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

2019년 3월 11일3분

이달의 소녀는 어떤 ‘소녀’인가요?: 이달의 소녀(LOONA) “Butterfly”

당신은 K-POP의 ‘소녀’를 어떤 이미지로 떠올리는가? 아마도 동양인의 외형과 교복을 입은 10대(실제로 10대가 아니더라도), 또 순수하고 수줍은 표정과 안무를 선보이는 여성으로 대표되는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K-POP적 소녀는 걸그룹에게 요구되는 이미지이기도 했지만, 이들이 뮤직비디오나 음악으로 재현하는 이미지이기도 했다. 그만큼 K-POP이 담아내는 소녀란 한국 사회가 바라보는 편협한 소녀상의 이미지를 답습하는 것 이상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2월 19일 발매된 이달의 소녀의 리패키지 앨범 [X X]의 타이틀곡 ‘Butterfly’는 K-POP적 소녀와 다른 소녀들을 재현하고자 했다. K-POP에서 소녀라는 단어가 품고 있던 이미지의 경계를 부수어 버리듯 다양한 인종을 비롯하여 외적으로 다양한 소녀를, 또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는 소녀를 담고자 한 의도가 분명히 드러났다.

사진 출처: ‘Butterfly’ 뮤직비디오 캡쳐.

특히 뮤직비디오에서는 이제껏 K-POP의 주인공이 될 수 없었던 인물이 등장했다. 그동안 ‘이국적인’ 외모라는 수식어로 퉁 쳐졌던 외적 다양성이 드디어 재현됐다. 이를 통해 무국적의 소녀, 즉 누구나 이달의 소녀가 될 수 있음을 표현했다. 다양한 인종뿐만 아니라 다양한 체형(신체적 조건)으로 표현한 외적 다양성과 더불어, 각각의 인물이 대변하는 물리적 억압을 연출로 녹여냈다. 흑인 여성이 달려가 벽에 부딪히는 모습, 히잡을 쓴 여성, 유니폼을 입은 중화권 여학생들이 책상을 밟고 올라서서 하늘을 바라보는 모습 등은 각자가 처한 억압의 상황을 보여준다. 이전까지 이달의 소녀의 세계관은 흥미롭긴 했지만 너무나 견고하여 그 세계관 속에서 함몰된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들의 세계관에서 사용된 여러 모티프―운동화, 한쪽 다리의 깁스와 목발, 사과, 한쪽 눈을 가린 안대, 터널과 도로―는 이번 뮤직비디오에서 다시 등장하여, 여러 인물의 자유와 해방이라는 메시지와 연결되었다. 이를 통해 자신들의 세계관을 넘어 보편적인 메시지로서 자유와 해방을 표현하려 했다.

또한 이 곡의 가사는 사랑받고 싶은 소녀를 그려내지 않는다. 소녀는 사랑만을 말하는 존재가 아니다. 이달의 소녀의 이전 활동 곡 ‘Hi High’를 기억하는가? 이 곡의 ‘수능보다 더, 사랑이란 잔인해!’, ‘김밥처럼 넌, 만두처럼 달콤해!’라는 가사는 ‘무리수’ 가사였지만, ‘수능’, ‘김밥’, ‘만두’와 같은 단어들로 한국의 10대 소녀가 느끼는 사랑을 말하려는 확실한 의도가 보였다. 또한 ‘남잔 조심 조심 조심’, ‘나의 사랑 쉽게 주고 싶지는 않아’와 같은 가사로 기존 K-POP의 수동적이고 수줍은 소녀의 이미지를 그대로 이어갔다. 같은 앨범의 또 다른 프로모션 곡이었던 ‘favOriTe’은 그보다는 덜 수동적이었지만, 결국 두 곡 다 소녀가 사랑에 빠진 모습을 담은 가사였다. ‘Butterfly’는 소녀들만의 이야기이다. 나비처럼 날아서 더 멀리, 더 높이 날아가며 서로의 곁에 있어 줄 소녀들을 그려낸다(‘Fly like a butterfly, I better be around you’).

‘시작은 작은 날개짓/이제 내 맘의 Hurricane/Been been there never been been there/세계가 점점 작아져 가’

당장은 소녀로서 일으킬 작은 날갯짓이 나비효과를 불러오고, 결국은 이전에 닿지 못했던 곳으로 다 함께 간다는 메시지는 지금까지의 케이팝 소녀 이야기 중 가장 능동적이다. 이들의 세계는 좁아지는 것이 아니라, 어디든 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작아진다. 이렇게 말해주는 K-POP 걸그룹이 필요했다.

사진 출처: ‘Butterfly’ 무대 캡쳐 (출처-유튜브 [MPD직캠] 이달의 소녀 직캠 4K ‘Butterfly’ (LOONA FanCam) | @MCOUNTDOWN_2019.2.21.)

가사뿐만 아니라 ‘Butterfly’의 무대도 이전의 곡들과 비교할 만하다. ‘Hi High’의 무대에서는 닳고 닳은 테니스 스커트를 입고 귀엽게 뜀박질을 하는 소녀의 안무를 보여줬고, ‘favOriTe’은 정석적인 교복 의상과 그에 어울리지 않는 안무를 선보여 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Butterfly’의 도입부 안무는 카메라 정면에서 ‘드러눕는’ 안무다. 긴 상의와 하의의 심플한 의상이 아니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안무는 각각의 스타일이 있고 어떤 스타일이 더 우월하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흔히 격하고 각이 살아있는 안무가 멋있다고 평가받지만, 부드럽고 선을 강조하는 안무는 그와 다른 매력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걸그룹의 안무가 한쪽으로 편향되어 있던 것은 사실이다. 위아래로 크롭 된 불편한 의상이 그의 주요한 원인이었음도 분명하다. 무대 위의 걸그룹에게 자유와 해방은 어쩌면 의상이다. 이번 활동에서 보여준 담백한 의상은 이들이 안무에 집중하기에 최적이었고, 그렇기에 가능한 동작들이 많았다. 뮤직비디오를 통해 표현하려 했던 메시지를 무대에서도 타협하지 않았다는 점이 그 무엇보다 유의미한 지점이 아닐까?

사실 ‘소녀’라는 단어에 얼마나 많은 함의가 깃들어 있는지, 나는 어떤 여성을 소녀라고 더는 부르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들이 ‘소녀’로 이름 지어진 이상 이들은 어떠한 소녀의 이미지를 구축해나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달의 소녀는 자신들의 행보를 통해 역설적으로 기존의 소녀 이미지를 깨부술 가능성을 가진다. 이번 활동을 통해 ‘누구나 이달의 소녀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의 진정한 힘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이 가능성을 계속해서 확장해나갔으면 한다. 지금까지 K-POP의 소녀들이 닿지 못한 세계로 우리를 초대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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