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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쪼꼬

아이유 <Modern Times>의 새로운 해석

최종 수정일: 2021년 11월 11일


아이유 <Modern Times> (2013)

ⓒ카카오 엔터테인먼트


지금은 아티스트와 아이돌의 모호한 경계를 드러내는 대표적인 뮤지션이지만 2013년 이전의 아이유는 ‘국민 여동생’의 위치에 있었다. ‘나는 오빠가 좋은 걸’이라며 싱그러이 노래하고 3단 고음까지 소화하던 ‘좋은날’의 이미지가 대중의 뇌리에 콕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도 아이유는 청소년이 성인에 가지는 막연한 환상과 두려움을 담은 <Last Fantasy>와 스무 살의 풋풋함을 담은 <스무 살의 봄>까지 소녀 이미지를 충실히 이어갔다.


2013년, 구설수에 올라 ‘국민 여동생’ 타이틀을 박탈당한 아이유는 <Modern Times>를 발매했다. 이 음반을 콘셉트 변화의 기점으로 보는 이유다. 에스닉하고 고혹적인 앨범 커버가 대변하는 것처럼 아티스트가 시각적으로 파격적인 변화를 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음반이 단순 이미지 변신을 위한 선택이라는 주장은 단편적인 해석으로 보인다. 그에 따르면 당시 뮤지션의 상황과 연결했을 때, 왜 1900년대 초반 모더니즘 문화를 앨범의 주재료로 삼은 것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발매 8주년을 맞았던 지난 10월, <Modern Times>를 다시 한번 듣다가 좋은 앨범이 이미지를 실추한 국민 여동생의 영악한 행보로 남는다는 것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모더니즘 문화와 연결해서 이 음반에 대한 또다른 해석을 제시하려고 한다.


앨범의 배경인 ‘모던 타임즈’는 어떤 시대인가?

(왼)귀스타브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 <파리의 거리, 비 오는 날 Paris Street on a Rainy Day>, 캔버스에 유채, 212.1×276.2cm, 1877

(오) 영화 <모던 타임즈 Modern Times> (1936)


‘모던(Modern)’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유럽에서 일어난 ‘모더니즘(modernism)’ 예술운동에서 나온 말이다. 그 기원과 달리 지금은 예술적인 의미보다는 시간적인 의미를 강하게 지니고 있다. <Modern Times>라는 제목은 곧 앨범이 19세기 말 20세기 초반을 배경으로 상정하고 있음을 뜻한다. ‘모던 타임즈’가 막연하게 느껴진다면 우디 앨런이 감독한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떠올리면 된다. 주인공 길이 시간을 되돌려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헤밍웨이, 피츠 제럴드 등의 거장들과 어울렸던 곳이 바로 1920년대의 파리다.


모던 시대 중에서도 특히 1920년대는 '황금시대', '재즈 시대', '아우성치는 시대', '광란의 시대'라는 여러 별칭이 있을 만큼 역동적인 시기였다. 직전 4년간 이어진 1차 세계대전과 함께 비약적으로 발전한 과학기술로 인해 사람들이 세계를 보는 방식이 달라졌고 문학, 미술, 영화 등 예술 전반에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 프랑스 파리뿐 아니라 미국도 연평균 4.1%의 경제성장률과 함께 ‘광란의 1920년대’라고 불리는 황금기를 누렸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 <언터쳐블> 등이 당시 미국의 경제와 사회의 분위기를 짐작케 한다.


많은 예술가들이 이상향으로 삼을 만큼 아름다운 시대지만 그 이면의 그림자도 무시할 수 없다. 앨범과 수록곡의 제목이기도 한, 찰리 채플린이 1936년 제작한 영화 <모던 타임즈>는 모던 시대의 어두운 면을 조명했다. 영화는 산업화가 진행되던 1910년대의 미국을 배경으로 하며 주인공 찰리 채플린은 컨베이어 벨트 공장에서 나사못을 조이는 일만 반복하는 노동자로 등장한다. 영화에서 보듯 당시 노동자는 화장실에 갈 시간조차 부족하다. 찰리 채플린은 사람을 한 명의 인격체가 아닌 하나의 부품처럼 여기는 산업화를 비판했다. 현대 문명의 기계 만능주의와 인간 소외를 풍자하고 가난한 자들을 대변하고자 한 의도다.


모던 시대의 음악

1930s Swing Jazz


<Modern Times>의 트랙들은 1900년대 초반 유럽과 미국에서 유행했던 스타일을 차용하여 시대성을 표현했다. 모티프 삼은 영화의 분위기처럼 클래시컬한 ‘Modern Times’는 딕시랜드(Dixieland) 재즈 스타일을 따랐다. 19세기 극후반부터 20세기 초반 미국의 뉴올리언스에서 재즈가 발생한 이후, 1910년대 남부의 흑인들이 일자를 찾아 미국 동부의 대도시로 이주할 때 연주자들도 함께 이동하면서 재즈의 새로운 거점이 된 곳이 바로 시카고다. 번성한 지역의 이름을 따라 시카고 재즈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음반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는 의미에서 이 시기 재즈를 딕시랜드라고 한다.

타이틀곡 ‘분홍신’은 딕시랜드 이후 유행했던 스윙(Swing)을 차용했다. 스윙은 1930~1940년대 대중적으로 크게 유행한 스타일로, 감상용 음악이 아닌 춤을 추기 위한 댄스 음악으로 사용되었다. 스윙은 주로 15명에서 20명의 연주자로 이루어진 빅밴드가 연주했으며 악기구성은 주로 색소폰 그룹, 금관 파트, 리듬 섹션의 3부분으로 나눠져 있었다. ‘분홍신’ 역시 1930년대 고전 스윙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일본에서 빅밴드 멤버들과 함께 즉흥 연주 기법으로 녹음을 진행했다. ‘을의 연애’의 집시 재즈 스타일은 1930년대 기타리스트 장고 라인하르트(Django Reinhardt)가 시작한 음악으로 집시의 전통 음악과 스윙 재즈를 융합한 음악이다. 프랑스 음악의 큰 기원이기 때문에 재즈 마누슈 또는 마누슈 재즈라고도 불린다.


앞서 소개한 곡들은 모두 1900년대 초반 유럽과 미국에서 유행한 스타일이지만 보사노바 스타일의 ‘Obliviate’, ‘아이야 나랑 걷자’ 그리고 삼바 리듬의 ‘Havana’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기원한 음악으로 연관성이 떨어져 보인다. 라틴아메리카는 서구의 제국주의에 의해 19세기 초반까지 지배받았고 그 과정에서 흑인 노예들이 유입되며 많은 문화들이 결합하고 융합된 곳이다. 특히 그들이 낳은 다양한 리듬은 오랫동안 재즈를 위시한 영미 대중음악 리듬의 중요한 재료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음악의 기원보다 모던 시대의 정신과 연결해서 살펴보는 것이 더 의미 있을 것이다.


이국주의적 이상향 아바나

(오) <1930~1940년대 아바나의 풍경 1930s 1940s View From The Bay Havana>, Vintage Images Art (왼)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 (1999)


‘Havana’는 ‘거기선 모두가 노랠 하고 산대요 / 부서지는 파도 앞에 살면서’라는 가사로 어떤 이상향을 그리듯 쿠바의 수도 아바나를 표현했다. 그 외에도 ‘미지’, ‘꿈’, ‘휴식’, ‘고민과 걱정 사라지네’라는 신비롭고 이상적인 단어를 계속해서 언급한다. 1930년대의 쿠바는 ‘음악을 진정으로 즐기고 사랑하던 시대’라고 불린다. 특히 부유한 미국인들의 휴양지로 각광받았던 아바나에는 미국인 자본으로 세워진 카바레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이 카바레들은 쿠바 음악인들의 생계 수단이었고 그만큼 예술창작이 활발했다. 모던 시대로 돌아간 아이유가 음악을 활발히 향유하던 아바나를 자신의 이상향으로 삼은 이유다.


쿠바의 밴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1999)이 ‘Havana’의 가사와 같이 아바나에 대한 낭만적인 시각을 담고 있다. 쿠바 음악의 전성기를 좇는 영화는 파도가 밀어닥치는 말레콘 해변의 풍경을 펼쳐 놓으며 관객에게 아바나에 대한 환상을 심어준다. 하지만 영화가 중점적으로 담고 있는 센트로 아바나와 아바나 비에하, 말레콘 해변은 도시의 아주 일부에 불과하다.


“쿠바의 풍경과 사람들에 대한 단순화된, 이국적인 이미지는 일종의 구성된, 만들어진 것이며, 사람들의 마음과 발길을 쿠바로 향하게 하는 강력한 유인이다. 그것은 쿠바사회의 내부로 들어가 다양성과 차이, 갈등과 실천을 드러내기보다는 그 모두를 동질성과 고정성, 그리고 순수와 낭만주의로 묘사하는 상상적 경관이다. (진종헌, 2015, 답사발표, 한국도시지리학회 자료집)”


위에 인용한 말처럼 아바나의 낭만적인 경관은 극히 서구적인 시선이다. 특히 유럽을 세계사의 중심으로 보고 서양문명을 우위에 두는 유럽중심주의를 바탕으로 쿠바의 아바나를 비롯한 라틴아메리카를 타자화하는 관점이다. 계몽주의와 산업혁명으로 이룩한 근대성을 숭배했던 모던 시대는 회색 도시의 우울함과 대비되는 낭만성, 산업화로 잃어버린 여유를 타자에게서 찾으며 낙원이자 이상향으로서 이국주의를 만들어냈다.


타자성을 대표하는 아이유

아이유(IU) ‘누구나 비밀은 있다’ (Feat. 가인 of Brown Eyed Girls) ⓒ 카카오 엔터테인먼트


앨범의 배경인 모던 시대의 정신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근대 철학은 언제나 주체, 중심, 기반을 확립하고자 했고 ‘사유하는 나’에게서 그 정착지를 발견했다. 이 중심성 강화는 필연적으로 그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자아들을 배제하거나 억압할 수밖에 없다. 주체가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명징한 인식을 획득할수록 중심에서 소외된 주변부는 단지 대상물로 전락하거나 배제된다. 앞서 언급한 이국주의도 마찬가지다. 유럽의 중심성 강화는 모더니즘의 중심지인 유럽중심주의로 이어졌고 이것이 근대성으로 여겨지며 유럽이 아닌 주변부는 근대적이지 못한 곳 혹은 원시성과 낭만이 있는 곳으로 여겨지고 대상화되었다.


근대적인 시각을 재현한 <Modern Times>에서 주인공인 아이유는 타자의 위치에 머무른다. 연습생 시절 일기를 토대로 지은 자작곡 ‘싫은날’의 ‘내 방 고드름도 녹을까 햇볕 드는 / 좋은 날 오면은’이라는 가사는 소외계층을 대변하고, 브라운아이드걸스의 가인과 함께 부른 라틴 재즈곡 ‘누구나 비밀은 있다’의 가사는 루머를 해명하는 듯하다. 실제로 대중에 의해서 타자화된 아이유 자신을 표현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또한 ‘Obliviate’에서는 아픈 기억을 지우고 싶은 집시 여인의 모습을 그렸다. 유랑생활을 하거나 저임금 노동자로 오랫동안 살아온 유럽의 집시는 지금도 차별의 대상이다. 1930년대 히틀러가 유대인, 동성애자와 함께 집시를 민족말살의 대상에 포함시키며 피해를 입기도 했다.


<Modern Times>에서 아이유가 전하고 싶었던 말

아이유(IU) ‘아이야 걷자 (feat. 최백호)’ ⓒ 카카오 엔터테인먼트


<Modern Times>에는 양희은, 최백호와 함께 부른 트랙이 수록되어 있다. 이후 발매한 <꽃갈피>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 협업은 청자가 경험하지 못한 시간을 현재로 끌어오는 방식이며, 대가들의 목소리는 타자성을 대표하는 아이유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민다. ‘한낮의 꿈’에서 ‘밉게 우는 건 이제 그만 할까 / 이대로 어디로든 갈까 / 아니면 눈을 감을까’라며 고민하는 아이유에게 양희은은 ‘그렇게 아픈 건 잊어지지 않아 / 시간에 기대어 봐 가만 / 한낮에 꿈을 꾸듯이’ 하며 위로한다. ‘아이야 나랑 걷자’의 최백호는 ‘아이야 서두를 건 없다 / 비가 올 것 같진 않아’라며 조급한 마음을 다독인다.


대가들의 따뜻한 위로를 받은 아이유는 'Modern Times'의 가사에서 ‘다음에 보면 / 또 인사해요’라며 공장의 기계에서 시계 톱니처럼 일하는 노동자 찰리 채플린에게 말을 건넨다. 모던 시대의 타자와 현대의 타자가 연결되는 순간이다. 이런 연출을 보면 아이유는 세상의 많은 타자들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특히 1900년대 초반의 인간소외, 물신주의 등 화려한 문화 뒷면의 그림자와 현대를 연결하여 지금도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손 뻗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이때의 아이유는 아직 프로듀서에 의해 잘 재단된 아이돌이었지만, 이후 <CHAT-SHIRE>부터 자신의 앨범을 직접 프로듀싱하면서 ‘나이 시리즈’와 ‘이름에게’, ‘Love Poem’ 같은 위로의 가사로 탄탄한 지지층을 얻었다. 완전한 기반을 확립하기 전이더라도 대중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소외된 이에게 손을 내미는 아티스트 아이유의 시작이 <Modern Times>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 참고문헌

- M.칼리니스쿠, 『모더니티의 다섯 얼굴』, 이영욱 역, 시각과 언어, 1993.

- 민은기, 『대중음악의 이해』, 파주: 음악세계, 2016.

- 김은중, 「유럽중심주의 비판과 주변의 재인식」, 『한국학논집』 42 (2011), 67-94.

- 진종헌, 「서구의 시선으로 상상한 낭만적 이미지의 재구성, 아바나」, 『국토』 417 (2016), 86-94.

- 신채기, 「배운성의 자회상: 인종, 국가, 이국주의에 대한 교차하는 시선들」, 『현대미술사연구』 46 (2019), 165-190.

- 원동훈, 「쿠바음악의 인류사적 의미와 미래문화적 대안성」, 『음악과 문화』 15 (2014), 155-181.

- 손영창, 「타자성과 외재성에 대해 ― 레비나스를 중심으로」, 『대동철학』 53 (2010), 129-156.

- 이우진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에 나타난 이국주의에 대한 연구」, 박사학위논문, 전북대학교,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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