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 작성자 사진뚜뚜

슴덕의 심장을 조종하는 이들 – Kenzie 中편

© SM ENTERTAINMENT


l 급변하는 2010년대 SM의 음악

2010년대 초중반 SM의 음악 스타일은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전자는 가사의 난해함으로, 엉뚱한 단어나 라임(Rhyme)처럼 비슷한 발음을 가진 단어들을 나열하는 방식의 작법이 주를 이뤘다. 천상지희 다나&선데이의 <나 좀 봐줘>가 대표적 예시인데, ‘갈비뼈’, ‘100분 토론’과 같이 기존 아이돌 노래에서는 볼 수 없었던 단어들과 ‘~고’ 어미를 활용해 리듬감을 살리는 구조를 만들었다. 후자는 간단히 말하면 멜로디의 난해함으로, 사실 이는 국내 음악 시장과 해외 음악 시장 사이에 나타난 ‘시차’ 때문이었다. 케이팝은 기본적으로 해외에서 유행하는 팝(Pop) 스타일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수입과 적용이 더욱 빨라지는 추세를 보였다. 이런 현상은 각 소속사들이 A&R 시스템 구축과 송 라이팅 캠프(Song writing camp) 개최 등을 통해 외국 출신의 프로듀서진을 적극적으로 기용하면서 더욱 가속화되었다.


이렇듯 아티스트 개인이 아닌 소속사 전체 기조를 ‘해외 작곡가와의 협업을 통한 앨범 발매’로 바꾼 것 역시 SM이 선두에 자리하고 있었다. 특히 3세대의 포문을 연 엑소(EXO)의 정규 1집 [XOXO]와 지금까지도 명반으로 회자되는 f(x)의 정규 앨범 2집 [Pink Tape]가 발매된 2013년은 음악적으로 SM에게 가장 의미 있었던 해였다. 기존의 음악 노선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추구하던 2013년의 SM, 그 중심에는 역시 Kenzie(이하 켄지)가 있었다. 켄지는 이 시기부터 단독 작곡의 비중을 줄이고 해외 프로듀서와의 협업을 늘렸는데, 그 때문에 뒤에서 살펴볼 곡 중 몇몇을 제외하고는 가사에 집중해서 살펴볼 것이다.



© SM ENTERTAINMENT


l EXO, <늑대와 미녀 (Wolf)> - 실험적 콘셉트와 은유적 상징의 사용

앞서 언급한 <나 좀 봐줘> 역시 켄지의 작품인데, 이즈음부터 켄지의 음악에 대해 청자들 사이에서 많은 갑론을박이 오고 갔다. 새롭고 신선한 스타일이라며 흥미롭게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저 ‘난해하다’고만 정의할 수밖에 없다는 혹평도 만만치 않았다. 필자 역시 중독성 등을 차치하고 보더라도 앨범이 아닌 개별 곡 내에서의 스토리텔링이 마치 ‘구름 위를 걷는 유니콘’ 같다고 생각할 때가 적지 않았다. 그 정점을 찍은 곡이 바로 엑소의 첫 히트곡, <늑대와 미녀 (Wolf)>다. 3세대를 힘차게 연 그룹답게 이 곡은 켄지의 이후 작법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지금은 덥스텝(Dub step)을 이용한 노래들이 케이팝 씬에서도 많이 발표되었지만, 이 시기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대중에게는 생소한 장르였다. 그런 와중에 발표된 <늑대와 미녀>는 힙합과 덥스텝을 기반으로 한 곡이었기에 발매 당시에는 특이하다는 평이 많았다. 하지만 본고에서는 멜로디가 아닌 가사를 살펴볼 예정인데, 바로 켄지가 이 곡의 작사에만 참여했기 때문이다.

<늑대와 미녀>는 대개 케이팝 곡들이 그렇듯이 1인칭 시점에서 가사가 전개된다. 제목의 ‘늑대’는 화자인 ‘나’를 지칭하는데, 그동안의 남자 아이돌 음악과는 약간 다르다고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 사랑을 주제로 한 곡에서는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식으로 직접적인 고백을 표현한다. 쉽게 말해 사랑을 향한 남성의 직접적이면서도 주체적인 모습을 가사를 통해 강조해왔다는 거다. 여기엔 꼭 “나를 닮아 가슴 안에 가득 차 커져가는 innocent”(동방신기, <Rising sun>)나 “나를 묶고 가둔다면 사랑도 묶인 채”(샤이니, <LUCIFER>)와 같이 가사에 꼭 ‘나’라는 지칭이 들어가고, ‘나’의 심리가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비유를 사용하더라도 사랑의 상대를 이용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 곡의 ‘늑대’ 역시 은유적으로 화자를 표현하는 데 사용되었지만, 그동안 주류에서 소비되던 ‘남성성’을 내포하고 있는 다른 상징물로 자신을 치환했다는 점에서 직접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게 눈에 띄었다.


이는 전편에서 언급한 f(x)의 주체성을 가진 화자의 등장을 생각하면 오묘한 구석이 있다. 수동적으로 표현하던 소녀에서 시류를 이끄는 트렌드 세터(Trend-setter)로 변모하는 여성 화자의 음악과 자신을 가감 없이 표출하던 소년에서 감정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게 된 남성 화자의 음악의 변화 양상이 서로 교차점을 그리기 때문이다. 이는 작사가의 센스도 한 몫 했다고 볼 수 있는데, 대중들에게 익숙한 어법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주면서도 익숙한 상징으로의 비유로 의미를 납득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런 흐름은 켄지가 이후에 참여한 <Monster>(EXO, 2016)와 <Candy>(백현, 2020) 등으로 이어져 남성 화자가 자신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작법이 지금까지 나타나고 있다.


- 스토리텔링이 가져온 작법의 변화

하나 더 주목할 점은 다소 유치한(?) 내용일지라도 기승전결이 연결되는 스토리텔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가사 속 주어인 늑대는 ‘나’의 감정을 피상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넘어서 내면의 생각까지 읊고 있다. 그녀(=미녀)를 보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 잡으려 하지만 내면의 욕망이 자꾸 고개를 들고,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사랑으로 결국 자신까지 바꿔서라도 그녀를 잡고야 말겠다는 내용을 보면 주어만 ‘늑대’일 뿐 로맨스 영화 속 남자 주인공의 내면 서사와 닮아 있다. 또한 이런 구연동화 같은 구성에 ‘야수’와 ‘달’이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등장해 제목도 비슷한 동화 <미녀와 야수>가 떠오른다. 이전에 켄지가 작업했던 곡들이 자신의 포부나 지금 느끼는 감정에 대해 단편적으로 표현하는 내용이었던 걸 생각해보면 이야기의 시작과 예측 가능한 결말이 모두 드러난 ‘닫힌 구성’은 유독 돋보인다.


한 곡 내에 기승전결이 모두 나타나는 구성은 NCT 127의 <無限的我 (무한적아; Limitless)>와 샤이니의 <Don’t Call Me>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무한적아>는 후렴구에 이야기의 결말을 미리 제시한 후, ‘무한한 세계로 나아가는’ 자신들의 여정을 보여준다. “날 두드리고 깨우는 그 빛과 소리를 따라가” 또 다른 나인 ‘너’와 마주한 화자는 다른 길로 간 이들을 뒤로 한 채 자신과 연결된 ‘너’와 역경을 헤쳐나간 끝에 “우리는 하나가 돼”라는 결말을 맞이한다. 이런 몰입형 가사는 예로부터 ‘이야기’에 익숙한 일반 대중들도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데, 특히 켄지는 이런 작법을 통해 텍스트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그룹의 세계관 내지 스토리텔링(ex. NCT의 무한 확장)을 쉽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음악 외적인 부분으로도 도움을 줬다고 할 수 있다.



© SM ENTERTAINMENT


l 서현, <Don’t Say No> - 리버스가 이렇게 좋은 건가요?

‘컴.눈.명.(컴백해도 눈 감아줄 수 있는 명곡)’이 유행하면서 그 시기에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곡들이 부상하기 시작했다. 게 중에는 유독 자주 언급되는 곡들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서현의 <Don’t Say No>이다. 이 곡은 2017년에 발매된 서현의 첫 솔로 앨범에 수록된 타이틀로, 발매 당시에는 기대치보다 음원 성적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멜로디 자체는 R&B에 기반을 두었기에 대중에게도 익숙하지만, 오히려 그런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경직된 듯한 느낌이 귀를 ‘이끌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랬던 이 곡이 다시 조명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가사에서 해답을 찾았다.


<Don’t Say No>의 가사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후회와 질척임’이다. 사랑에 지쳤다며 먼저 떠나간 화자가 뒤늦게나마 다시 붙잡아보려는 내용으로, “네가 사랑한 내 부탁이야”라는 가사처럼 붙잡고는 싶지만 자존심은 굽히지 못하는 입체적 화자 때문에 웃음이 날 지경이다. 그동안 이별을 후회하는 노래에서는 무조건 화자가 저자세를 취하거나 혼자서 넋두리하는 게 대부분이었는데, 이 곡은 연애에서 본인이 차지했던 갑의 자리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을의 포지션을 자청하건만, 사랑을 뒤늦게 깨달은 죄가 있음에도 예전처럼 관계를 지속하길 바라는 태도가 이중적으로 느껴진다.


- 여성 화자의 비약적 도약

여기서 눈 여겨봐야 할 점은 켄지의 음악 속 여성 화자의 주체성이 한 단계 더 진화했다는 것이다. 일반화는 아니지만 ‘다시 돌아와 달라’는 내용을 담은 가사는 여성 화자가 많은 편이다. 대중 매체에서 이별에 힘들어하는 주체로 여성을 주로 소비해왔는데, 그런 점에서 이 곡 역시 기존의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고압적’ 화자가 여타 대중 콘텐츠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을 마련한다. 보통의 매체에서는 이별에 있어 미련을 더 가진 사람이 약자로 묘사되는 일이 많다. 다만 그 주체가 남성일 경우 심리적으로 약해진 모습이 상대적으로 덜 부각된다. 즉, 같은 이별을 겪었음에도 여성이 더 큰 슬픔을 겪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는 여성의 감정을 과하게 표현하는 동시에 남성의 감정을 통제한다는 해석을 낳을 수 있다. 이별했을 때 남성이 더 슬플 수도 있지 않은가. 필자의 고견으로는 이것이 사회에서 강조하는 사회적 남성성과 여성성이 투영된 결과로 보이는데, 이런 모습은 일상적으로나 전혀 자연스럽지 않다.


그렇기에 이 곡 속 화자에 더 주목할 수밖에 없는데, 사랑에 있어 을의 위치에 묘사되던 여성에서 벗어나 끝까지 갑을 고수하는 화자는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게다가 을의 후회와 질척임이 애원이 아니라 우아하면서도 고고하게 “그래줄래?”라며 (실제로는 전혀 아니지만) 갑의 권리를 행사하려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간접적으로 통쾌함까지 느낄 수 있다. 이렇듯 켄지의 가사 속 여성 화자의 주체성은 <La chA Ta> 속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능동적 인물에서 나아가 사랑과 같은 원초적 감정에 있어 자신의 감정을 가감없이 표출하고, 주류에서 부여하지 않았던 역할(=갑)을 수행하면서 더욱 진보했다고 볼 수 있다. 보아(BoA)를 통해 소녀들의 꿈과 희망을 노래하던 것에서 시작해 점차 그 소녀가 세상을 이끌고 통쾌한 한 방을 날릴 수 있는 주체적 여성으로 성장한 이 서사를 누가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까.



>> 하편으로 이어집니다.


조회수 105회댓글 0개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