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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아처

어느 날 엄마에게도 아이돌이 생겼다 (부제: 내 덕후 DNA의 출처)

필자는 중학생 때 첫 덕질을 시작했다. 좋아하는 아이돌의 앨범과 굿즈를 구매하고 콘서트를 보러 갔다. 하지만 필자의 덕질은 어머니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히고 만다. 어머니는 연예인에게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셨고 굉장히 싫어하셨기 때문이다. 결국 필자는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 반강제적으로 휴덕하게 된다.


대학생이 되고 다른 아이돌 덕질을 시작하면서는 저번 경험을 토대로 삼아 어머니께 필사적으로 숨기고 있다. 굳이 갈등의 불씨를 키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님 앞에서 ‘일코(일반인 코스프레)’하기를 5년, 드디어 부모님은 나를 ‘머글(덕후가 아닌 일반인)’로 보기 시작했다. “옆집 딸은 어떤 아이돌 보러 일본까지 갔다는데 우리 딸은 안 그래서 다행이야”라는 얘기까지 들었으니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놀랍게도 엄마에게 아이돌이 생겼다. 바로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미스터트롯’의 임영웅이 그 주인공이다. 처음엔 ‘미스터트롯’ 본방송을 챙겨보는 것으로 시작하셨다. 그런데 점점 재방송도 꼬박꼬박 챙겨보시더니,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임영웅의 무대 클립 영상을 몇 번씩 돌려보시는 것이었다. 그런 엄마의 모습에서 최애 직캠을 닳을 때까지 보는 나의 모습이 겹쳐 보여 순간 소름이 돋았다. 또 임영웅에게 매일 한 표씩 행사해야겠다며 ‘미스터트롯’ 대국민 투표에 참여하는 방법을 알려달라고도 하셨다. 어머니께 앱을 깔아드리고 투표 방법을 알려드리자 매우 기뻐하셨고, 필자와 아버지에게도 매일 투표를 하도록 지시하기까지 하셨다. 이는 ‘프로듀스101’을 보며 나의 원픽에게 매일 투표하던 필자의 모습과 동일했다. 필자가 어머니 옆에서 ‘미스터트롯’ 본방송을 함께 보는 날도 많았다. 필자의 ‘미스터트롯’ 픽은 임영웅이 아닌 다른 참가자였는데, 그런 필자를 보고 어머니께선 “임영웅이 우승하지 못하면 밥을 차려주지 않을 것이다”라는 귀여운 협박까지 하실 정도로 엄청난 팬이 되어 계셨다.


사진 출처: TV조선 ‘미스터트롯’ 5회 캡처


어머니의 덕심은 날이 갈수록 증폭됐다. 임영웅이 우승하고 난 이후에도 어머니의 덕질은 멈추지 않았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출연자들이 이곳저곳에 섭외가 되자 각종 떡밥을 챙기기 시작하셨다. 필자는 그런 엄마의 덕질을 도와주고자 라디오 앱을 깔아드렸고, ‘미스터트롯’ 공식 채널에 올라오는 갖가지 스포 영상과 사진들, 라이브 채팅 방송, 각종 인터뷰 글과 팬블로거의 재밌는 분석 글 링크까지 보내드렸다. 어머니께서 어느 날은 자신에게 더 소개해줄 콘텐츠는 없냐며 떡밥을 더 요구하시기도 하였다. 결국 필자는 어머니께 유튜브의 세계를 열어드리기로 한다. 임영웅 유튜브 공식 채널에 올라오는 다양한 영상들을 소개해드리자 매우 좋아하시며 하루 종일 찾아보셨다.

한번은 ‘미스터트롯’에 관해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는데, 어머니께서 이제 노래 영상은 많이 봐서 재미가 덜하고 오히려 비하인드가 더 재미있다는 얘기를 하셨다. 무대 뒤 멤버들의 인간적이고 귀여운 면모를 볼 수 있는 브이앱이나 리얼리티를 ‘존버’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덕후의 모습이었다. 특히 참가자 간의 소소한 교류를 보는 걸 즐거워하신다. 처음엔 노래하는 모습을 좋아했지만, 갈수록 임영웅을 인간적으로도 응원하게 되었다는 얘기도 하셨다. 무명 시절을 버텨낸 끈기, 그동안의 노력, 다른 트로트 가수들과의 우정 등 인간적인 면모를 보고 그를 더 응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그 순수한 마음은 아이돌을 좋아하는 나의 마음과 똑 닮아있었다. 내 덕후 DNA는 다름 아닌 엄마에게서 온 것이었다.


최근 어머니와 임영웅 얘기를 하다 보면 주기적으로 교류할 덕질 메이트가 필요하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어머니는 당신이 재밌게 본 영상을 필자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보고 싶어하시고 공감해 주길 원하신다. 친구 분들과 통화하실 때도 요즘 본인이 ‘미스터트롯’에 빠졌다고 밝히시곤 한다. 친구 분이 자신도 ‘미스터트롯’을 보고 있다고 하면 굉장히 기뻐하시며 함께 프로그램 얘기를 나누신다. 어머니의 행복은 ‘같수니(최애가 같은 빠순이)’를 만났을 때 최대치를 찍는데, 친구 분이 어머니처럼 임영웅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을 때 같이 얘기를 나눌 상대가 생겼다는 사실에 매우 즐거워하신다.


사진 출처: 인터파크티켓


‘미스터트롯’ 콘서트 표를 예매하여 어머니께 깜짝 선물해드린 날, 아이처럼 좋아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어머니께도 어머니만의 아이돌이 생기면서,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이 일상의 위로와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하신 것 같다. 언젠간 어머니께서 필자의 방대한 덕질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물론 앨범을 몇십 장 사고 해외 공연을 따라다니고 출퇴근길을 보러 다니는 것까지 이해해주시는 건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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