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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빵두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년들: BACK TO THE 2012


2022년이 벌써 한여름을 향해 달리고 있다. 2022라는 낯선 숫자 조합이 눈에 익기도 전, 10년 전 오늘이 2012년이라는 당연한 사실이 필자에게 충격을 안겼다. 유난히 더웠던 2012년은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적 열풍을 일으킨 해다. 케이팝 최초로 빌보드의 아성을 무너뜨렸다는 자부심과 함께 너도나도 따라 췄던 말춤을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본 고에선 보이그룹 춘추전국시대로 재정의해볼까 한다. 필자의 과거를 반추해보건대 반마다 일정 비율의 팬덤이 뭉친 모양새가 가히 전국시대와 닮아있기 때문이다. 아이돌 그룹이 하루걸러 하루 쏟아지던 때이자 EXO가 막을 열고 BTS가 정점을 찍은 3세대 케이팝이 도래하기 직전 2세대 막차를 탄 중소기획사 남자아이돌의 매력 경쟁이 유독 뜨거웠던 2012년. 추억 속 노래와 함께 전성기를 구가했던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년들을 소환해보자.


(2012년 앨범 발매 순서대로 작성되었습니다.)


1. 인피니트의 <추격자> 2012.5.15.


2010년 6월 9일 데뷔한 인피니트는 당시 에픽하이와 NELL의 소속사, 울림 엔터테인먼트에서 선보인 첫 아이돌 그룹이다. ‘INFINITE’라는 영문 뜻대로 ‘무한한’, ‘한계가 없는’ 팀이 되겠다는 포부를 담고 있으며 팬들 사이 불리는 애칭도 이에 걸맞게 무한돌이다. 앨범 아트나 무대 동선에서 시그니처 ‘’ 문양을 찾을 수 있다.


데뷔 초 인피니트는 빈티지 로카트로닉 장르 ‘다시 돌아와’와 전갈춤으로 화제를 모은 ‘BTD’ 등 다크한 무대를 선보이며 눈도장을 찍었다. 하지만 인피니트가 본격적으로 팬덤을 끌어모으기 시작한 시점은 청량으로 무장한 ‘Nothing’s Over’부터가 아닐까 한다. 이후 ‘내꺼하자’ 활동과 ‘인피니트 깨알 Player’ 방영이 겹치며 인스피릿을 자처하는 이들이 무한 발생했다.


2년간 꾸준히 내공을 쌓은 인피니트는 2012년 5월 3번째 미니앨범 <INFINITIZE>로 무한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추격자’는 현대적인 비트와 ‘어기야 디여러차’, ‘내 님이 계신 곳 끝까지 가련다’ 등 한국적인 가사의 묘한 어울림이 특색이다. 당시 인스피릿이던 친구 왈 컴백일에 인트로를 듣자마자 솜털부터 반응하는 웅장함에 연신 “됐다!”를 외쳤다고. 추격자는 미국 최고의 음악매체 빌보드의 PICK이기도 하다. 싸이의 독주에도 불구하고 2012년 빌보드가 발표한 최고의 케이팝 음악 1위에 선정돼 모두의 예상을 깼으며, 2019년엔 2010년대 최고의 케이팝 트랙 3위에 랭크되는 영광을 거머쥐었다. 빌보드는 ‘신디 팝의 교향곡’이라는 수식을 통해 ‘추격자’가 2010년대 케이팝의 클래식답다고 극찬했다. ‘바이올린과 기타의 초반부가 얼핏 방향을 못 잡고 있는 듯 보이지만 단 50초 만에 폭발적인 가창력과 트럼펫 코러스, 80년대 신시사이저가 단숨에 음악을 변화시킨다’고 선정이유를 밝히며 필자를 포함 인트로 처돌이 군단의 심정을 대변해주기도 했다.


© 울림 엔터테인먼트

‘추격자’로 7관왕을 달성한 2012년은 인피니트가 하루하루 성장한 해다. 첫 단독콘서트에 이어 일본에서도 현지 데뷔 1년만에 아레나 투어라는 쾌거를 달성했으며 멤버 엘과 호야가 각각 tvN 드라마 ‘닥치고 꽃미남 밴드’와 ‘응답하라 1997’에서 중역을 맡으며 연기돌이란 수식을 부여받았고 리더 성규는 처음으로 솔로 활동에 도전해 사랑에 빠지는 데 걸린 시간이자 헤어지는 데 걸린 시간 ‘60초’를 노래했다. 또한 인피니트는 아이돌 자컨 원조 격에 해당하는 케이블 예능 맛집으로도 유명하다. ‘당신은 나의 오빠’, ‘인피니트의 깨알 Player’에 이어서 2012년엔 ‘인피니트 서열왕’이 멤버 간 케미 떡밥과 플짤을 쏠쏠히 제공하며 여름방학을 맞이한 10대들의 입덕 가이드가 돼 주었다.


군무돌, 예능돌 등의 수식이 따라붙으며 올라운더 그룹 이미지를 가진 인피니트지만, 그들의 강점을 하나만 고르라면 단연 음악이다. 추격자 컴백 당시 한 매체는 “멤버들의 이름과 개인기가 최전방에서 활용되는 시절, 인피니트는 드물게 음악으로 먼저 기억되는 팀”이라고 소개한다. ‘다시 돌아와’부터 ‘Last Lomeo’까지 함께했던 프로듀싱 팀 스윗튠과 인피니트는 케이팝에 몸담았던 사람이라면 인정할 ‘대듣명(대놓고 듣는 명곡)’ 조합이다. 최근 케이팝이 영미권 영향으로 덜어내는 추세인 데 반해 과하다 싶을 만큼 빼곡한 세션과 확실한 기승전결이 특징인 스윗튠의 음악. 그 위로 인피니트의 애틋한 음색이 수놓아지며 3분 서사가 완성된다. 서로의 페르소나로서 그들이 만든 예술은 앞으로도 2010년대 초반 분위기를 만끽하고픈 사람들에 의해 무한히 재생되리라 확신한다. 2017년 7인조에서 6인조로 개편한 인피니트는 멤버들은 계약 종료 후 개인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변치 않는 우정과 팬 사랑을 선보이며 완전체 활동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그들의 약속이 곧 실현될지도 모른다! 얼마 전 데뷔 기념일을 맞은 인피니트는 엘을 제외한 전원이 성규가 진행하는 ‘심야아이돌’을 통해 한자리에 모였다. 12년 동안 함께한 팬들과 서로에게 고마움을 전한 멤버들은 앞으로의 6월 9일은 항상 함께할 테니 약속을 잡지 말아 달라며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8월 전역을 앞둔 엘의 합류와 함께 희소식이 찾아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2. B1A4의 <잘자요 굿나잇> 2012.5.24.


명실상부 아이돌 명가로 성장한 WM엔터테인먼트가 처음 제작한 5인조 보이그룹 B1A4는 2011년 4월 23일 타이틀곡 ‘O.K’로 데뷔했다. 데뷔 초 특이한 그룹명으로 주목받았는데, 공식적으론 ‘Be the One, All for One’의 약자지만 멤버들의 혈액형이 ‘B형 1명, A형 4명’이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더욱 유명하다.


114개국 27만 명 네티즌이 기대하는 ‘2012년 슈퍼루키’ 1위에 선정된 B1A4는 풋풋한 흰 티에 청바지 데뷔 이미지를 벗고 2012년 한층 성숙해진 모습으로 첫 정규앨범을 발매했다. 리더 진영이 작곡한 타이틀곡 ‘BABY I’M SORRY’는 이별 후의 심정을 강렬한 비트 사운드에 녹여내며 색다른 콘셉트 소화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특유의 장난기 넘치는 그룹 이미지를 구축한 대표곡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5월 24일 발매된 ‘잘자요 굿나잇’이다. 달콤한 제목은 무서운 반전을 품고 있다. 실은 ‘잘 자 자기야, 내일 봐’ 문자 하나 남기고 ‘가끔 답이 없어도 늦어도 미워도 좀 넘어가주겠니’ 여자친구를 재워놓고 늦은 밤 일탈을 즐기는 바람둥이의 고백이기 때문이다. 일렉트로닉 신스팝 계열의 곡과 통통 튀는 바람둥이 분위기가 잘 어우러진다. 독특한 뮤직비디오 역시 빼고 논하면 섭섭하다. 서부 개척시대 느낌의 세트장에서 카우보이 모자와 청바지 등의 소품을 착용한 멤버들이 등장하며 한 편의 하이틴 뮤지컬 같은 분위기가 연출된다. 키자니아를 배경으로 촬영된 ‘Beautiful Target’ 뮤직비디오 느낌의 연장선으로 B1A4만의 아기자기함을 잘 녹여냈다는 평가다. 동시에 난해한 코디로도 유명세를 탔다. 멤버의 얼굴이 프린팅된 자켓, 화려한 스냅백과 형광 바지는 팬들의 입을 떡 벌어지게 하기 충분했다. 하지만 추억이란 미명을 덧붙인다면 이 정도 촌스러움은 그럭저럭 용서할 수 있지 않을까.


© HAT'S ON

‘잘자요 굿나잇’ 이후로도 B1A4는 2012년 내내 열일했다. ‘Beautiful Target’으로 일본에 진출했고 쌀쌀해진 11월엔 가을 바람과 어울리는 어쿠스틱 일렉 장르의 ‘걸어본다’로 컴백해 처음으로 1위 후보에 올랐다. 안타깝게도 당시 강남스타일 신드롬이 워낙 압도적이었기에 2위에 만족해야 했으나 6개월 후 내레이션과 락트로닉 등 새로운 시도가 엿보이는 ‘이게 무슨 일이야’를 통해 드디어 1위의 영광을 맛보게 된다. 12월 개최한 첫 단독콘서트는 5분 만에 만 석을 매진시키며 대세의 입지를 굳히기도 했다.


B1A4의 매력은 친근하고 발랄한 분위기라고 설명하고 싶다. 와닿지 않는다면 B1A4 공식 응원봉인 ‘뿅이봉’을 참고하길 권한다. ‘초통령’이라고 불렸을 만큼 팬덤 연령층이 낮았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밝은 분위기의 활동곡과 개성 넘치는 멤버별 캐릭터가 B1A4가 2012년 전성기를 이룩한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소형 기획사 소속으로 케이팝 씬에서 버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터, 굵직한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활약 역시 인지도 상승에 기여했다. 새싹춤을 춘 ‘세바퀴’에서부터 멤버 산들의 레전드 무대로 회자되는 ‘불후의 명곡’, 멤버 바로가 달리기로 눈도장을 찍은 ‘아이돌 육상 선수권 대회’, 망가짐도 불사하는 ‘주간 아이돌’ 등에서 비춘 멤버들의 진심이 팬심을 사로잡았다. 이 시기에 멤버 모두 각기 다른 지방 출신이라 붙은 ‘지방돌’, 특이한 그룹명에 기인한 ‘종이돌’, 바나라면 한 번쯤 따라 췄을 새싹춤의 ‘새싹돌’ 등의 애정어린 별명도 탄생했다. B1A4는 2017년 ‘Rollin’’ 이후 3인 체제로 활동 중이며 최근 데뷔 11주년 맞이 온라인 팬파티에서 긴 시간 응원해준 팬덤 바나에게 고마움을 비췄다. 2막을 연 B1A4 멤버들의 순간들이 ‘영화처럼’ 찬란하길 고대한다.



3. 틴탑의 <To You> 2012.5.30.

‘10대들의 탑이 되겠다’는 비장한 구호의 틴탑은 2010년 7월 10일 등장한 TOP미디어의 6인조 보이그룹이다. 데뷔 당시 평균나이 만 16.3세의 역대 최연소 남자아이돌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녔다. 사이버틱한 분위기의 데뷔곡 ‘박수’와 ‘SUPA LUV’ 그리고 발칙한 가사의 ‘향수 뿌리지마’에서 누나들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한 앳된 소년들은 2012년부터 대표곡을 쏟아내며 최전성기를 맞이한다.


개학을 맞이한 학생들의 귓가를 맴돌던 ‘미치겠어’로 첫 1위를 수상한 틴탑은 ‘To You’에서 이별 서사를 이어갔다. 틴탑 노래의 특징 중 하나는 대중성 있는 후크에 가려진 수목드라마 급 가사로 대놓고 나쁜 연하를 표방한 ‘향수 뿌리지마’가 대표적이다. ‘To You’는 ‘다들 미쳤다고 해 그만 잊으라고 해 그게 안 되잖아’, ‘끝이란 한 마디로 너는 님이 남이 돼?’ 등 이별을 겪은 사람이라면 공감할 현실적인 가사로 구성돼 있다. 자책하거나 성숙해지는 대신 남자다운 척 실상 떼를 쓰며 매달리는 가사. 남성적 화자긴 하나 어딘가 미성숙해 보인다. 뮤직비디오 속 얼굴에 자리한 상처 역시 자신의 아픔을 강조하며 상대방을 탓하는 듯하다. ‘To You’에서 그려진 서툰 사랑은 어린 연령과 강한 콘셉트가 역설적으로 공존해왔던 틴탑과 참 잘 어울리는 서사로 보인다. 허밍과 드럼 비트가 돋보여 몽환적이면서도 트렌디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이 곡은 데뷔 10주년 기념 팬덤 엔젤이 선정한 가장 다시 듣고 싶은 타이틀곡에 선정돼 2020년 버전으로 재발매되기도 했다.


© TOP 미디어

‘나랑 사귈래?’로 초고속 컴백을 한 틴탑은 ‘긴생머리 그녀’, ‘장난아냐’에 이르기까지 특유의 틴탑 스타일로 전성기를 이어간 동시에 국내 팬미팅을 시작으로 일본, 태국, 유럽 등 해외 무대를 넓혔다. 후배 그룹 백퍼센트와 출연한 ‘틴탑의 뜬다 백퍼’와 ‘틴탑&백퍼센트의 떴다 브라더스’에서 예능감을 뽐내기도 했는데 주간아이돌 랜덤플레이 댄스에서 틀린 멤버를 응징하던 것처럼 티격태격 장난스러운 모습이 주를 이룬다. 2015년 멤버 니엘이 ‘못된 여자’로 솔로 활동을 시작했고 이듬해 앨범 ‘RED POINT’에서 멤버들이 대거 작사, 작곡에 참여하며 음악적 성장을 보였다. 2017년 5인조로 개편했으며 2020년 문명특급 숨듣명 콘서트를 기점으로 2.5세대 아이돌 역주행 열풍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틴탑의 강점은 군무와 음악의 대중성이다. 가볍고 날랜 멤버들의 절도있는 안무는 분신술을 방불케하며 ‘칼군무돌’이란 별명을 탄생시켰다. 특히 빠른 템포에 대응하는 복잡한 스텝과 동선 교체가 현란함을 더하는데, 매일 10시간 가량 연습에 매진한 결과라고 밝혔다. ‘To You’에서도 LED 큐브 위의 웨이브와 칼각도 점프를 선보이며 틴탑 데칼코마니설에 힘을 실었다. 메인댄서를 강조하는 대신 멤버 전원의 균형 있는 군무를 케이팝 그룹의 핵심요소로서 격상시킨 데 틴탑의 공이 크다고 생각한다. 또한 인피니트에게 스윗튠이 있었다면 틴탑에겐 용감한 형제가 있었다. 틴탑위고락킹드랍잇탑핏...’으로 요약되는 클럽 사운드의 디스코그래피가 쉽게 리스너들을 흥얼거리게 만든다. ‘쉽지 않아’를 기점으로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기도 했으나 여전히 틴탑의 정체성에 대해 빠르고 신나는 후크송으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안무를 가능케하는 체력과 도화지 같은 장르 소화력, 혈기왕성한 사춘기 소년의 모습까지. 틴탑은 자칫 독이 될 수도 있는 ‘저연령 아이돌’의 장점을 브랜딩에서부터 콘셉트까지 백분 활용했다. 물론 대부분 학생이었던 탓에 방학에만 활동한다는 ‘방학돌’설이 돌거나 변성기를 이유로 파트가 조정되기도 했지만 말이다. 계약 만료로 소속사가 달라지면서 개인 활동에 집중하고 있지만 해체는 없다고 공식 입장을 발표한 틴탑은 최근 TOP미디어 프로듀서였던 앤디 결혼식에서 완전체로 모습을 보였다. 군백기 이후 컴백한 2PM과 하이라이트의 인기가 재점화되고 있듯 틴탑의 추후 활동에도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데뷔 당시 10대를 위해 노래하겠다는 포부를 20~30대까지 범위를 넓힌 틴탑이 그룹으로서 롱런했으면 한다.




+) 처음 소개한 인피니트와 틴탑은 딱 한 달 차이나는 데뷔 동기로 팬들 사이에서 일명 인탑으로 불리곤 했다. ‘추격자’‘To you’ 활동 시기가 겹쳐 6월 29일 뮤직뱅크에서 서로의 무대를 커버하기도 했는데 사뭇 다른 팀의 느낌이 인상 깊다.



4. B.A.P의 <대박사건> 2012.8.29.

TS 엔터테인먼트에서 선보인 6인조 남자아이돌 B.A.P는 2012년 1월 27일 싱글 앨범 <Warrior>로 데뷔했다. 그룹명은 ‘Best, Absolute, Perfect’의 약어다. 인지도를 쌓아가던 과정에서 ‘밥’으로 불리던 일이 왕왕 있었는데, ‘비에이피’로 읽어야 한다. 팬덤명을 정할 당시 ‘반찬’이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고(다행히도 ‘B.A.B.Y’라는 사랑스러운 이름을 가지게 됐다).


소개한 그룹 중 가장 막내 그룹인 B.A.P는 세계관 면에서 독보적이다. 오늘날 아이돌 그룹 기획에서 세계관 스토리텔링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인 데 반해 2010년대 초엔 발매 앨범에 맞춰 단발성 콘셉트들을 망라할 뿐 그룹을 관통하는 세계관은 드물었다. 엑소 플래닛에서 온 초능력자 EXO와 뱀파이어와 저주인형을 자처한 VIXX보다도 먼저, B.A.P는 멸망 위기의 B124AP224행성으로부터 지구를 정복하고자 우리 앞에 등장했다.


B.A.P는 데뷔 연도인 2012년 무려 5개의 앨범을 발매했다. “안 쉬잖아, 비에이피”라는 수식이 생길 만큼 소처럼 활동한 그들은 ‘Warrior’‘Power’ 활동에서 강인한 전사로 분하여 사회 부조리에 분노했다. 방용국과 젤로의 상반되는 톤의 랩이 데뷔 초 노래의 큰 축을 담당했고 부드러운 보컬과 완성도 높은 퍼포먼스가 더해지며 데뷔 일주일 만에 빌보드 월드 앨범 차트 10위에 기록되는 등의 주목을 받았다. 대세돌로 올라선 기점은 학교에서 한 번쯤 따라해봤을 사투리랩이 특색인 ‘No mercy’ 때 힙합과 국악, 게임음악의 독특한 콜라보를 시도하며 실험적이면서도 대중적인 성공작으로 평가받았다.


1학기 강렬한 콘셉트로 학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B.A.P는 여름방학이 끝날 때쯤 180도 다른 분위기로 돌아왔다. 리패키지 앨범 ‘대박사건(Crash)’은 브리티시 락 기반의 신스팝으로 임무를 완수한 전사들이 자유시간을 즐기는 듯 자유롭고 통통 튀는 곡이다. 팀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곡이라면 데뷔곡 ‘Warrior’가 적합하겠지만 필자가 ‘대박사건’을 추억의 노래로 선택한 이유는 명료하다. 아무래도 청량한 사운드가 2010년대 그 시절 감성을 자극하기에 더 적합할 테니까. 귀여운 이미지로 변신하며 당시 팬덤 확보에도 기록적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리스너 사이에서 명곡으로 회자되고 있는 ‘대박사건’은 첫눈에 반한 소년의 상황을 대형사고에 빗대 표현한다. 직설적인 고백 가사와 단순하고 앙증맞은 안무가 잘 어우러지는데 ‘가슴이 고장난 것처럼’의 고릴라춤, ‘Help me help me’에서의 구조요청춤에 이어 엔딩은 야무지게 ‘이마 키스’를 패러디하며 마무리했다. 다음 활동곡 ‘하지마(Stop it)’에서도 청량 행진에 나선 B.A.P는 2012년 열일한 덕에 한국, 일본, 독일, 프랑스, 중국 총 5개국으로부터 존재감을 인정받으며 14개의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 TS 엔터테인먼트

2013년 기존의 전사 이미지로 컴백한 ‘One shot’은 빌보드 월드 앨범 차트 1위뿐 아니라 독일 아시안 음악 차트에서 4개월째 1위를 고수하는 등 해외 경쟁력을 입증했다. 다크한 콘셉트로 일찍부터 해외의 주목을 받았던 B.A.P는 데뷔 1년 만에 월드 투어를 진행했으며 2014년엔 4개 대륙을 투어하는 컨티넨트 투어에 나섰다. 안타깝게도 국내 첫 1위의 영광을 안겨준 ‘1004(Angel)’ 활동 이후 정산 및 부당대우를 이유로 소속사와의 소송이 진행됐다. 2년 가까이 모습을 비추지 못한 B.A.P는 2015년이 되어서야 합의 소식과 함께 꿋꿋이 응원하던 팬들의 품으로 돌아오게 된다.


B.A.P는 무엇보다도 아이돌 시장에서 세계관 스토리텔링이 얼마나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는지 보여준 그룹이다. 그들에 따르면 B124AP224행성(마토 행성)에 살고 있던 마토끼(마스크를 쓴 토끼)들은 으악새의 고주파를 동력으로 삼아 왔으나 새가 멸종되자 6명의 대원이 우주 탐사에 착수했고, 지구의 불시착한 그들은 지구인의 함성을 새로운 동력으로 삼고자 보이그룹으로 데뷔했다. B.A.P는 세계관에 충실히 활동을 구성하며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복잡한 그룹 세계관이 도리어 진입장벽이 된 일부 경우와 비교할 때 더욱 그러하다. 마스코트 캐릭터 마토끼의 경우 멤버마다 다른 생김새와 설정값이 존재했으며 앨범 아트와 공식 응원봉 등에서 일관되게 활용됐다. 월드투어 당시에도 지구정복 콘셉트에 맞게 우주선에서 내리는 설정으로 무대를 시작했다고 한다. 아이돌 레드오션의 돌파구로 택한 세계관에 처음엔 낯설어하던 대중들도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고 3세대에 들어서며 점차 익숙한 케이팝 요소로 변모했다. 또한 B.A.P는 당시 케이팝 아이돌 불모지에 가까웠던 서구권에서 이례적인 눈길을 받으며 해외 시장 개척에 기여하기도 했다. 강한 콘셉트와 군무 등에 대한 해외 수요를 확인하여 후배 그룹들이 해외로 뻗어가는 데 귀감이 된 것이다. 세계관과 해외 진출이라는 큰 공적을 세웠음에도 빠르게 바뀌는 트렌드 속에서 B.A.P는 2017년 마지막 앨범 <EGO> 발매 후 2019년 해체를 맞이했다. 홀로선 그들은 현재 1인 기획사를 설립하거나 싱어송라이터 또는 배우로 전향하는 등 각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누군가 음악은 인류가 만든 최초의 타임머신이라고 했다. 현실로부터 떠나고 싶을 때, 추억에 눅진해지고플 때. 플레이리스트에 추억 속 음악들을 꼭꼭 눌러 담는 것만으로 타임머신에 탑승할 수 있다. 이 글을 쓰며 떠난 시간여행에서 10년 전 이맘때의 필자를 봤다. 문구점에서 매달 사 모았던 아이돌 매거진 브로마이드, 책가방에 달린 아이돌 멤버 명찰, 버블과 유니버스의 조상 UFO타운, 수요일마다 TV 앞을 지키게 했던 주간아이돌, 친구들과 깔깔대며 시청했던 들리는대로 병맛영상도 함께였다. 미처 다 톱아보지 못한 학창 시절 속 모든 아이돌에게, 타임머신의 버튼이 되어주어 고맙단 말을 전하고 싶다.

P.S. 훗날 지금의 순간들을 추억하기 위해 더 열심히 노래에 귀를 기울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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