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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와~ 이런 한국은 처음이지?

필자는 재작년, 어느 대학교의 디자인과 전시 관람 중 '한국의 혼종성에 대한 소구'라는 제목의 작품을 본 적이 있다. 말 그대로 오늘날 우리나라의 특징 중 하나로 '혼종성'이 강하게 두드러지는 경향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가?" 하고 고민해보았는데 생각보다 역사가 유구하다. 한국인은 생각보다 '섞기'를 좋아한다. 좋아 보이는 것이 있으면 일단 무엇이든 섞고 본다. 전체적인 조화가 훌륭하다면 성공적으로 안착하기까지 한다. 음식으로 치자면 비빔밥이 전통적으로 그랬고, 현대에도 별별 음식들을 한국인의 입맛대로 개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결과 '치즈라면'이나'뚱카롱' 같은 훌륭한 혼종(?)이 다수 탄생했으니 말이다. 특히 뚱카롱의 경우 음식의 최초 발원지인 프랑스 현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음식이다. 비단 음식 뿐은 아니다. 무대 위에 올라가는 퍼포머들도 경연 하나에 자신이 잘하는 것들을 모두 쏟아넣어 보여주고 싶어하는 경우가 더러 보인다. <스트릿우먼 파이터>의 'WANT'는 메가크루 미션 때 리더 효진초이가 올장르에 대한 욕심을 처음부터 쭉 내비쳤다. <퀸덤>에서는 3차 경연에서의 AOA가 팬들이 보고 싶어하던 노래들을 단타적으로라도 한 무대 안에 몰아넣어 보여주고 싶어했다. 각 무대가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와 별개로, 상기한 사례들로 보건대 이는 확실히 한국인이 예전부터 가져온 특성이 맞다.




아이즈원의 <FIESTA>는 그러한 면에서 분명히 한국적인 바이브를 내는 노래다. 작곡가 유튜버 "미친감성 (감성사운드)"는, 총체적으로 '무슨 느낌인지 모르겠는' 묘함이 핵심이라는 평을 남겼다. 이것저것 많은 것이 섞여 정체성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총체적으로는 듣기 좋은 사운드로 완성되었다는 말이다. 이 혼란스러움은 음악적으로 설명 가능하다. 무거운 비트에서 느껴지는 '퓨처 하우스'의 어두움과, 산뜻한 신시사이저의 '트로피컬 하우스'적 향기가 서로 상쇄되었다고 해당 유튜버는 영상에서 언급한다.(영상 1:20~2:25) 상반된 분위기가 있는 두 장르를 이질감 없이 잘 섞었다는 말이다. 또, 영상에서도 언급되는 각 후렴 막바지에 불협화음으로 가성을 찍는 탑라인(화려한 이 축)은 이 묘한 온도감을 이루는 요소 중 하나로 아주 확실히 기능한다. 오히려 불협화음이 아닌 음정으로 해당 음절의 가사를 찍었다면, 필요 이상으로 단번에 밝아지는 분위기가 그동안 유지해 온 무게감을 깨뜨리기 때문이라고.(영상 4:33 부근) 오히려 화음이 아닌 요소를 가져와 병치하는데, 이가 기존 멜로디 진행에 유기적으로 스며든 것도 역시 '혼종성'이 플러스(+)적 개념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은유하는 듯 하다.


그렇다면 한국적인 노래는 '혼종성'으로만 설명될까? 그렇지 않다. 아이브의 <I AM>은 또다른 '한국적임'을 뽐낸다. 케이팝이라면 으레 써 온 날카로운 신시사이저 사운드와 고음역대의 탑라인으로 빵빵하게 채워넣었다. 사나운 드럼과 베이스가 부피감을 풍성하게 보태고, 여기에 묘하게 향수적인 멜로디 진행까지 빠지면 섭섭하다. 자극적이고 화려한 맛으로 가득 채운 이 기획은 다시 한 번 잊혀졌던 2세대 아이돌의 영혼을 무대 위로 끌어내는듯하다. (한성현, izm, "이즘 아이브 I AM 리뷰", http://www.izm.co.kr/contentRead.asp?idx=31847&bigcateidx=1&subcateidx=3&view_tp=1, 2023.10.01) 그래서 아이브는 누구보다도 한국식 가요가 그동안 쌓아올린 유산의 가장 정통한 후계자 같다. 같은 회사 소속인 크래비티의 <Groovy>는 가득 찬 건강미와 함께 빠지면 섭섭할 보컬 차력쇼를 선보이는데, 아이돌로지 필진 '예미'는 이 두 사례를 보고 극한의 건전함을 추구해온 레이블답다는 말을 남겼다. 거기에 케이팝의 미덕은 '과함'임을 다시금 느꼈다고 덧붙이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예미, 아이돌로지, "idology I AM", https://idology.kr/17424, 2023.10.01) 이런 맥락에서 비추어 본다면 앞서 소개한 두 노래는 그동안의 케이팝의 정체성과 역사를 다시금 성공적으로 되새김질하는 듯 보인다. 그래서 케이팝의 또다른 특징은 '맥시멀리즘'이다. 그리고 여태까지의 케이팝은 '혼종성'과 '맥시멀리즘'이라는 두 요소가 같이 쓰여왔다.




ⓒ guyso.me(가이섬), 곡 별 멜론 실시간차트 기준 성적.



이 두 요소 말고도 케이팝을 설명할 다른 키워드는 얼마든지 있다. 필자가 다음으로 언급할 것은 (여자)아이들의 <LATATA> 등으로 위시되는 라틴 하위 장르의 노래 전부다. 굳이 한 곡 만을 콕 집어 이야기하기보다 장르 전체가 그렇다. 라틴의 선율적 면모가 띠는 흥과 비트의 쫀득함이 묘하게 한국적 정서와 맞는다는 이야기는 그동안 수없이 많았다. 흔히 말하는 '뽕'으로 표현되는 문화적 코드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여자)아이들의 프로듀싱을 데뷔부터 쭉 담당해오기로 유명한 멤버 소연도 이를 짚으며, 자체 비하인드 컨텐츠 '해쉬톡(HASHTALK)'에서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뭔가 한국 음악이랑 라틴 음악이 비슷하다고 생각한다"라고 이야기했다. 아울러 '뽕끼'도 언급하며 공유하는 결이 있을 것이라는 감상을 확실하게 내비쳤다.((G)I-DLE (여자)아이들 (Official YouTube Channel, YouTube, "전소연 해쉬톡", https://youtu.be/Ln65fG0CnwM?si=KCqP4U-bO3Vrk0tF(1:40~2:06), 2023.10.02) 실제로 라틴의 하위 장르인 뭄바톤으로 나온 프로듀스 48 경연곡 <Rumor>, 아이브의 <ELEVEN>, (여자)아이들의 <한()>, 이달의 소녀의 <PTT(Paint the town)> 등의 노래는 K팝 업계 내에서 연달아 히트했다. 상기한 노래 중 <PTT>를 제외한 나머지는 실제로 발매 당시 멜론 실시간 차트 상위권을 유영하며 그 인기가 건재함을 과시한 바 역시 있다.(사진 참고) 심지어 저 중 상당수가 신인이 데뷔한 지 얼마 안 돼 나온 음악이거나 프로젝트성 음악이라 별다른 홍보가 없었음에도 이러한 쾌거를 이룩한 것은 눈여겨볼 만하다. 이국적인 향취가 진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심장이 누구보다 잘 반응하는 노래면, 이 역시도 한국적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 HYBE Official YouTube Channel



또 '뽕'에서 이야기를 연장한다면 뉴진스의 <ETA> 역시도 한국적인 음악의 일부다. 곡을 내내 흥겹게 이끄는 브라스(brass; 관악기의 일종)는 팡파레가 울려 퍼지는 '서구권 제례'와 90년대 한국 트로트의 주 선율을 이루던 서민적 '뽕짝 감성'의 사이에 위치한다. 이는 작곡가 250의 영향으로 보이는데, 브라스 외에도 한국적이라고('뽕'이 있다고) 느낄 만한 다른 구석도 찾아볼 수 있다. 곡 내내 미세하게 공간을 채우는 자잘한 리듬 악기와, 후렴부분의 배경을 작게 수놓는 휘슬 소리를 듣다 보면 실제로 이전에 그가 자신의 음반 [뽕]에서 선보인 <레드 글라스>, <뱅버스>, <바라보고> 등의 잔상이 비치는 느낌을 받는다. <ETA>는 분명 서구권의 풀 파티가 주된 이미지적 배경이고 영어 가사가 절반 내외나 되는 비중을 차지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가 '한국적'일 수 있다는 사실은 꽤 흥미롭게 다가온다.


물론 단순히 국악기의 선율만을 쓰거나 시각적인 이미지를 직관적으로 가져온 노래 역시 빼어난 퀄리티를 자랑한다. 이미 빅스의 <도원경>, 원어스의 <가자(LIT)>, 블랙핑크의 <Crazy Over You>는 이러한 부분에서 극찬을 받았다. 오마이걸이 커버한 러블리즈의 <Destiny> 무대도 분명 이러한부분에서 회자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한국적임'이 너무 천편일률적 갈래로 해석되기 시작하는 데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한다면, 이 글에서 소개한 노래가 분명 문화적 위용을 넓히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러니 누군가 '한국적임'을 소개해줄 노래가 없냐고 물어본다면 부연설명과 함께 위와같은 노래들을 이야기하라. 의외성 있는 위의 노래들이 신선함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러니 어깨 펴고 거론해도 괜찮을 것이라 감히 자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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