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앨범에는 다양한 형태의 세계관이나 서사가 콘셉트 설정에 활용되곤 한다. 영화, 고전 도서, 애니메이션 만화, 신화 등의 서사를 차용하여 앨범 또는 곡의 분위기를 정하고 가사에 적용하는 등 많은 시도가 있어왔다. 그 중에서도 조용하지만 꾸준히 활용되고 있는 애니메이션 만화가 아이돌 곡에 활용된 대표적인 사례를 가사와 안무 중심으로 톺아보고자 한다.
Waiting for you anpanman : 방탄소년단의 ‘Anpanman’
2018년 5월 18일 발매된 방탄소년단의 정규 3집 <LOVE YOURSELF 轉 'Tear'>의 수록곡 ‘Anpanman’은 일본의 히어로 애니메이션 ‘날아라 호빵맨’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곡으로 알려져 있다. ‘날아라 호빵맨’의 주인공인 호빵맨은 자신의 팥앙금과 능력을 사용해서 다른 사람의 기쁨을 위해 자신이 곤경에 처하더라도 돕는 영웅이다.
방탄소년단의 리더 RM은 당시 앨범 비하인드를 소개하는 브이라이브 방송 ‘RM : LOVE YOURSELF 轉 ‘Tear’ Behind’에서 'Anpanman'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했다. 그는 이 노래가 가장 방탄소년단스러운 노래라고 언급하며, 호빵맨은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영웅이 아니고 어떻게 보면 가장 약한 영웅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힘이 줄어드는 것을 감수하고 머리를 떼어주는 존재라고 전했다. 이러한 점이 방탄소년단과 비슷한 것이다. 소위 ‘영웅’이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난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는 아니지만, 음악과 메세지로 팬과 대중들에게 힘을 나누어주는 존재가 바로 방탄소년단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되게 멋진 영웅이 내 낭만 But 줄 수 있는 건 오직 Anpan’, ‘줄 수 있는 건 단팥빵과 수고했단 말뿐이다만 부름 바로 날라갈게 날 불러줘’ 등 노랫말 전반에서 그들이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느낄 수 있다. 또한 ‘Anpanman’ 무대가 처음으로 공개되었던 Mnet 컴백쇼 무대 각 7명의 멤버들이 소방관을 연상시킬 수 있는 의상을 입고 나오며,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님에도 타인을 위해 기꺼이 나서는 소방관이 우리의 영웅 호빵맨이라는 메세지를 전하고자 했다는 점도 ‘Anpanman’의 감상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다.
유리 같은 하트는 쉽게 부서지니까 : (여자)아이들의 ‘사랑해’
2020년 4월 6일에 발매된 (여자)아이들의 미니 3집 <I trust> 앨범 수록곡인 ‘사랑해’는 일본의 판타지 순정만화인‘슈가슈가룬’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아이들의 멤버 겸 프로듀서인 소연이 언급한 바 있다. 소연은 쇼챔피언 비하인드 인터뷰에서 ‘‘슈가슈가룬’에서는 하트가 빨개지면 엄청 사랑한다는 건데, 이걸 뺏기면 큰일나기 때문에 (사랑해라는 곡은) 아주 위험한 사랑에 관한 곡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실제로 슈가슈가룬의 설정 상 하트모양의 에클은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에서부터 나오는 결정체로, 마녀와 마법사의 하트는 하나뿐이기 때문에 하트를 빼앗기면 죽게 된다고 한다. 또한 소연이 이야기한 하트는 붉은 색이었으므로 ‘사랑해’라는 곡 속에 등장하는 하트는 슈가슈가룬에 등장하는 진실한 사랑의 하트인 레드하트를 의미한다고 짐작해볼 수 있다.
‘유리 같은 하트는 쉽게 부서지니까’ 등의 가사와 당시 무대의상으로 마법사 옷을 착용했다는 점이 ‘슈가슈가룬’을 연상하게 한다. 또한 ‘사랑해’라는 가사와 함께 등장하는 브이 모양을 펼치는 안무도 ‘슈가슈가룬’의 세계관과 연관되어있다. ‘슈가슈가룬’에서는 눈 옆에 브이자로 뻗으면 보이는 엿보기 안경을 통해 마녀들이 인간의 하트 유무를 훔쳐볼 수 있는데 이러한 점을 차용한 것이다.
이외에도 소연은 2020년 8월 3일에 발매되었던 <DUMDi DUMDi>의 타이틀곡 ‘덤디덤디’는 애니메이션 영화 주토피아를 보고, (여자)아이들의 공식 데뷔 몇 달 전에 공개되었던 소연의 솔로곡 ‘Idle song’은 애니메이션 ‘스폰지밥’을 보고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고 전했다.
이 노래는 이 만화의 엔딩 송이다 : 세븐틴의 '손오공(super)'
2023년 4월 24일 발매된 미니 10집 <FML>의 더블 타이틀곡 중 하나인 ‘손오공’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만화 ‘드래곤볼’의 주인공인 손오공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곡이다. 여담으로, 곡이 공개되기 전 트랙리스트만 우선적으로 공개되었을 때에는 ‘손오공’이라는 것이 ‘서유기’의 손오공인지, ‘날아라 슈퍼보드’의 손오공인지, ‘드래곤볼’의 손오공인지에 대한 팬들의 갑론을박이 있었다. 하지만 발매 이후 곡의 가사부터 안무, 무대까지 모든 곳에서 ‘드래곤볼’의 손오공을 연상시키는 요소가 여럿 분포되어있어 ‘드래곤볼’의 손오공임이 확실시되었다.
우선 가장 대표적인 것은 안무 동작이다. 손오공의 변신 방법, 분신술 등의 특징을 활용한 안무가 많아 무대를 볼 때 그 포인트를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한 예로, 한 손의 검지와 중지를 펴 이마에 가져다 대고 몸을 살짝 터는 동작이 곡의 후렴구마다 등장하는데, 이것은 ‘드래곤볼’에서 주인공인 손오공이 순간이동을 할 때의 포즈를 본따 만들어진 안무이다. 가사 속에는 이보다 더 ‘손오공’이라는 컨셉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준다. ‘DARUMDARIMDA 구름을 타고 여기저기로’라는 가사는 근두운을 타고 날아다니는 손오공의 모습을, ‘늘어나라 하늘로 여의봉’은 손오공이 할아버지의 유품으로 가지고 있었던 유품을 의미한다. 이외에도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자세’, ‘Pull up my 근두운’ 등 곡의 전반에 이러한 가사가 등장한다.
이렇게 수많은 파트에 ‘드래곤볼’을 연상시키는 요소가 등장하면서도 ‘I luv my team 여기까지 달리면서 그 덕분에 우린 마치 된 것 같아 손오공’이라는 가사를 통해 세븐틴이 왜 손오공이 되었는지 그 이유를 대중에게 설득하는 메세지 또한 엿볼 수 있다. 실제로 세븐틴은 ‘손오공’이라는 곡을 시련과 좌절을 겪으면서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는 손오공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제작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아이돌 곡에 활용되는 애니메이션 서사는 뮤직비디오 컨셉, 무대와 안무 활용, 곡의 가사 등 전반에 많은 영향을 주며 대중으로 하여금 보고 듣는 재미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수행중이다. 올해 7월 2nd Episode ‘Get Up’으로 컴백을 앞두고 있는 뉴진스 또한 파워퍼프걸(The Powerpuff Girls)과의 콜라보를 예고했다. 앨범 프롤로그 곡 뮤직비디오도 파워퍼프걸과의 협업 제작이 예정되어있다고 전해 기대를 모으고 있다. 앞서 다룬 바와 같이 애니메이션 컨셉을 채택하여 활용했을 때 나타나는 시너지 효과가 상당한데, 뉴진스는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 주목해보아야 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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