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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뚜뚜

가사의 미학 외전 #1 - '내 심장을 훔친' Kenzie의 '공중정원'

- 음원 사이트가 아닌, 유튜브에서의 음악 듣기

바야흐로 ‘유튜브 플레이리스트’의 시대다. 2019년 하반기부터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알음알음 알려진 노래들을 모아서 들을 수 있게 만든 영상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플레이리스트’ 채널이라고 할 수 있는 ‘때껄룩TAKE A LOOK’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모은 팝송들에 재치 있는 제목을 곁들여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때껄룩’의 사례처럼 초창기 채널들은 주로 팝송을 소재로 삼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2020년 상반기로 접어들면서 이른바 ‘숨어 듣는 명곡(이하 숨듣명)’이 젊은 세대 사이에서 큰 유행을 타게 되었고, 이에 따라 ‘추억의 K-POP’을 소재로 삼는 채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필자 역시 ‘숨듣명’ 열풍에 탑승한 사람 중 한 명이었기에 이런 영상들을 직접 찾아보고, 하단에 달린 댓글들을 읽어보면서 일종의 ‘추억팔이’를 하곤 했었다.

이렇게 매일 ‘플레이리스트’를 찾다 보니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바로 ‘제목을 활용한 후킹(hooking)’이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유튜브에서 이런 류의 영상에 붙는 제목은 주로 ‘OO 그룹의 히트곡 모음’, ‘(앨범명) Full version’ 등과 같이 가수명과 앨범명을 활용해 마치 컴필리에이션 음반처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때껄룩’의 사례를 기점으로 점차 ‘어떤 곡이 있는지’가 아니라 ‘이 영상에 수록된 곡들이 어떤 분위기인지’를 설명하는 제목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 ‘SM 켄지 노래 좋아하면 퍼가.’

필자가 이 문단의 제목으로 언급한 ‘SM 켄지 노래 좋아하면 퍼가’ 역시 이러한 ‘플레이리스트’ 영상 중 하나다. 이 문장은 직관적이면서도 1030 세대에 모두 통하는 ‘밈(meme)’을 활용했다는 점이 상당히 돋보인다. 제목 그대로 이 영상은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작사가 ‘켄지(Kenzie)’가 만든 곡들로만 구성되어 있다. 특유의 벅차오르는 감성(혹자는 이를 J-POP풍 감성이라 부르기도 한다.)과 풍성한 사운드 때문에 흔히 켄지를 작곡가로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이 영상의 댓글창에도 ‘슴덕(= SM 소속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을 일컫는 말)이 노래를 듣고 심장이 뛴다면 켄지 노래’라는 댓글이 많은 추천을 받을 정도로 오랜 기간 SM에서 발매된 곡들을 들은 사람들은 ‘켄지’를 SM 작곡가의 대명사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이하 음저협)’에 등록된 켄지의 저작권 목록을 살펴보면 작곡 못지않게 작사에 참여한 횟수도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아의 명곡 중 하나인 정규 3집 ‘Atlantis Princess’ 수록곡인 ‘Milky Way’가 대표적인데, 후렴구에 반복되는 몇 줄의 영어 가사를 제외하고 모두 한글로 썼다는 특징이 있다. 제목처럼 ‘별이 쏟아지는 듯한’ 사운드에 마치 청자가 은하수를 함께 건너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의 가사가 잘 어우러지는 곡이다. (켄지는 이 곡의 작사는 물론, 작곡과 편곡 모두 단독으로 참여했다.)

물론 이 중에는 EXO의 ‘늑대와 미녀(Wolf)’와 f(x)의 ‘제트별(Jet)’과 같이 100년쯤 뒤에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작품들도 있다. 이 곡들이 2010년대 초반에 만들어진 탓에 역시 비슷한 시기에 난해한 가사를 선보였던 유영진의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존재했다. 다만 이 시기의 K-POP이 후크송을 위주로 전개되었기에 가사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덜 부각되었다는 측면이 있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하는데, 이후 ‘의미 있는’ 가사를 찾는 소비자들의 요구가 음악에 반영되면서 켄지의 작사 스타일 역시 난해함을 벗어나 본래의 모습을 찾았다. (유영진 역시 현재는 2000년대 초반 발표한 Fly to the Sky의 명곡 ‘Sea of Love’에서 선보인 바 있는 감각적인 가사를 다시 쓰고 있다.)

초등학생 때부터 스스로를 이른바 ‘켄지 덕후’라고 부르며 다녔던 필자는 난해한 가사는 깊이 이해하기에 어려운 측면이 있었기에 그 시기에는 이전에 발표된 곡들을 많이 듣고 다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켄지의 작사 스타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번 글에서는 그 중에서도 필자가 ‘명가사’라고 꼽는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 공중정원에 담긴 애틋한 사랑 이야기

최근 보아의 데뷔 20주년을 기념해 SM STATION을 통해 발매된 ‘Our Beloved BoA’에는 후배 가수들이 리메이크한 보아의 대표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EXO의 백현이 가창자로 나선 ‘공중정원(Garden In The Air)’은 발매 전부터 상당한 관심을 받았다. 이 곡은 보아가 2005년에 발매한 정규 5집 ‘Girls On Top의 수록곡으로, ‘수록곡 맛집’이라 불리는 SM이 발매한 곡 중에서도 심심찮게 언급되던 이름이었다. 처음 이 곡이 리메이크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직전에 솔로 활동을 성공적으로 마친 백현의 인기도 화제를 일으켰지만, 무엇보다도 원곡이 바로 ‘이누야샤 극장판: 거울 속의 몽환성’의 엔딩곡이었다는 사실이 큰 이목을 끌었다.

ⓒ SM ENTERTAINMENT

인터넷상에서는 2000년대 초중반에 학창시절을 보낸 80~90년대생들을 흔히 ‘투니버스 세대’라 부르곤 한다. 어린이 전문 채널이라는 인식이 강한 현재와는 달리 이 시기에는 ‘명작’이라고 일컬어지는 작품들이 많이 방송되었는데, ‘이누야샤’가 이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이다. 그리고 이 작품의 한국판 오프닝과 엔딩곡을 담당한 곳이 바로 켄지가 소속된 SM엔터테인먼트였다. 이런 관계로 인해 당시 많은 SM 소속 가수들의 곡들이 ‘이누야샤’ OST로 발매되곤 했는데, 켄지가 만든 ‘공중정원’ 역시 그 중 하나였다. 많은 20대들이 추억의 명작 애니메이션으로 ‘이누야샤’를 꼽는 현재, ‘추억의 명곡’의 귀환은 모두에게 희소식이었을 것이다.

‘공중정원’은 고대 그리스의 시인이었던 안티파트로스가 언급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바빌론의 공중정원을 소재로 삼고 있다. 이는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향수병에 걸린 아내 아미티스를 위해 만든 옥상 정원으로, 사막에 속하는 바빌론에서 어떻게 물을 끌어올릴 수 있었느냐는 의문과 페르시아의 침공으로 정원은 사라지고 추정지만 남은 상황으로 인해 불가사의로 여겨지고 있다.

- 먼저 사랑하게 된 사람의 세레나데

이런 공중정원의 신비함과 더불어 비록 정략결혼이었지만 아내를 사랑했던 왕의 다소 로맨틱한 건설 일화를 왕의 시점에서 가사로 푼 것이 바로 보아의 ‘공중정원’이다. 가사가 제목을 은유적으로 설명하고 있기에 첫 구절을 듣는 순간부터 ‘왕이 하는 이야기구나’라는 생각을 단번에 떠올릴 수 있다.

아직 헤매고 있어 아마도 외로웠던 거야 밤하늘 가득 멀게만 보였던 곳을 너무 원했나봐

낯선 땅, 그것도 끝없는 사막이 펼쳐진 바빌론에 청자, 아미티스는 원래 살던 곳과 전혀 다른 나라에 정을 붙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게다가 상대는 정략결혼으로 맺어진 사람. 이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는지에 대해서도 아리송한 상황에서 푸른 나무와 알록달록한 꽃들이 무성했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간절했을 그녀다. 이런 그녀에게 연심을 품게 왕은 자신의 사랑을 아직 알아차리지 못한 그녀가 ‘아직 헤매고 있다’고 말하며 홀로 이곳에 외로움과 그로부터 비롯된 향수를 이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 EBS (*필자: 바빌론의 공중정원은 기록상에만 존재하기에 학자들은 이렇게 생겼을 것이라고 상상하곤 한다.)

그대의 허락도 없이 이렇게 변해 버렸어 한결같은 아픔도 모두 사라질 바에야 잊어줘

그러면서 화자는 먼저 청자를 사랑하게 된 사실을 고백한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 중 하나인 사랑을 ‘허락받아야 할’ 것으로 치환하면서 자신에게 있어 청자가 자기 자신보다 더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사라지지 않는 마음의 병을 애써 위로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이젠 this time is real, no one can deny 눈부신 사막의 높은 곳으로 꿈꿔왔다면 함께 있게 해줘 오직 너만을 위해 지금 이렇게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후렴 부분의 가사다. 전반부에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슬퍼하는 왕비를 보며 화자 역시 마음이 편하지 않다는 것을 암시한 후, 사랑하는 이를 위해 준비한 선물을 보여준다. 셀 없이 많은 모래알들이 햇빛을 반사해 모든 곳이 빛나는 사막 위에 아름다운 정원을 만든 이야기를 ‘이렇게 했다더라’ 식의 화법이 아닌 왕의 시점에서 전개한 것이 돋보이는 가사다.

- 다양하게 해석할 있는 가사의 매력

재밌는 가사의 배경을 모르고 들으면 앨범이 담고 있는 ‘이상향’에 대한 여러 면모 하나로 해석할 있다는 것이다. 동명의 타이틀곡인 ‘Girls On Top’의 가사에는 ‘여성은 없는 존재’라는 편견을 타파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어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현대적 여성을 그리고 있다. 반면 ‘공중정원’은 아내를 사랑한 남자가 만든 정원이 내포한 ‘이상적 사랑’과 더불어 SM에서 발매된 초창기 곡들이 가지고 있는, 10대 소녀들이 꿈꾸는 이상향에 가까운 ‘이상적 소녀’라는 특징이 모두 들어있다. 어떻게 보면 반대를 지향하는 이런 요소들이 앨범에 모두 들어있는 것이 독특하게 느껴진다.

이처럼 중의적으로 해석할 있는 가사는 음악을 즐기는 청자들에게 있어 하나의 매력으로 다가온다. 특히 켄지의 가사는 함축적인 뜻을 담고 있는 단어나 구절이 많아서 해석하는 즐거움을 준다. 또, 타이틀곡 작사를 주로 맡는 것을 생각했을 때, 2000년대 후반부터 해외 진출이 가속화되면서 ‘해외 팬들도 쉽게 이해할 있는’ 외국어 가사가 보편화된 현상과는 달리 의외로 한글 가사의 비율이 높은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다양한 시선으로 감정을 풀어나가는 그녀의 가사를 여겨보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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