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한 노래와, 적절한 뮤비와, 적절한 빅스.
요즘에 이런저런 생각들이 들다보니 저절로 어두운 분위기의 노래를 찾게 되었다. 그러다가 이젠 더 들을 노래가 없는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이 노래가 떠올랐다. 내가 중학교 땐 지금의 EBS (EXO, BTS, SEVENTEEN의 줄임말)가 비스트 (現 하이라이트), 인피니트, 틴탑이었는데 그 사이를 노려 특이한 컨셉으로 주목받았던 그룹이 바로 빅스였다. 처음 데뷔곡을 들었을 땐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난감했었지만, ‘다칠 준비가 돼 있어’ 무대를 보고 나서는 잘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었다. 절대 안 놔줄 것 같은 집착은 좀 무섭긴 하지만 보통의 아이돌 그룹들과는 달리 차별화된 컨셉이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와 눈여겨 보곤 했다.
그런 노래들과 비교하자면 이 노래는 꽤 평범하다. (이게 ‘저주인형’ 앨범의 선공개곡이란 건 비밀이다.) ‘이~이~이~’하는, 약간은 기괴하게 들릴 수 있는 여성의 목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이 곡은 빅스의 노래들 중 타이틀만 놓고 봤을 때 평범하기에 더 특이하다. (수록곡은 밝은 노래들이 많다.)
이 노래가 나에게 유독 특별한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빅스라는 그룹에 입덕하게 된 계기라는 것이다. 이 노래가 나올 때 나는 중학교 2학년이었는데, 중2라면 뭐겠는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중2병의 증세를 보이는 시기였다. 나름 (우리 엄마가 보기엔 아닐 것 같은) 평범한 사춘기를 보내면서도 그땐 이상하게 ‘더...! 더 어두운 노래...!’ 하며 무거운 노래들을 즐겨 들었다. 집착이라는 대명사로 설명할 수 있는 인피니트 (내 본진이다.)가 그 해 봄엔 밝은 노래 (Man In Love), 여름에는 그것보단 좀 어두운 노래 (Destiny)로 돌아왔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싶은 참에 빅스를 알게 된 것이다. 적절하게 어두운 노래에, 스톡홀름에서 찍은 영상미 뽐내는 뮤비에, 길쭉길쭉한 기럭지로 거리를 쓸쓸하게 거니는 빅스는 중학교 2학년 여학생들을 입덕의 길로 이끌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나와 함께 덕질했던 친구들이 있었는데, 내가 그 아이들까지 빅스 덕질의 길로 안내했던 기억이 난다. 쉬는 시간마다 교실 앞 컴퓨터로 뮤비를 틀어서 감상하고, 음반 매장에 가서 이걸 살지 말지 고민하고, 그때 유행했던 ‘Bromide’ 같은 잡지에 빅스가 나오면 무조건 사고, 뭐 그랬었다. 지금도 주변 친구 중에 빅스의 팬인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와 이야기할 때 빅스 이야기가 나오면 그때 열렬하게 덕질했던 생각이 난다.
그 때의 나는 레오 (a.k.a. 택운)을 정말 좋아했는데, 정말 좋아했던 나머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팬페이지 가입 기록 횟수 2회 중 하나가 바로 레오의 팬페이지 가입이었다. 그동안 이름이 생각이 안 나서 어디였는지 까먹고 있었는데, 이 글을 쓰다가 갑자기 생각나서 인터넷에 검색하니 아직도 있어서 반가웠다. (내가 가입했던 다른 팬페이지는 다른 가수의 네임드 팬페이지였는데, 지금은 사라진 지 꽤 되었다.) 빅스 멤버 중에서도 제일 다크해보이고, 말수도 없고 (지금은 밝은 모습도 많이 보인다.), 피지컬도 제일 좋다고 생각했던 멤버인지라 특히 ‘대답은 너니까’ 뮤비에 나오는 파트는 백 만 번은 돌려본 것 같다. 아, 옛날 생각하니까 왠지 뭉클해진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빅스가 명실상부한 아이돌계의 ‘컨셉돌’로 활발하게 활동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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