‘뿌앵’이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내며 시청자들의 덕심을 자극했다.

오마이걸의 <퀸덤> 출연은 아이돌에 관심이 없던 머글들을 본인들의 팬덤인 ‘미라클’로 대거 유입시키는 결과를 낳은, 이른바 ‘신의 한 수’였다. 나 역시 오마이걸이 컴백하면 스트리밍 정도만 돌리던 소극적인 응원에서 발전해 데뷔 후 5년 동안 그들이 남겨 놓은 v앱, 사진, 방송 클립 등을 적극적으로 찾아보기 시작했다. 효정이 직접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미라클’을 위한 이벤트를 진행한다고 하자 하던 일을 잠시 접고 바로 이벤트에 참여할 정도로 제대로 입덕을 해 버렸다. 전역을 한 지금도 팬심은 식지 않았다. 거의 매일 자전거를 타고 어딘가를 갈 때마다 50곡 가량 되는 타이틀곡과 수록곡 모음을 항상 듣는다. 4월 말에 컴백한다는 기사를 접하고 나서는 난생처음으로 앨범을 사 볼까 고민 중이다. 수강신청에 실패한 적이 없었던 그 운이 콘서트 티켓팅에도 통할지 실험해보기 위해 오매불망 콘서트 공지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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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Mnet <퀸덤> 9화 캡처


그런데 이처럼 차애였던 오마이걸이 최애가 된 이유는 비단 그들의 무대 실력과 귀여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퀸덤>의 무대는 도무지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던 우울증과 무력감을 말끔히 씻어내려 주었고 나에게 용기와 희망을 심어 주었다. 오마이걸이 <퀸덤>에 출연하기로 했다는 소식에 팬덤의 크기로 순위가 결정되는 시스템 속에서 오마이걸은 살아남기가 어렵지 않을까하는 팬들의 우려가 많았다. 아마 오마이걸 스스로도 그런 걱정거리를 안고 방송을 시작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강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열심히 연습해 무대를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인지도가 살짝 아쉬운 그룹이라는 세간의 평가가 실력 때문은 아님을 당당하게 증명해냈다.

한 아이돌 그룹이 오로지 노력으로 기어코 1등이라는 평가를 받는 모습은, 주위의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주변 사람들의 취직은 질시하면서 정작 마음이 불안하다는 이유로 아무런 노력을 안 하고 있던 내게 경종을 울렸다. 나는 할 수 있다! 비록 공부도 안 해서 학점도 낮고 군대도 늦었고 만들어놓은 것이 아무것도 없을 지라도,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처럼 분명 어딘가 길이 있지 않을까? 자신 있는 것, 잘하는 것을 살려 지금부터 열심히 산다면 내가 꿈꾸던 목표에 한 발짝 두 발짝 가까워질 것이다. 이런 자명한 진리를 스물 중반에야 깨닫다니...! 남과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깎아내리기 급급했던 25년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찾아온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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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덤> 이후 사회에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못했던 것을 군대에 있을 때 해 보자며 시작했던 것이 자격증이었다. 좀 더 일찍 개안했더라면 더 많이 땄을 텐데 세 개밖에 못 땄다. 취준할 때 필요할까봐 땄지만 공부하는 과정은 전혀 힘들지 않았고 오히려 시나브로 발전해나가는 내 모습에 도취가 되기까지 했다. 전역을 하고 나서는 바로 복학을 했고, 전체 학점 평균이 유의미할 정도로 올라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어 ‘전과목 A+’라는 감당 안 되는 목표를 세우고 최대한 노력하는 중이다. 아직 난독 증세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 책을 읽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잠자는 시간을 아깝게 여기고 줄여가면서 진도를 따라가고 있다.

글쓰는 걸 좋아하는 친구들이 모여 아이돌을 다루는 책을 내보자며 소소하게 시작했던 ‘아이돌레’는 군대를 다녀온 2년 사이에 제법 체계를 갖춘 단체가 되어 있었다. 전역하고서 다른 건 몰라도 ‘아이돌레’는 하고 싶었다. 만약 다시 돌아간다면, 얕은 관심만을 갖고 있는 내가 아이돌을 미주알고주알 알고 있는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 걱정을 했다. 다행히 모든 분들이 다 착하시고 일도 나보다 훨씬 잘하셔서 에디터 팀장으로 복귀하고 나서도 아무런 문제없이 적응해 나가고 있다.

입대하기 직전 당시 ‘아이돌레’에 갓 들어왔던 2기 분들과 가졌던 뒤풀이 자리가 떠오른다. 1기 회원은 모두 잡덕이었던 반면 2기 회원은 말 그대로 아이돌 덕후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뒤풀이 자리가 아이돌 얘기로 도배되는 것을 꿀 먹은 벙어리처럼 지켜보면서 어린 마음에 ‘아이돌에 돈과 시간을 저렇게 많이 들여도 되는 걸까?’하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왜 아이돌에 열광하는지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아이돌은 음악으로서 현재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사람이고, 나는 그들이 창조한 문화로부터 삶을 향한 의지를 얻었으니까. 우리는 노래를 듣는 순간만큼은 행복하니까. 더 많은 사람들이 K-POP으로부터 오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도록, ‘아이돌레’ 에디터 팀장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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