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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쪼꼬

아이유, 20대 봄의 에필로그


© EDAM 엔터테인먼트


3월 25일 아이유의 다섯 번째 정규앨범 <LILAC>이 발매됐다. 열여섯의 나이로 데뷔해서 쉴 틈 없이 우리 곁을 지켜온 그지만, 이번 앨범은 유독 기다림이 길게 느껴졌다. 너무 큰 기대로 마음이 잔뜩 부풀었기 때문이다. 누구의 플레이리스트에서도 빠지지 않는 가수인 만큼, 필자뿐만 아니라 다들 그랬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모든 1위를 석권한 성적표가 증명하고 있지 않나.


무엇보다도 앨범의 표제 라일락의 꽃말, ‘젊은 날의 추억’처럼 아티스트의 지난날을 회고하고 정리하는 앨범이라는 점이 팬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아이유가 20대 내내 ‘나이 시리즈’를 발매하며 쌓아온 대중적 공감도 하나의 층위를 형성했다. 신보를 들으며 우리가 20대 아이유의 어떤 부분에 공감하고, 또 어떤 마음으로 그 뒤를 밟아왔는지 되짚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물


IU(아이유) _하루 끝 MV

©EDAM 엔터테인먼트


Monday Better day / 처음처럼 설레이는 그런 날


꼭 내가 영화 한 편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은,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스무 살의 봄>(2012) 그 자체가 아이유의 20대가 시작됐음을 알렸다. 앨범이 담고 있는 설렘은 다른 게 아니다. 스무 살의 우리가 꿈꾸던 운명적인 사랑. 그건 혼자 끙끙 앓기만 하다가 결과를 알지 못하고 끝나는 미지의 영역 혹은 가슴 아픈 이야기로 남는다. 그 양상대로 봄바람처럼 살랑이는 설렘을 ‘복숭아’가 대변하고, ‘하루 끝’은 특별한 한 해의 운명을 가를 대답만을 남긴 채 끝난다. 온 마음 다한 어린 날의 사랑은 ‘그 애 참 싫다’에서 구체화된다.


아이유가 그린 ‘가장 좋을 때’는 기분 좋은 설렘이 가득하지만 직접 마주했을 때 느낀 실망감도 함께 나타난다. 마냥 좋지만은 않은, 양면적인 감정이 가득한 스무 살. 그 사실적이고도 낭만적인 앨범은 이제 시간이 지나고도 우리를 늘 그해 봄에 머물게 만드는 마법의 주문이 되었다.



스물셋


IU(아이유) _ 스물셋 MV

©EDAM 엔터테인먼트


난, 그래 확실히 지금이 좋아요 / 아냐, 아냐 사실은 때려 치고 싶어요 아 알겠어요 나는 사랑이 하고 싶어 / 아니 돈이나 많이 벌래


<Modern Times>(2013), <Modern Times Epilogue>(2013), <꽃갈피>(2014)까지 아이유는 계속해서 성공 가도를 달렸다. 하지만 2018년 방송했던 KBS2 <대화의 희열>에서 그는 당시 슬럼프를 겪었다고 고백했다. "어린데 참 잘한다."라는 칭찬에, 앞으로 '어린데'라는 수식어를 빼고 잘한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고민이 컸다고 한다. 게다가 카메라 공포증까지 겪었다고 힘든 시기를 반추했다. 그는 <CHAT-SHIRE>(2015)를 직접 프로듀싱하며 ‘최악의 구간’을 극복했다고 밝혔다. 이는 근사한 모습만을 보여준 채 불안함을 감추기보다는 음악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서 솔직하게 내보이겠다는 다짐이었다.


‘스물셋’은 다른 사람도, 저 자신도 도무지 알 수 없는 알쏭달쏭한 그때를 담고 있다. ‘아직 아이로 남고 싶어요’라는 가사처럼 마냥 어린애처럼 굴고 싶다가도, 의연한 어른처럼 보이고 싶은 아직 고민 많은 나이. 그 마음만큼이나 가사도 이랬다가 저랬다가 뜻을 알 수 없고 난해하다는 평가도 많이 받았다. 더해서 ‘스물셋’의 뮤직비디오와 ‘Zeze’ 등 여러 논란까지 겹치면서 그동안의 활동까지 모두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아이유가 표현의 자유에 집중하여 서툰 아티스트의 모습을 보였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성인이지만 어른은 아닌 어린 나이의 아티스트에 조금의 관용조차 보이지 않는 대중의 반응은 가혹하지 않았나 싶다. 시간은 지났고, 지금 이 곡은 매년 1월 1일마다 미성숙한 모든 스물셋을 대변하고 있다.



스물다섯


IU(아이유) _ Palette(팔레트) (Feat. G-DRAGON) MV

©EDAM 엔터테인먼트


“I like it, I'm twenty five / 날 좋아하는 거 알아 Oh, I got this, I'm truly fine /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날”


수수께끼 같은 스물셋을 지나 스물다섯에 도착했다. 아이유는 애써 꾸민 캔버스가 아닌 자연스러운 팔레트 자체를 작품으로 만들었다. 솔직한 노랫말을 듣다 보면, 꼭 그림을 완성할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과 동시에 앨범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다. 아이유는 이제 스스로를 조금 알 것 같다며 조심스레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한 팔레트를 펼쳐 보인다. 하나씩 꺼내 놓는 취향은 그의 말처럼 조금 촌스럽기도 하지만 소박하고 알차다.


유심히 들여다보면, <Palette>(2017)의 색들은 하나하나 다른 빛을 머금고 있다. 동시에 그 빛은 어느 정도 일관성을 유지한다. 오혁과 함께한 ‘사랑이 잘’을 제외한 모든 곡을 아이유가 직접 작사했기 때문이다. “조금의 픽션도 없이 내 일기장을 그대로 옮겨 가사로 만들었다"고 밝힌 대로, 오밀조밀한 가사들은 스물다섯의 이지은이 어떤 사람인지 드러낸다. 자신의 취향을 하나하나 읊어주는 ‘팔레트’와 그의 새벽을 오롯이 담은 ‘밤편지’, 모든 이에게 닿을 ‘이름에게’까지. 제각기 달리 빛나는 가사들은 우리가 스스로의 취향을 묻고 지난밤에 쓴 일기를 들춰보게 만들었다.



스물여덟


IU(아이유) _ eight(에잇) (Prod.&Feat. SUGA of BTS) MV

©EDAM 엔터테인먼트


“우리는 오렌지 태양 아래 / 그림자 없이 함께 춤을 춰 정해진 이별 따위는 없어 / 아름다웠던 그 기억에서 만나”


스물여덟을 상징하는 ‘에잇’은 동갑의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이 눈에 띈다. 방탄소년단의 슈가가 프로듀싱과 피처링을 맡았고, ‘금요일에 만나요’를 피처링했던 EL CAPITXN(장이정)도 함께했다. 워낙 인기 있는 아티스트들이라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대중들의 기대가 큰 와중, 아이유는 어느 때보다도 캐쥬얼한 작업이었다며 의외의 말을 전했다.


하지만 그가 담고자 한 메시지까지 가벼운 건 아니었다. “에잇은 너라는 가상의 인물과 여러 비유를 사용해 나의 스물여덟을 고백한 짧은 소설과 같다”라는 아이유의 말 대로, 자신에게 보내는 위로와도 같은 곡이다. 동시에 2020년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전하는 힐링송이기도 하다. 코로나19로 인해 반복되는 무력감과 그 이전을 표상하는 ‘오렌지 섬’에 대한 그리움을 담았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무거워질 수 있는 내용이었으나, ‘에잇’은 인트로에서 공간감을 형성하는 신스 사운드와 록킹한 기타 리프, 직설적이고 시원한 보컬을 통해 피로감 없이 보편적인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스물아홉


IU(아이유)_LILAC(라일락) MV

© EDAM 엔터테인먼트


나를 알게 되어서 기뻤는지 / 나를 사랑해서 좋았었는지 우릴 위해 불렀던 지나간 노래들이 / 여전히 위로가 되는지”


<LILAC>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기차표의 출발지는 ‘HILAC’이고 도착지는 ‘BYELAC’이다. 피지컬 앨범 역시 그 두 가지 버전으로 발매했다. 네이버 NOW <아이유의 스물아홉의 봄>에서 직접 밝힌 바에 따르면, 신보가 ‘20대의 졸업’을 뜻하기 때문에 “안녕”이라는 인사를 담은 것이다. 뮤직비디오와 앨범 아트의 꽃가루 역시 졸업 때 쏟아지는 밀가루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뮤직비디오에서 ‘좋은날’(2010)의 음악요정이었던 정재형이 아이유를 기차역에 내려두고, 밝게 인사하며 20대의 열차를 몰고 떠나는 모습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정재형의 출연은 ‘라일락’에 ‘좋은날’의 리프와 가사가 들어갔기에 아이유가 직접 부탁한 것이라고 한다.


앨범의 스케일도 어느 때보다 크게 키웠다. 작고 소박한 것을 좋아하는 아이유지만, 약 1년 전부터 계속해서 ‘빅 사이즈’를 언급해왔다. 그 결과 ‘밤편지’의 듀오 김제휘와 김희원, ‘그 애 참 싫다’의 심은지를 제외하면 크레딧에는 온통 낯선 이름뿐이다. ‘Flu’와 ‘Celebrity’의 라이언 전, ‘봄 안녕 봄’의 나얼, ‘어푸’의 이찬혁 등 인지도 있는 작가들의 이름이 눈에 띈다. 하지만 작사 외에는 아이유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이번 앨범에서 보컬리스트의 면모를 강조하고, 앨범의 톤을 유지하기 위해 자작곡을 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지난 20대를 무리 없이 담았고 그 모든 것을 뛰어넘기까지 했다.


성장의 증거는 그동안 가지고 있던 미세한 불안의 편린마저 지워버린 모습이다. ‘에필로그’의 해설에서 “스물세 살의 아이유도, 스물다섯의 아이유도, 작년의 아이유도 아닌 지금의 저는 이제 아무 의문 없이 이 다음으로 넘어갑니다.”라고 전한다. 그야말로 그의 ‘20대를 완독한’ 팬들을 벅차오르게 하는 성장이다. ‘라일락’을 통해 전하는 이 인사는 얼마나 기쁜 일인가. 더 단단해진 이지은과 맞이할 새로운 봄을 벌써 기다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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