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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뜨려야 할 불길

최종 수정일: 2023년 9월 24일

"굳이 크게 차별화를 두려 하지는 않았습니다."

블랙핑크 데뷔 초, 소속사 대표 양현석 씨가 2NE1과 블랙핑크의 유사성 논란에 대해 밝힌 입장이다. 그래서일까. 당시 블랙핑크는 여러모로 2NE1의 가면을 썼다는 따가운 시선을 계속 받아야 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나도 2NE1의 그림자가 지워지지 않는다는 말이 오가는 상황은 여전히 YG의 걸그룹 기획력에 대한 의혹에 불씨를 지핀다.


양현석 대표는 '블랙핑크'라는 이름이 으레 '예쁜' 것을 묘사하는 '핑크'와 여러모로 대척점인 '블랙'을 병치함으로써, 상반된 매력이 모두 담겼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그런데 YG가 이러한 '양면성' 있는 컨셉을 그리는 방식은 그렇게 설득력 있지 않았다. 첫 EP인 <SQUARE UP>만 봐도 그렇다. <뚜두뚜두(DDU-DU DDU-DU)>에서는 당장이라도 쏴 버리겠다는 '블랙'처럼 멋진 불호령을 떨구다가 갑자기 사랑하는 이와 영원을 노래(Forever Young)하고 싶다며 '핑크'로 이동한다. 이어 <Really>에서는 사랑을 맹세해달라며 매달리는 모습으로 '핑크'의 정점을 찍다가, <See U Later>에서는 쿨하게 작별을 고하는 '블랙'을 다시금 비춘다. 그 다음 <KILL THIS LOVE>에서도 마찬가지로 4개의 트랙 중 1, 3번 트랙이 '블랙'을, 2, 4번 트랙이 '핑크'의 면모를 묘사하기만 하는 방식을 여전히 고수한다.



ⓒ YG ENTERTAINMENT


결론적으로 이들이 가사에서 묘사하는 '블랙'과 '핑크' 간의 유기적 연결성은 없다. 컨셉 간 이동과 화법 변화에 어떠한 개연성도 부여하지 못한 기획은, 그렇지 않아도 단순한 브랜딩을 더욱 뻔하고 평면적으로 만들었다. 최소한의 설득력이나 입체감이 없었던 두 색상은 하나로 단단하게 엮이지 못하고 흩어진다. 단절된 '블랙'과 '핑크'는 각자의 이야기만을 전개하고, 각각의 정체성은 곡 단위로만 분절된 채 끝이 난다. 이를 접하는 청자는 이들이 도대체 어떤 캐릭터인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대형기획사에 기대할 만한 퀄리티가 아니라는 아쉬움만 남긴 채 블랙핑크의 정체성은 흐릿해졌다. 그리고 이는 불씨를 꺼뜨리지 못하고 더 키우는 계기가 되었다.


2NE1 역시 양면성 있는 컨셉을 추구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는 당대에 그런 그룹이 얼마 없었을 뿐이다. 게다가 동시에 양면성을 가져가는 블랙핑크와는 이야기가 다르다. 2011년 작 <내가 제일 잘 나가>가 개인의 진취성에만 집중하는 캐릭터상을 제시하면서, 아이돌 노래가사가 푸는 이야기의 다양성을 크게 넓히는 역사적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걸크러쉬'적인 태도로 전에 없던 제 3의 길을 보여준 2NE1은 2012년 이후, 좀 더 보편적인 정서를 노래한 <그리워해요> 등을 발매해 나갔다. 이미 앞선 노래들로 정체성의 기반을 다져 놓은 뒤 시간을 두고 순차적으로 시작된 변화였기에 진행은 안정적이었다. 또 그래서 획기적인 돌풍일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돌 기획이 한층 고도의 분화를 이룬 지금, 너도나도 다차원적 입체감을 자랑하는 기획의 물결 속에서 혼자 10년 전과 같은 납작함만을 보여주는 것이 YG의 최선일까? 시간은 흘러가고, 환경도 변했는데 회사에서 걸그룹에게 지속적으로 부여하는 방향성은 의미를 모르겠을만큼 자가복제에 가깝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 BABYMONSTER Youtube Channel


올 1월, YG는 차기 걸그룹을 발표했다. 이름은 베이비몬스터(BABYMONSTER). 이들은 며칠 전 7명 데뷔를 확정 짓고, 선공개 곡 <DREAM>을 유튜브 채널에 공개하며 데뷔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베이비, 그리고 몬스터라는 상반된 느낌의 두 단어를 합친 작명법에 또다시 컨셉 설계에 대한 불안함이 또다시 스치는 듯 하다. 물론 팬들 사이에서는 R&B 기반의 잔잔한 느낌 위주의 그룹이라던지, 여러모로 YG 걸그룹 치고는 밝게 띄운 콘셉트의 그룹으로 기획할 것이라는 예상도 많다. 하지만 어느 쪽이 되었든 더 이상 1차원적으로 그저 '베이비'와 '몬스터'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재미없는 좌우스텝만을 반복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이는 회사와 베이비몬스터의 위신이 달린 문제이기도 하며, 나아가서는 K팝 기획 전체의 수준이 달린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 이상 YG가 걸그룹을 대하는 태도가 상투적인 접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왈가왈부로 도화선이 더 빠르게 타는 일만큼은 없어야 한다. 더 큰 화재가 되기 전에 불씨를 꺼뜨릴 수 있을지 자기증명이 중요해진 지금, YG의 다음은 달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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