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발의 석진선배를 영접한 순간 : 롯데 면세점 패밀리 콘서트 첫째 날

- 일시 : 2017.06.22 (토) ~ 2017.06.23 (일)
- 장소 :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
필자는 롯데 면세점 패밀리 콘서트 (이하 패밀리콘)와 인연이 깊다. 수년 전, 갓 성인이 된 필자는 아이돌에는 관심이 전혀 없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런 필자가 우연히 처음으로 하게 된 콘서트 아르바이트가 바로 롯데 면세점 패밀리 콘서트의 진행요원 일이었다. 그때의 경험으로 아이돌과 콘서트 및 공연 진행요원에 관한 관심이 생겨, 아이돌 면으로는 두말하면 잔소리에 진행요원 일도 지금까지 한 달에 최소 일주일은 근무를 하러 갈 정도로 열심히 하고 있다. 그래서 수년 만에 다시 패밀리콘, 그리고 올림픽 주경기장에 다시 왔을 때는 신기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했다. 아이돌의 ‘아’자도 몰랐던 수년 전과는 다르게, 이번 패밀리콘에는 필자가 좋아하는 방탄소년단이 출연하기 때문인지 설레기도 했다. 그래서 ‘제발 내부에 배치되게 해주세요.’ 라고 전날까지 기도를 드렸었는데 (필자는 무교이다.) 하늘이 지켜보셨는지 스탠딩 구역, 그것도 맨 앞 구역에 배치되었다. 그러나 기쁨을 누린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때, 내부배치 인원들이 한 점 그늘도 없는 땡볕에서의 스탠딩 대기 구역으로 지원을 하러 가게 되었다. 이름하여 유사 지옥이 시작된 것이다.
패밀리콘의 티켓팅은 조금 독특하다. 멜론티켓, Yes24 같은 티켓팅 사이트에서 대기를 타다가 열심히 클릭해 좌석을 잡는 다른 콘서트들과는 달리, 콘서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롯데 면세점에서 일정 금액의 면세품을 구매한 사람들에게만 티켓을 선착순으로 증정한다. 또한 구매 금액에 따라서 좌석의 위치가 달라지는데, 가장 좋은 좌석인 무대 앞 스탠딩석 티켓은 무려 100만 원 이상의 금액을 구매해야 얻을 수 있었다. 이렇듯 많은 금액을 지불한 사람들이 관객이기 때문에 그분들께 걸맞은 더 원활한 진행이 이루어졌고, 더 좋은 대우를 해드려야 했다. 하지만 내가 지원을 갔던 스탠딩 대기 구역에는 배치된 진행요원의 숫자가 많지 않았고, 진행요원의 규모보다 구역과 관객 수도 매우 넓고 많았다. 이 때문에 뒤 번호 대의 스탠딩 줄이 꼬이고, 입장시간이 연기되는 등의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또한 불행히도 콘서트가 열렸던 날이 날씨가 막 더워지기 시작했던 시기라 불쾌지수가 높아진 관객들의 항의가 장난 아닐 정도로 들어오기도 했다. 이 항의는 열심히 이곳저곳 돌아다니던 나에게 많이 쏟아졌는데 정신적으로도 많이 고단했지만 월드 슈퍼스타 BTS를 몇 시간 후에 볼 필자 자신을 생각하면서 버티고 열심히 일했던 것 같다. 여담이지만 이렇게 열심히 일한 증거는 일이 많아 여기저기 뛰어다니다가 현수막 모서리에 심하게 긁혀 생긴 상처가 남은 흉터의 형태로 아직도 팔뚝에 남아있다.
다행히 스탠딩 구역이 입장을 시작하면서 해당 구역의 항의는 여차저차 잘 정리되었지만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예기치 못한 입장시간 연기로 인해 첫 공연 순서였던 블랙핑크의 공연이 시작됐음에도 아직 경기장으로 입장하지 못한 관객들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이에 결국 블랙핑크의 신곡 ‘forever young’ 무대가 중간에 중단되는 최악의 상황이 일어났다. 콘서트가 열렸던 6월 말은 블랙핑크가 첫 미니앨범으로 컴백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으로 사람들의 관심이 한껏 높아져 있었던 시기였다. 이런 시기에 신보 타이틀곡 ‘뚜두뚜두’를 비롯한 준비된 무대가 절반도 진행되지 못한 채 끊겨버린 것이다. 진행요원으로 온 나도 아쉬웠는데 돈을 내고 공연을 보러온 관객들은 얼마나 화가 났을까 싶었다. 설상가상으로 공연이 중단된 이후로도 공연시작이 거의 1시간이나 연기돼서, 스탠딩석 게이트에 서 있던 나는 그나마 나았지만 습하고 좁은 스탠딩 구역에서 계속 사람들 틈에 껴있어야 했던 관객들은 지쳐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결국 참다못한 몇몇 관객들이 더위를 피해 구역을 벗어나기 시작했을 때 쯤 공연이 다시 시작되었다.
라인업에 있던 다섯 아이돌 그룹 중 방탄소년단을 제외하고 가장 기억에 남았던 공연은 B1A4의 공연이었다. 사실 이들의 공연은 밝은 노래들이 세트리스트의 대부분이었지만 간간히 안타까운 마음에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했다. 비록 필자가 B1A4의 열렬한 팬은 아니지만, 데뷔 시절부터 노래를 들어온 그룹이었고 공연 시기가 재계약 난항 기사를 접한 이후였기 때문이다. 각기 다른 기획사로 흩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그 넓은 주경기장에서 공연하는 멤버들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노래 부르고 있을까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다.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한 가수는 말이 필요 없는 월드스타 그룹 방탄소년단이었다. 간단한 소개 VCR 후 메인 스크린에는 무대에 막 올라온 이들의 top view, 즉 천장 샷이 비춰졌다. 그 천장 샷을 본 바로 그 순간은 필자가 아이돌 덕질을 하면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 TOP3 안에 넣고 싶을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단언할 수 있다. 앞선 정규 3집 ‘FAKE LOVE’ 음악 방송에서 방탄소년단은 팬클럽 아미들이 오랫동안 염원하던 단체 흑발로 활동했었다. 이 활동이 끝나고도 몇 주가 지난 후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머리스타일의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 했었지만 이렇게나 확 바뀔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치도 못했었다. 그래서 스크린에 선명히 보였던 형형색색의 머리를 보자마자 어떤 색 머리가 어떤 멤버인가, 염색 머리 너무 예뻐 아파트를 부수고 싶다, 리패키지 활동을 할 예정이라 머리를 바꾼 건가 (공연 시기는 리패키지 앨범 공식 발표 전이었다.) 등등 온갖 생각이 다 들었던 기억이 있다.
본격적인 무대가 시작되면서 여태껏 밝은 머리를 한 적이 없는 정국의 체리 빛 머리를 비롯해, 필자를 입덕의 길로 이끈 ‘피 땀 눈물’ 시절의 머리를 생각나게 했던 네 멤버 : 금발의 뷔와 RM, 흑발의 슈가와 애쉬톤의 지민, ‘RUN’ 활동 시절을 생각나게 한 생흑발의 제이홉, ‘불타오르네’ 활동 시절을 생각나게 한 진까지 하나하나 스크린에 비쳤다. 이러한 파격적인 머리 스타일도 찰떡으로 소화하는 방탄이들 덕분에 필자는 속으로 감동의 눈물을 한 바가지 쏟았다. 또한 멤버들의 여전히 안정적인 라이브 실력과 칼군무에 맘껏 환호성 지르고, 하다못해 박수라도 치고 싶었지만 필자의 진행요원이라는 위치상 그럴 수 없어, 입을 다물고 조용히 앓는 소리만 냈었다. 웃픈 상황이지만 또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것만으로 추억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진행요원을 시작했던 초반기에는 관심이 있는 아이돌의 공연이라도 박수나 환호성만 참으면서 무대 쪽을 조금씩 볼 수 있으면 할만한 일이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진행요원으로서의 책임감이나 아이돌에 대한 애정이 좀 더 커진 지금은 이 두 생각이 양립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말 좋아하는 아이돌인 방탄소년단이 출연했던 이번 패밀리콘 진행요원 일을 하면서 이를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불법 양도가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쌌던 방탄소년단의 이번 LOVE YOURSELF 콘서트도 사실 맘만 먹으면 진행요원으로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한 명의 관객으로 콘서트를 갔던 이유는 좋아하는 아이돌에게 목이 쉴 정도로 보내는 호응이 그저 바라만 보는 것만큼이나, 또는 그것 이상으로 짜릿하고 소중한 경험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