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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두잉

내 아이돌은 너야, 둘이 될 수 없어


© 영화 <Her> 스틸 이미지


2013년 개봉한 <Her>은 외로운 삶을 살아가던 테오도르가 인공지능 운영체제인 사만다와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사만다는 사용자인 테오도르에게 최적화된 OS로, 둘은 끊임없이 대화하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며 마치 실재하는 사람처럼 가까워진다. 영화에서나 가능할 것 같던 인간과 인공지능의 관계 맺음은 그리 머지않은 미래, K-POP 산업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되고 있다. 이번 2020년은 아바타와 인공지능이 본격적으로 K-POP에 진입하며 아티스트를 가상화시키려는 시도가 눈에 띄게 늘어난 해이다. 에스파의 아바타 세계관, AI 보이스를 필두로 한 플랫폼 유니버스, 아바타를 직접 만들 수 있는 제페토까지… 과연 기술력이 결합된 새로운 케이팝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성공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에스파의 아바타 세계관

© SM 엔터테인먼트


SM이 6년 만에 새로 선보인 걸그룹 에스파는 아바타를 전면에 내세우며 ‘자신의 또 다른 자아를 만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는 독보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등장했다.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아티스트 멤버(aespa)와 가상세계에 존재하는 아바타 멤버(ae)가 SYNK를 통해 소통하고 교감할 수 있으며, 각자의 세계를 오간다. 에스파는 4인조의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도 다양한 방식을 통해 아바타 멤버의 활동 가능성을 제시했는데, 이를 예고하듯 공식 굿즈인 홀로그램 포토카드에서도 아바타 멤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다. 사실 ‘가상 아이돌’은 일본의 보컬로이드, 리그 오브 레전드의 K/DA를 통해 대중들에게 먼저 그 존재를 알렸으며, 여러 분야에서 인공지능이 화두로 떠오른 현 상황을 고려했을 때 그리 낯설지만은 않은 시도이다. 하지만 보컬로이드나 K/DA의 경우, 특별한 본체가 없는 가상의 캐릭터에 실제 성우나 가수를 캐스팅한 반면, 에스파는 처음부터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하여 캐릭터를 구축하였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다른 차별점을 두고 있다.



에스파의 아바타 멤버가 처음으로 공개된 <MY, KARINA> 영상에서 실제 멤버의 외형을 본떠 만든 듯한 ae-카리나와 카리나는 같은 공간에서 대칭된 형태로 앉은 채 대화를 이어나가는데,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이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ae-카리나의 모습은 더 이상 그녀를 단순한 가상 캐릭터로만 바라볼 수 없도록 만든다. 아바타 멤버는 가상 세계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자아이지만, 실제 멤버와 같은 본체를 공유하는 ‘분신’이라는 점에서 둘은 상당 부분 동일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에스파의 아바타 세계관에 대해 우려를 표하기 시작했다. SM의 이번 세계관은 공식적으로 아티스트를 대상화하려는 움직임이며, 이때 멤버들과 거의 동일시되고 있는 아바타 멤버에 대해 현행법상 따로 규제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앞서 언급한 K/DA의 경우 선정적인 2차 창작물로 문제가 되고 있지만, 제정된 법에 따르면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자는 사람으로 한정되어있기 때문에 아직 이를 규제할 방법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네덜란드의 'The State of Deepfakes' 보고서에 따르면, 딥페이크 영상의 96%가 포르노이며 그중 피해자의 25%가 한국 여성 연예인이었다. 보고서는 한국 여성 연예인 비율이 높은 이유에 대해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케이팝의 인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해 보았을 때, 에스파의 아바타 멤버는 너무나도 취약한 사각지대에 놓여있으며, 아바타 멤버의 피해가 실제 아티스트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K-POP 시장의 선두주자인 SM은 완벽한 아이돌을 꿈꾸며 언제나 실험적인 시스템에 도전해왔다. 에스파는 데뷔곡 <Black Mamba>로 케이팝 아바타 세계관의 막을 화려하게 열었고, 이제 베일을 벗기 시작한 아바타 세계관이 어떤 행보를 만들어 낼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아바타 세계관의 내용을 반복적으로 설득하고 있는 데뷔곡의 가사에서 역설적으로 SM이 고민해야 할 지점을 찾을 수 있는데, ‘에스파는 나야 둘이 될 수 없어’라는 가사가 그러하다. 가사의 내용처럼, 에스파의 아티스트 멤버와 아바타 멤버는 애초에 둘이 될 수 없는 것일까, 아니면 둘이 되어 분리될 수 있는 것일까, 혹은 필자가 우려한 대로 둘이 되어 분리될 수 없는 것일까? 여전히 미지수인 아바타 세계관이 과연 진정한 의미의 공존을 이뤄낼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한 때이다.


유니버스와 AI 보이스

* 해당 사이트에서 아티스트의 AI 보이스를 들어볼 수 있다.


지난 11월 12일부터 사전 예약을 진행 중인 유니버스(Universe)는 아티스트의 실제 목소리를 기반으로 개발된 AI 보이스를 통해 여러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케이팝 팬 플랫폼이다. 아이즈원, 몬스타엑스, 더보이즈를 비롯한 총 11팀의 아티스트가 참여하며, 현재 AI 보이스와 원하는 시간과 상황에 맞춰 전화를 받을 수 있는 ‘프라이빗 서비스’, 아티스트의 모습을 본뜬 캐릭터를 활용해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는 ‘스튜디오 콘텐츠’ 등이 예고된 상황이다. 필자가 직접 런칭된 그룹의 AI 보이스를 들어본 결과, 실제 멤버의 목소리와 미묘한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목소리의 특색이 강할수록 높은 싱크로율을 보이며 누구인지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비슷하게 구현되어 있었다. 만약 이렇게 실제 아티스트의 목소리와 비슷한 AI 보이스와 통화를 할 수 있다면, 팬들이 느끼는 감정은 설렘일까, 아니면 꺼림칙함일까?


아직 서비스의 방식에 대해 구체적으로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유니버스는 본격적인 서비스를 시작하기 전부터 많은 우려의 목소리를 불러 모으고 있다. 먼저, 아이돌 멤버는 자유의지가 있는 인간이지만 AI 보이스에게는 자유의지가 없다는 점이 큰 문제가 된다. 실존 인물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사용자가 듣고 싶은 대로 AI 보이스를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상, 악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다음으로, 팬들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채 상품화에만 치중한 플랫폼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아이돌에게 감정이란 무대 위와 아래를 불문하고 중요한 요소이며, 팬과 아이돌을 이어주는 하나의 매개체로 작용해 왔다. 하지만 유니버스의 AI 보이스는 감정을 배제한 채 팬들에게 다가서는데, 이는 누구보다 감정의 ‘진실성’을 바라던 팬들에게 와닿지 않을 수밖에 없다. AI 보이스의 주체가 불분명하다는 점도 또 하나의 한계에 부딪힌다. 지금까지의 소통 플랫폼들은 아이돌이 직접 글을 쓰고, 댓글을 달며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지만, AI 보이스는 인공지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끊임없이 재생산되기 때문에 본래 주체가 희미해진다. 그 방식이 어떻든 간에, 팬과 아이돌 간의 소통은 아티스트가 직접 참여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한다. 팬들은 실제 목소리가 듣고 싶은 것이지, 인공지능 목소리와 대화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팬과 아이돌의 소통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 정말 팬들을 위한 플랫폼이 맞는지 다시 한번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제페토의 아바타 만들기

제페토는 2018년 8월 네이버의 자회사인 SNOW에서 출시한 캐릭터 제작 애플리케이션이다. 사진을 촬영하거나 휴대폰 내 저장된 사진을 선택하면 가상 캐릭터인 제페토를 자동으로 생성해주는데,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하며 캐릭터를 조작하여 다양한 맵에서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게임 ‘심즈’와 비슷한 지점이 많다. 최근 제페토는 빅히트, YG로부터 120억 원, JYP로부터 50억 원의 투자를 확보해내며 케이팝 산업으로의 본격적인 진입을 꾀했다. 지난 9월, 블랙핑크는 셀레나 고메즈와 컬래버레이션한 3D 아바타 뮤직비디오를 공개했으며 버추얼 팬사인회를 열었다. 뒤이어 트와이스도 제페토로 멤버들의 캐릭터를 구현한 티저를 공개했다. 이에 힘입어 지난 10월 제페토는 <가성비갑 최애 즐기는 법>이라는 제목으로 제페토를 통해 최애를 움직여 보라는 내용의 광고를 게시했지만, 케이팝 팬들은 원래 최애는 움직이는 존재라며 달갑지 않아 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실제 존재하는 인물을 커스터마이징 하여 비슷하게 만드는 일명 ‘심 만들기’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있고, 아바타 만들기가 Z세대에게 하나의 놀이문화로 자리 잡았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가능성을 지켜봐야 할 것이다.



© SM 엔터테인먼트

인공지능과 아바타는 무궁무진한 확장 가능성을 인정받으며 다양한 형태로 K-POP에 활용되고 있다. 멤버 한 명 한 명이 캐릭터이자 상품인 K-POP 산업의 특성상, 늙거나 지치지 않으며 시공간을 초월하는 아바타 아이돌은 제작자가 꿈꾸는 완벽한 형태의 아이돌에 한 발 더 다가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코로나 19로 팬들을 직접 만나기 어려운 시대에 이를 활용한 기획이 위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되면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거듭될수록, 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과 아바타가 추구하는 ‘무결점’에 오히려 반감을 느끼며 실존하는 아이돌을 보고 싶어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졌던 영화 <Her>의 주인공 테오도르가 우리라고 상상해보자. 우리는 인공지능이나 아바타를 사랑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어쩌면, 실제 인물만이 지닐 수 있는 결점을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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